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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기분이 아주 좋다는 것을 파악한 부산일보 김종신 기자는 시비조의 소재를 꺼냈다.
 
 '각하는 신문기자와 감정이라도 있습니까? 혁명 초기에는 각하를 잘 몰랐고 사상적으로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각하를 도우려 하는데 기자들을 백안시하시는 것은 솔직히 말씀드려 잘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설사 기자들이 각하를 이해 못한다손 치더라도 너그럽게 대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이지 오늘은 좀 따져야겠습니다.'
 
 박정희는 빙그레 웃더니 '오늘은 내가 김기자에게 톡톡히 당하는군'이라며 요리사를 불러 맥주를 청했다.
 '내 한 턱 낼테니까 오늘은 그만 해 둬. 나하고 따져 봤자 심판 볼 사람이 없으니까 소용없어.'
 
 김종신은 '지박사가 있지 않습니까?'라며 박대통령 곁에서 웃음을 터뜨리던 주치의 지홍창 박사를 가리켰다. 박정희는 '지박사는 내 편인데?'하며 다시 웃었다. 지박사는 '나는 사쿠라가 아닙니다. 엄정 중립입니다'라고 했다. 잠시 후 박대통령은 정색하며 김종신 기자에게 말문을 열었다.
 
 '내가 왜 기자를 미워하겠어? 이제 4, 5년 동안 같은 지붕 밑에 살다 보니 한 식구 같이 정이 들었는데.' '정이 그렇게 들었으면 대통령을 뵈오려고 비행장까지 10 리, 20리 길을 뿌연 흙먼지 마시면서 달려간 기자들에게 손 한번 안 흔들어 주시깁니까?'
 
 박대통령은 껄껄 웃더니 '그래, 그렇다면 확실히 그건 내 잘못이군. 내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던 모양이야. 자, 술이나 한 잔 들어'하며 맥주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 어느새 기자들이 네다섯명 몰려 와 대통령과 김종신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김기자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대통령이 없을 때 불평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이런 기회에 무조건 털어 놔'하고 선동했지만 기자들은 '말해 보았자 마찬가지'라면서 엉거주춤 하게 있었다. 박정희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슬쩍 비꼬며 반격했다.
 
 '기자들은 아마 자기가 쓰고 싶은 걸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모양이지? 청와대에 나오는 어떤 기자는 신문사에서 무조건 청와대를 족치는 기사를 쓰라는 통에 사흘이나 나오지를 못하고 고민했다는 소문을 들었어.'
 
 박정희는 '실례를 들어가며 사실대로 기사를 써야지 신문을 팔기 위해서 콩을 팥이라고 써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주었다.
 
 '신문이 부정부패를 들추어 내는 것은 국가를 위해 잘하는 일이지만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질색이야. 그러나 4년 동안 정부를 맡아 오면서 신문하고 정이 들어 버렸소.'
 
 박대통령과 대구사범 동창 관계인 황용주씨가 '세대지 필화사건'으로 몹시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공평하지 못한 데가 있다'며 사법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박정희는 김준연 의원의 예를 들면서 '없는 사실을 꾸며 일본에서 정치자금을 받았느니하는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은 따끔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대통령과가 친하다는 사람은 가혹하게 꼬투리를 잡는다'고 했다.
 
 대담이 끝나갈 무렵 한 기자가 '각하, 자주 좀 만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박대통령은 '그럼 하루 한 번씩 만나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기로 하지'라며 좌중을 폭소로 몰고 갔다. 이날 오후 박정희는 김성은 장관-해군참모총장과 노를 젖는 낚시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낚시를 했다. 박대통령은 이날도 낚시줄을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힌 뒤 줄이 감긴 자새를 까딱거리다 어느새 한 마리씩 낚아 올리곤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김장관은 대통령의 낚시 감각이 대단한 데 놀랐다고 한다. 군항 인근 해역이라 어부들이 출입하지 못한 맑은 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었다. 대통령과 두 장군들은 광어, 붉은돔, 흑돔, 농어 등을 잡아 올려 즉석에서 회를 떠 소주와 함께 마셨다.
 
 저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나온 그날 저녁 이후락 실장과 기자들은 진해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한동안 정구영 의장 등 공화당 일부에서 이후락 비서실장 해임을 건의했던 사건 때문에 착잡했던지 이후락은 탁상을 쾅 쾅 치며 쌓였던 울화통을 터뜨렸다.
 
 '이봐요, 내가 뭘 잘못했냐 말이야. 심심하면 물러나라니 내가 대통령 비서지 국회의원 비서란 말이야? 대통령께서 그만두라면 언제든지 그만 둘 용의가 있어. 하지만 자기네들이 뭔데 날 그만두라는 거야. 계집을 팔더라도 국회의원을 한 번 해 봐야겠어.'
 
 진해 별장에서 일박한 박대통령은 제주도로 떠나기 직전인 8월18일 아침에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장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같은 시간에 육영수 여사는 부대장 부인들과 환담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들이닥친 기자들을 육여사가 먼저 알아차리고 반갑게 맞았다. 촬영을 마친 박대통령이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기자들에게 다가오자 육여사는 '여러분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 저기 오시네요'라며 안내했다.
 
 박대통령은 진해 해군기지내 공항으로 향하던 중 기자들과의 이야기가 시국담으로 변해가자 거의 못들은 체하며 비행기에 올랐고, 뒤따르던 김성은 국방부장관은 기자들에게 '제주에 가서 봅시다'라며 손을 흔들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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