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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사살의 의문
 확인사살의 의문
 
 주방에서 엎어져 있는 김용섭경호원의 등판을 향해서 한 발을 쏜 정보 부 경비원 김태원은 앞을 보니 '경호원(기자 주·박상범)이 쓰러져 있는 옆에 중정직원인 김용남씨가 쪼그리고 있었다'(상고이유서). 김태원은 '경호원을 잘못 쏘면 김용남씨가 맞을 것 같아서' 쏘지 않고 '김형 일어 나시오'라고 했다. 식당차 운전사 김용남은 오른쪽 어깨에 관통상을 당했 는데 일어서면서 '태원이구나 이제야 살았다'고 했다. 김태원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모르겠어.' '그러면 김형 여기 잠깐만 엎드려 있으시오.'.
 
 김태원은 나동정문으로 가서 경비원관리책임자 이기주에게 물었다.
 
 '저 안에 우리 직원들이 있는데 데리고 나와야겠지요?' '그래야지요.'.
 
 주방으로 돌아온 김태원은 김용남과 요리사 김일선을 데리고 나왔 다. 이때 한 구석에서 쓰러져 있던 요리사 이정오가 소리쳤다.
 
 '나 좀 부축해주시오. 총 맞았어요.'.
 
 허리를 스치는 총상을 당한 이정오는 제미니 승용차로 옮겨져 한 시 간남짓 뒷자리에 누웠다가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실려 갔다.
 
 정보부 소속 직원들과 뒤섞여 쓰러져 있었던 것이 박상범 경호원을 살린한 요인이었다. 그는 오른 쪽 허리띠로 들어가 엉덩이로 관통한 총 상을 입고는 기절한 상태였다. 총상은 관통상이었는데도 자연적으로 지 혈이 되었다. 박상범은 27일 새벽에 현장을 장악하러 온 합수부수사관 들이 시체들 사이를 뒤지는 도중에 발견되어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실 려 갔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신이 깨어났다.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서 는 전두환합수본부장이 문병을 와서 알려주었다.
 
 박상범의 옷을 조사해보니 암살조에서 쏜 총알이 한 발은 웃옷 왼쪽 호주머니를 뚫고 지나갔다. 다른 한 발은 바지의 오른쪽 호주머니를 스 치고 지나갔다. 이 박상범 경호원은 1974년8월15일 국립극장 육영수여 사저격사건 때도 현장에 있었다. 무대 뒤의 비상통로를 지키고 있었는 데 관객석에서 탕하는 소리가 났다. 커튼을 젖히고 내다보니 관객석의 통로로 한 사나이가 달려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연설대 뒤로 몸을 낮춘 박대통령 곁으로 달려갔다. 대통령은 '박군, 우리 내자 어떻게됐 나'라고 했다. 박 경호원은 머리만 옆으로 기운 육여사가 무사하다고 판단하여 '별일 없으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박상범은 그 뒤에도 대통령 근접경호를 계속했다. 만취한 대통령을 업어서 모시기도 했다. 박대통령은 '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것은 업히는 것이지'라고 하기도 했다.
 
 업고 가는 그의 뒷통수에 꿀밤을 주면서 '요놈아, 요놈아'라고 하기도 했다. 박상범은 17명의 정부요인이 피살된 1983년 아웅산 폭파 사건 때도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 경호했으나 무사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거쳐 지금은 보훈처장으로 있다.
 
 박상범이 살아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김태원이 적극적으로 확인사 살을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태 원은 지금 자신이 누구편에 서서 총질을 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인식하 지도 못하고 무서운 과장의 명령이라고 하니 그냥 따른 것으로 이해된 다. 육군과학수사연구소 법의과장 정상우소령의 시체검안서를 보면 김 태원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읽을 수가 있다. 김태원이 맨 처음 쏘았던 안 재송경호부처장의 경우, 엉덩이에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검증 사진을 보면 김태원은 경호원대기실의 출입문 입구에 서서 먼 발치에서 비스듬히 안재송을 겨냥하여 쏘고 있다. 적극적인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정소령은 검안서에서 안재송의 치명상은 박선호에게 맞은 제1탄이 가슴속을 파고들어 심장에 손상을 가져온 때문이라고 했다. 즉, 김태원이 20분쯤 뒤에 쏘았을 때는 안재송은 사망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태원은 정인형을 쏠 때는 '한 발을 쏜 후 다음 명령을 받기 위해서 이기주를 쳐다보았더니 그가 시체를 계속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줄로 알고 다시 한 발을 쏘았다'(상고이유서)고 했다. 정상우 소령의 시체체검안서에 따르면 정인형은 박선호가 쏜 총탄이 목을 관통하는 바람에 기도와 혈관이 파괴되어 거의 즉사했다고 한다.
 
 김태원이 쏜 총 탄은 그의 허리를 관통했지만 복강내의 손상은 없었다. 김태원은 정인형을 향해서 두 발을 쏘았다고 진술했으나 검안결과로는 한 발밖에 맞지 않았다. 이것도 김태원이 살해의지를 가지고 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주방에 쓰러져 있었던 김용섭 경호원을 향해 김태원이 발사한 총탄은 엉덩이에 맞았다. 그 전에 이미 김용섭은 다섯 발을 맞은 상태였다. 다 섯발 중 네 발은 가슴에 맞았다. 검안의사는 이 가슴의 총상을 치명상으로 보았다. 김태원은 안방에 쓰러져 있는 차지철을 쏠 때 무서워서 방안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 마루에 서서 비스듬히 안방을 향해서 두 발 을 쏘았다.
 
 엠16총탄의 탄피 두 개가 오른쪽으로 튀어 현관 부근에서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것도 김태원이 확고한 살의를 가지고 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쟁점은 차지철이 언제 사망했느냐는 것이다. 정상우 소령은 김재규가 그의 가슴에 쏜 제2탄이 '혈흉에 의한 호흡부전 및 심장부전'을 일으켜 차실장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진단했다. 김태원이 20분 뒤에 차지철의 복부에 쏜 두 발은 그의 사망과는 관계가 없다는얘기가 된다.
 
 그런데 옆방에 피신해 있었던 심수봉은 차지철이 있던 안방으로부터 신음소리가 나는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심수봉 증언의 문제점으로서 김태원의 변호인이던 김홍수는 이런 요지의 지적을 했다.
 
 '심수봉은 (김태원의 사격에 의한) 6∼7발의 총성 뒤에도 그 신음소리를 계속해서 들었다고 증언했는데 그렇다면 이 신음은 거리가 먼 안 방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고 가까운 주방에 있던 정보부 직원 김용남 이정오의 신음이었을 것이다.'.
 
 정상우 소령은 전역한 뒤에 전남의과대 병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는 1991년11월호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차지철이 가슴에 총탄을 맞아 폐를 손상당하고도 약 20분간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문제는 10·26사건의 사망자에 대한 부검이 없었다는 점이다. 검안만으로 사인을 판단할 수도 없고 증언만으로 판단하기도 어려우며 강압적인 분위기의 수사때 이루어진 자백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김태원은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강압에 의해서 '차지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쏘았다'는 거짓내용을 자필진술서에 써넣었다고 주장).기록상으로는 김태원이 쏜 총탄이 유일한 원인이 되어 사람이 죽었다는 확증은 없다. 따라서 '확인사살'이란 용어는 과장으로 판단된다. 김태원에 대한 최종 심리과정에서도 대법원판사 14명중 7명이 '파기환 송'의 의견이었다.
 
 마지막 회의에서 한 사람이 태도를 바꾸어 8대6으로 '피고인의 상고 기각'을 합의하게 되었고 그는 사형에 처해졌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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