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JP의 복귀 구상
 JP의 복귀 구상
 
 JP의 복귀 구상
 
 1965년 말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의 중대 고비였던 한일협정타결 문제와 월남파병을 성사시킴으로써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 무렵 박정희는 기업인과 공무원들의 기강을 점검하는 등 국정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11월7일 일요일, 박대통령은 하루종일 경제관계 상황판으로 꽉 들어찬 청와대 집무실에 혼자 앉아 제1차 5개년 계획사업 진척도를 검토했다. 오후에는 몇 몇 정부 경제관계자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작성중인 제2차 5개년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대통령은 '보시오, 국제수지도 당초계획을 이렇게 훌쩍 넘었는데 단지 일부 업자들이 샘플과 다른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바람에 국제신용을 떨어뜨리고 있단 말이야.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상품의 질을 저하시키는 메이커는 체형을 가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겠어'라고 역정을 냈다.
 
 대통령은 11월 18일 해외공관장들에게 친서를 보냈다.
 
 <해외에 출입하는 국내업자들 중 조금이라도 국가의 체면을 손상 또는 국제상도의(상도의)에 위배하는 행위를 하거나 우리나라 업자끼리 지나친 경합 또는 덤핑을 함으로써 국가이익에 역행하는 행위자가 있을 때에는 직접 정부를 대표해서 엄격히 충고하고 지체없이 대통령에게 서면 또는 전문으로 보고하라.>
 
 11월22일 오전 박대통령은 귀임인사차 방문한 신상철 주월대사와 김좌겸 주월경제협조단장에게도 '월남에서 국위를 떨어뜨리는 업자가 있으면 직접 제재조치를 취하고 본국 정부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12월1일 박정희 대통령은 공무원 기강확립을 위해 출근시간 준수, 점심 외식 및 요정출입 금지지시를 내렸다. 이튿날부터 중앙청 근무 공무원들은 정확하게 출퇴근하기 시작했고 세 군데의 구내 식당은 점심때면 초만원을 이루곤 했다. 이 사실이 조선일보를 통해 보도되자 박정희는 측근앞에서 웃으면서 불만을 털어 놓았다.
 
 '내가 의전비서관 두 사람을 시켜 지시문 내용을 구술하고, 30분만에 타자기로 쳐서 국무총리 및 각부장관 등 30명의 기관장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보냈지. 그리고 그 내용을 외부에 누설하지 말고 각 기관장이 은밀히 실천하여 밖에서 말썽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당부했는데, 하루도 못가서 보도되다니… 한번 비밀을 지키라고 한 것이 이렇게 안 지켜져서야 어떻게 되지.'
 
 1965년 12월4일 아침, 청와대 뜰 안에서는 청와대 부속실 직원들만이 모인 가운데 청와대 신관 개관식을 가졌다.
 
 총건평 1천80평에 43개의 방을 가진 아담한 3층(지하 포함 4층)짜리 새 건물은 박종규 경호실장이 박대통령을 설득, 지은 것이다. 기존의 청와대 본관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너무 오래되어 사람이 걸어다니면 바닥에서 소리가 날 뿐 아니라 공간도 좁아 대통령은 운동부족을 느낄 정도이고 가족들도 쓰기에 불편했다.
 
 이날 자축회는 처음에 국무위원과 국영기업체장, 3군대표들이 초청되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박대통령이 '그런 것은 다 취소해'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직원끼리만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날 오후에야 새 건물로 내려 와 본 박정희는 뒤늦게 온 손님들과 함께 지하실의 사격장과 1층에 마련된 기자실도 구경했다. 약 5000만원의 경비가 소요된 신관 3층에는 대통령 집무실, 회의실, 비서실장실, 경호실장실이 마련되었고 2층에는 경호실과 무전실, 1층에는 비서실과 기자실이, 지하에는 실내 사격장과 식당 및 영사실이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 난 대통령 전용 계단은 청와대 본관과 통하게 되어 있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 대통령이 얼마나 신관을 자주 애용하느냐가 건물의 가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박정희는 평소 본관에 불편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국가경제를 생각할 때 자신의 집무실은 아무래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박대통령은 생애 마지막까지 신관 집무실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다.
 
 이 무렵 박정희는 공화당 정비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11월20일 토요일 오후, 박정희는 공화당의 김종필, 길재호 의원 그리고 홍종철 공보부 장관과 함께 김의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광나루 근처를 세 시간에 걸쳐 드라이브했다. 21일 아침, 박대통령은 삼청동의 정일권 국무총리 관저로 찾아가 정총리와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와대 대변인은 '각하께서 김종필 의원과 광나루에 나간 것은 늦가을 주말의 들바람을 쐬기 위한 것이고, 총리 방문은 그의 48회 생일을 맞아 선물(귤화분)을 들고 축하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당과 행정부 주변에서는 구구한 해석들을 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1964년 6·3사태 직후 두번째 외유를 나갔다가 그해 연말에 돌아와 한가하게 지내던 김종필을 공화당의장으로 복귀시키려 했다. 김종필은 1965년 정초에 아내와 함께 청와대로 세배를 갔다. 이때 박정희는 저녁을 함께 하면서 모처럼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앞으로 내가 물러나면 임자에게 뒤를 맡겨야 할 것이니까 지금부터 몸조심을 해. 지금은 사람들이 내가 있으니까 넘어가지만 내가 없으면 그들이 모두 임자를 헐뜯으려고 해. 그러니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해. 첫째, 돈에 관한 문제는 개입하지 말아. 필요한 것은 나에게 이야기하고…. 둘째는 인사문제야. 어느 곳에든 자기 사람을 보내지 말아.'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