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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부 도약의 시대 : 직업공무원제도
 제17부 도약의 시대 : 직업공무원제도
 
 직업공무원제도
 
 박정희가 국가 근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견인차는 공무원집단이었다. 5·16 혁명 이후 군정 3년간 한국 사회의 선진집단이던 장교들은 낙후된 공무원 조직을 개혁하고 현대적 조직운영기법을 가르쳐 주었다. 1963년 12월의 민정이양 뒤 장교단은 정치에서 손을 떼고 군출신 엘리트 집단이 민간인 신분으로서 국가를 이끌고 갔다.
 
 군에 의해 주도된 공무원 조직의 재편성 작업, 그 중심인물은 이석제 총무처 장관이었다. 그는 혁명주체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정시절 최고회의 법사위원장-내각사무처장을 지내며 법령정비-제3공화국 헌법제정-공무원 숙청작업 등을 지휘했다. 민정이양 이후엔 총무처 장관-감사원장으로 13년간 봉직하면서 한국의 행정을 세계에서 가장 능률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석제는 민정이양 때 교수가 될 꿈을 꾸고 있었다. 신의주에서 태어나 해방직후 단신 월남, 연고지가 없었던 그는 '막상 제3공화국이 출범하니 이제 내 할 일은 끝났고, 국회의원으로 나가자니 실향민 처지에 마땅히 등을 기댈 고향도 없어 법학 공부를 계속해 학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청와대로 들어 간 이석제는 '각하, 저는 이제 돌아가 공부나 더 해 볼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박대통령은 '말도 안되는 소리 꺼내지도 마시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박정희만큼 고집도 셌던 이석제는 물러나지 않고 간청을 거듭했다. 그러자 박대통령도 '국가를 위해 장관을 맡으라는데 무얼 그러는 거요'라며 화를 냈다.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 이석제를 향해 박정희는 일갈했다.
 
 '당신은 국가를 위해 총을 들고 혁명을 한 사람이오. 이제 두 팔 걷어붙이고 일을 시작하려는 마당에 '나 공부하겠으니 빼 주시오'하는 발상이 너무 무책임하지 않소.'
 
 이 말을 한 뒤 박대통령은 훌쩍 방을 나가버렸다. 텅 빈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홀로 앉은 이석제는 창밖을 쳐다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앉아 있으니 정리가 좀 됩디다. 막상 혁명을 해서 국민들로부터 신임은 받았다고 하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로는 혁명전이나 다름 없었어요. 당장 닥쳐올 춘궁기를 어떻게 넘길 것이냐가 최대 현안이던 시절입니다. 박대통령의 주장대로 혁명주체들은 5·16을 거사한 엄중한 역사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40도 안된 나이에 혁명에 참여했고 방대한 국가 조직을 움직여 본 저로서는 미련은 없었습니다. 다만 혁명동지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권력투쟁을 체험하면서 아카데믹한 분위기로 피해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박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사치스러운 발상이었을 겁니다.'
 
 이석제는 '에라, 한 번 전력을 다해 뛰어 보자'고 마음을 굳혔다.
 
 박정희는 독서를 통해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과 그들의 탄탄한 국가 공무원제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총무처장관직을 수락하자 박대통령은 이장관을 불러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공무원은 신분이 안정되어야 열성적으로 일하는 집단이오. 공무원들이 자진해서 뛰어야 최고 지도자의 뜻이 하부까지 전달되고 제대로 수행되는 것이오. 국가 근대화의 선봉으로서의 공무원 제도를 확립해야 되는데…. 국가의 3대 지주가 있다는데 그 하나는 군이 국방을 튼튼히 해 주어야 하고, 둘째는 공직자가 본분을 다하는 것이고, 셋째는 재벌들이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것일 거요. 이장관이 우선 공무원을 알아서 해줘야겠소. 이장관이 나서서 정권이 바뀌어도 신분 변동이 없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공무원 제도의 근간을 정비해 주시오.'
 
 이석제 장관은 '직업 공무원 제도'란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고 한다. 5·16 이후 법사위원장으로서 전체 공무원의 18%를 숙정한 뒤 공무원 처우개선을 추진했던 경험을 가진 이장관은 박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각하, 아무리 제도가 좋고, 기계가 좋다 해도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아닙니까. 각하께서 아무리 훌륭하셔도 사람을 잘못 쓰면 일이 되질 않습니다. 이승만 박사께서 애국심이 부족하셨습니까, 능력이 부족하셨습니까. 자유당 정치인들 대부분이 지주계급들이었습니다. 소작농들 등 처먹던 습관대로 원조물자 빼 돌리니 공무원들이 부정을 하지 않고는 생계유지가 안되는 것이잖습니까. '
 
 '그래, 맞아.'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이 부패하지 않고 신나게 일할 수 있게 하느냐를 알기 위해 외국엘 좀 다녀봐야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라구.'
 
 1964년 봄, 이석제 장관은 약 1개월 동안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대만, 필리핀을 방문하고 각국의 공무원 제도를 살폈다. 이장관은 미 행정부 인사위원회 위원장의 지원을 받아 열 두개 부서의 국장들을 하루에 한 명씩 인터뷰하며 2주일을 보냈다.
 
 '때로는 시험 치듯 제가 질문을 퍼부을 때도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해당분야에 대해서 못하는 답변이 없었습니다. 귀신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10∼15년간 국장직만 계속 수행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직급은 오르지 않는 대신 봉급만 오르는 제도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공무원의 채용, 배치, 봉급, 인사고과제도, 퇴직후 생활보장을 위한 연금제도 등 미국 공무원제도를 살펴보느라 강행군을 했던 이장관에게 미 인사위원회 위원들은 '당신네 나라는 잘 될 것 같습니다. 여러나라에서 우리 인사위원회로 참관을 오곤 하지만 당신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귀국해 보니 우리 나라의 공무원제도가 이렇게 후진됐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공무원 정원제도도 없어 장관이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를 할 수 있었고 시험을 치르면 청탁으로 당락이 결정되곤 했습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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