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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
 항명
 
 항명
 
 1965년 12월16일로 예정된 국회의장단 선출투표를 앞두고 공화당 의장을 지낸 정구영 의원은 당내의 김종필 계열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의장 후보로 지명된 이효상 대신 자신을 당선시키려고 뛰고 있는데 대해 일말의 불안을 느꼈다. 그는 김동환(육사8기 출신) 원내총무에게 비서를 보내 이런 뜻을 전하도록 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큰 혼선인데 내가 의장에 당선된다 해도 의장직을 수락하지 않겠다. 아마도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2차 투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형편이 되면 투표를 미루고 의원총회를 열어달라. 내가 총회에서 의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김총무는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1차 투표에서 정구영은 69표, 이효상은 55표를 얻었으나 둘 다 과반수에 미달했다. 그동안 이효상 의장 불신임안을 내기도 했던 야당의원들은 이상하게도 거의가 기권했다. 당시 공화당 의원수는 108명이었는데 공화당원의 과반수가 총재에 항명한 것이다. 항명파에는 김종필 직계(구주류)뿐만 아니라 이효상 의장의 잦은 돌출발언에 불만이 많았던 의원들도 포함되었다.
 
 당의장 복귀가 결정되어 있던 김종필은 정구영을 찾아와서 '의원총회 이전에 내가 할 일이 있으니 좀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하더니 청와대로 올라갔다. 박대통령에게 번의를 건의하려고 했는데 대통령은 김종필을 만나주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의원총회에서 정구영은 신상발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박대통령의) 의장 지명이 민주절차를 무시하고 명령식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1차 투표로써 불만을 표시했으니 이제는 총재의 지명을 따르자. 내가 당선되더라도 결코 수락하지 않겠다.'
 
 의원총회는 전예용 의장서리 등 다섯 명의 대표를 청와대로 보내 총재의 결심을 다시 받아오라고 했다. 이후락 비서실장은 '각하께서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맘대로 처리하라고 하신다'면서 면담을 주선해 주지 않았다. 이들은 두 시간이나 버티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2차 투표에서 이효상은 재적과반수인 88표를 겨우 얻어 당선되고 정구영은 60표를 얻었다. 야당의원들은 뜻밖에도 태반이 이효상 의장 지지를 선택했다. 그동안 야당의 공격표적이 되었던 이효상은 야당표로 당선된 것이다. 박정희 총재의 직계인 공화당 신주류와 김형욱의 정보부가 야당의원들을 상대로 집요한 공작을 벌인 결과였다. 야당은 여당의 당내민주화 움직임을 외면하고 박대통령의 독단을 지원한 꼴이 되었다. 이의장 재선이 선포되는 순간 의원석에서 박수를 친 사람은 정구영뿐이었다. 다음날 오전 박대통령은 공화당 당무위원들을 청와대로 불러다 놓고 격앙된 말투로 경고했다.
 
 '정당이란 이념, 정책, 그리고 지도체계를 뒷받침하는 엄격한 당기라는 3대 기간 위에 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 야당이 성장하지 못한 것도 기강이 서 있지 않은 때문인데 공화당은 지금 야당을 닮아가고 있다. 이번에 당의 기강을 무너뜨린 주동자들을 당이 단호히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나서겠다.'
 
 당무위원들은 박대통령의 '단호한 처리'를 제명요구로 받아들였다. 이런 박대통령의 경고에 얼어붙은 공화당은 12월22일의 상임위원장 선거에서는 박대통령이 지명한 대로 충실히 따랐다.
 
 12월20일 박대통령은 섬진강 댐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하여 전북 임실역까지 내려가는 특별열차에 정구영을 동승시켰다. 박대통령은 정의원을 옆자리에 앉히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은 항명파동건을 꺼내면서 주동자 3∼4명은 제명하고야 말겠다고 했다. 원로변호사로서 깐깐한 원칙주의자인 정구영은 차분하게 말했다.
 
 '총재 개인 의사를 받들지 않았다고 해서 당명에 대한 반란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각하께서 조금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당명과 총재명령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니, 선생님도, 이건 인사문제 아닙니까. 100명이 넘는 의원들 앞에서 어떻게 이런 인사문제를 걸어놓고 토론하도록 합니까. 이 사람, 저 사람으로 갈려 시끄러울텐데.'
 
 '그건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원총회에서 인사문제는 총재와 당의장에게 위임하자는 결의를 하도록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그런 절차도 없이 각하께서 불쑥 의장은 누구, 상임위원장은 누구 하는 식으로 지명을 해버리니까 저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항명파를) 만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김종필 의원이 곧 당의장으로 복귀하게 될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가면 또 김의장이 독주한다 해서 소외된 쪽에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당분간 제가 당을 통제해야겠는데 명령이 통하지 않으면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정구영은 거듭해서 당내민주주의의 중요성과 의원총회의 의견을 존중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한 박대통령의 말이 의외였다.
 
 '좋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런데 어쨌거나 공화당내 50표가 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까짓 야당 40표, 그것은 얼마든지 제표로 끄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구영은 충격을 받았다. 이번 국회의장 선거에서 이효상을 찍은 공화당내 50명의 의원을 박정희는 일종의 사병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고 야당의원들은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하는 자들'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정구영은 '사리를 잘 아는 이 양반이 이런 말을 하다니, 앞으로 정치가 불행해지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고 한다. 그는 '대정당을 이끌어가시는 각하답지 않은 말씀입니다'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좀 거북한 장면이 되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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