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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죽음
 장인의 죽음
 
 장인의 죽음
 
 1965년 12월26일 오전,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를 주임무로 해 오던 권상하 청와대 정보비서관(대구사범
 
 72세에 죽은 육종관은 1893년 충북 옥천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곡 도매상, 금광, 인삼 가공업 등을 통해 번 돈으로 충북 옥천 교동의 고가와 과수원 등을 구입, 대지 3000평의 대저택에서 살았다. 16세때 이경령을 아내로 맞이 하여 육인순(홍세표 전 외환은행장의 모), 육인수(전 국회의원), 육영수, 육예수를 낳았다. 그는 또 다섯 명의 소실을 두어 모두 22명의 자손을 보았다.
 
 박정희는 육영수의 결혼에 반대하는 장인과 헤어진 장모를 모시고 가난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돈 많은 장인에게 손 한 번 벌린 적이 없었다. 이경령도 먹을 것이 없어 맹물에 국수만 말아 먹거나 얼음장 같은 방에서 겨울을 나야 할 때조차 남편 육종관의 도움을 청한 적이 없었다. 이경령으로서는 여러 명의 소실들로 인해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기억들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고, 육영수로서는 친어머니보다 소실들에게 더 많은 정성을 쏟았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자신의 결혼을 반대한 기억들이 현실의 고통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정희도 육종관이 실리적인 시각으로만 자신을 평가한 데 대한 오기가 있었다.
 
 사위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했던 육종관도 사위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기뻐하거나 자랑하고 다닌 적이 없었다. 다만 소실의 자녀들에게는 가끔씩 '청와대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그 잔디와 정원이 그렇게 좋다던데…'하고 말했다. 정원가꾸기에 상당한 재주가 있었던 육종관은 청와대 정원이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육영수는 청와대에서 모시고 살던 어머니와 서울에 기거하는 아버지를 화해시키려 몇 번 어머니 이경령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경령은 '내가 그 늙은이 만나면 속이 터져서…'라며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곤 했다고 한다.
 
 당시 박대통령과의 친분을 거론하며 사기행각을 벌인 사건들이 많았다. 경찰, 군 수사기관, 정보부 등에서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7000여명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주장하고 있었다. 친인척 관계와 동향관계에서부터 구미보통학교 동창, 대구사범학교 동창, 문경보통학교 교사시절의 제자-학부형, 만주 군관학교 동기생, 일본 육사 동기생, 국군 장교시절의 상하 관계 등 각양 각색이었다. 하루는 박대통령이 권상하 비서관을 부르더니 '자네, 나를 잘 안다고 팔고 다니는 놈들을 전부 조사해'라고 지시했다.
 
 권비서관은 한 달 동안 이 명단을 취합해 도별로 정리한 다음 대통령 집무실로 들고 들어갔다. 박정희는 '이 사람아. 내가 지금 바쁘니까 이번 일요일 밤에 얘기하세'라고 물린 뒤 일요일 오후에 권 비서관이 들고 간 자료를 살펴 보았다. 박정희는 이 날 7000여명의 명단을 전부 확인하면서 '이 사람은 잘 안다' '이 사람은 전혀 기억이 없다'는 식으로 구분해 주었다. 잘 안다는 사람이 500여명. 이들 중 친족인 고령 박씨 일가, 외족인 수원 백씨 일가 및 처족인 육종관씨 일가에 대한 집중 감시를 명령했다. 이른바 '대통령 친인척 경호 임무'는 해당지역 경찰서 정보과에서 전담하게 되어 박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육종관에 대한 감시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무렵 육종관은 소실중 한 명과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매일 아침 형사가 집 앞에 나타났다. 여름날 대문을 열어두면 형사는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있곤 했다. 외출할 때면 어김없이 뒤를 따라 다녔다. 육종관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참다 못한 육종관은 조카 송재관을 불러 '너희 외숙모한테 얘기 좀 해. 내가 뭐 독립운동 할 것도 아닌데 왜 맨날 형사가 따라 붙냐. 사위가 대통령이면 대통령이지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해야 되냐 말이다'라며 항변했다. 청와대에서 기거하던 이경령은 남편의 하소연을 전해 들은 뒤 사위에게 말해 곧 바로 육종관에 대한 경호겸 감시는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육종관은 폐암진단을 받고 메디컬 센터에 입원, 수술을 받은 뒤 퇴원했다.
 
 1965년 가을 육종관은 다시 폐암이 악화되어 메디컬 센터에 입원하고 있었다. 산소 마스크를 쓴 채 말을 거의 할 수 없는 상태로 누워 손짓만 할 정도였다. 육영수는 비서로 있던 조카 홍정자와 가끔 문병을 갔다. 박대통령도 늦은 밤 아무도 몰래 육영수와 함께 문병을 다녀왔다고 한다. 12월 초, 육인수 의원은 자택 사랑방에 희망이 없는 아버지를 모셨다.
 
 이경령은 육영수를 앞세워 병문안을 왔지만 사실상 임종이었다. 육종관은 의식이 거의 없었다. 육영수는 '어머님, 아버님이 마지막이신데요, 살아 계실 때 두 분이 나란히 계신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세요'라고 했다. 마지못한 이경령은 침대곁에 서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육종관은 의식없이 누운 채 촬영을 했다. 12월 중순엔 박대통령이 육영수와 함께 문병했다.
 
 12월30일 새벽에 이석제 총무처 장관은 박대통령과 함께 발인식에 참석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박정희는 표정도 없이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장인과 대통령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던 이(이)장관은 '끝까지 자존심으로 버티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날 저녁 대통령을 만난 이석제 장관이 '하관식에 다녀 왔습니다. 장례식은 잘 끝났습니다'라고 보고하자 박대통령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영감에게 밉 뵈였어.'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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