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령
위수령
1965년 8월25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의 공격적인 특별담화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나는 대다수 학생, 대다수 정치인, 그리고 대다수 교직자의 명예를 추락시키고, 크게는 국가 민족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이 일부 암적 존재를 뿌리 뽑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입니다. 한 정권의 운명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민주한국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조국의 근대화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또 정권의 평화적 교체라는 전통을 수립하기 위해서, 데모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데모를, 이 담화를 발표하는 이 시각부터는 철저하게 단호히 단속할 것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학생 데모로 인해 생산과 건설과 증산에 경주해야 할 우리 국력이 얼마나 헛되이 소모되고 있으며, 파괴된 공공기물과 일반시민의 손실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더구나 부상한 경찰의 수는 지난 3·24사태 이래 3182명이나 됩니다. 또한 본의 아니면서도 불량학생들에게 강제로 끌려 나와서 부상한 학생수도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처럼 막대한 손실을 스스로 자초할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나 내가 더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당하고만 인적, 물적 손실보다도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당하게 될 우리의 손실입니다. 10년, 20년 후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이 내일의 주인공으로서의 실력과 자질을 연마하는 데 소홀히 함으로써 생기게 될 지도자의 빈곤을 나는 무엇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이보다 더 큰 손실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학생들과 같은 세대의 일본 학생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하고 실력을 닦고 있는데, 우리 학생들은 날마다 데모나 하고 시간을 낭비하면 공부는 언제 하고, 실력은 언제 양성하는 것입니까.
일본을 경계하고 또 다시 침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학생보다도 더 많이 우리 학생들은 공부하고 실력을 배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직자와 학부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데모가 근절되지 않는다면 학원을 폐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데모 만능의 폐풍을 기어이 뿌리 뽑아야 겠고, 또 교직자가 그 본래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데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추궁하여 교육을 그 본연의 자세로 돌려 놓아야 하겠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따라서 나는 다시 강조하거니와 첫째, 모든 학생들은 오늘로서 학생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학업에 충실할 것이며, 또 교직자나 학교 당국은 학원질서를 유지하는 데 전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무능한 교직자나 학교당국에 대하여는 엄격한 책임을 추궁하고 가차없는 행정조치를 취할 것을 경고해 두는 바입니다.
한편,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해야 할 치안 당국은 일체의 불법 데모를 더욱 가차없이 단속할 것이며 대다수 국민의 안녕을 위하여 소수 난동자의 발본색원적인 철저한 조치를 취할 것을 이 자리에서 엄격히 지시해 두는 바입니다'
이 연설에 대해 민중당 김대중 대변인은 '너무나 독선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다'고 논평했다. 이 연설은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일부 몰지각한 학생, 교수, 정치인들'을 겨냥한 박정희의 연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학생시위는 일반인의 동참을 얻지 못하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1965년 8월26일 아침, 정부는 경찰력만으로는 치안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윤치영 서울시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울시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수도경비사령부와 인근 6사단 병력이 시내로 들어와 시위 진압에 합류했다. 최우근 수도경비사령관이 위수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작전권을 가진)비치 유엔군 사령관과 만나 병력동원에 협조를 받았다'면서 '계엄령 선포는 현재로선 고려하고 있지 않으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무장군인들은 고려대와 연세대로 들어가 시위자를 연행하고 다른 대학에서도 시위대가 교문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시위를 취재하던 상당수의 기자들은 군인들로부터 구타당했다. 박대통령은 27일에는 시위사태에 책임을 지워 윤천주 문교장관과 신태환 서울대 총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권오병 법무차관과 유기천 교수를 임명했다.
29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이틀 전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한 예비역 장성 11명 가운데 김홍일(군사정부의 외무장관) 박병권(군정내각의 국방장관) 김재춘(군정시절의 정보부장) 박원빈(군정 내각의 무임소 장관)을 구속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집권자들이야말로 이적행위자이며, 국민단합을 파괴하는 반민족행위자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반국가행위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현정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였다.
박대통령이 이처럼 자신만만하게 강공책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월남파병과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을 고대해 온 미국의 존슨 행정부의 묵시적인 지지가 있었고 한국군의 장교단이 일치 단결하여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었던 데다가 야당이 강온파로 분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