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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사단 추가 派越
 1개 사단 추가 派越
 
 한 국가가 數萬(수만)의 젊은이들을 戰線(전선)에 보내놓고 있다는 것은 나 라의 분위기에 많은 긴장과 흥분을 주는 것이었다. 1966년 1월12일엔 월남 전선에서 전사한 12位(위)의 국군 英靈(영령)들이 미군기 편으로 김포공항 에 還國(환국)했다. 1월10일 국방부는 월남에 투입된 해병여단의 청룡 제1 호 작전 戰果를 발표했다. 3백94명의 공산게릴라들을 사살했다는 것이었다 . 사흘 뒤 신문에는 이 작전에서 戰死(전사)한 청룡부대 장병 22명의 이름 들이 실렸다. 7일 뒤 戰果발표에선 국군의 전사자 수가 28명으로, 전투부대 참전 3개월이 된 2월4일엔 48명으로 늘었다.
 朴正熙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언론도(야당도) 파월국군에 대해서는 따 뜻한 자세로 일관했다. 정권이나 정당보다도 國軍(국군)이란 말에서 국민은 더한 신뢰를 느끼던 시절이었다. 신문들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派越 (파월)장병들이 모여 사는 군인아파트를 소개하고 「월남통신」란 같은 고 정란을 만들어 전선소식을 정기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맹호는 간다」 「빨간 마후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같은 군가들이 유행 가처럼 친근하게 불리고 있었다. 국위선양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고 사회분 위기의 남성화, 군사문화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 1960년대 후반 기의 한국이었다.
 
 1966년 1월7일자 미국의 크리스찬 모니터紙는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하여 한국이 곧 2만명을 월남에 增派(증파)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15일 金聖恩(김성은) 국방장관은 『蔡命新(채명신) 주월사령관의 요청에 의하여 국 군의 증파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또 『증파 에 앞서 국군장비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흘 뒤 워싱턴 포스트紙는 험프리 부통령이 지난 정초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한국군의 증 파를 공식적으로 요청했었다고 보도했다.
 
 이즈음 韓美(한미)양국은 李東元(이동원) 외무장관과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 를 양측 대표로 하여 본격적인 증파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언론은 한국군 현대화와 파월국군에 대한 대우개선을 주제로 한 기사를 연일 보도하면서 한국 정부측의 교섭을 측면 지원하였다. 1월25일자 동아일보는 「현지호소 …가장 용감한 군인에 가장 적은 보수」란 제목으로 한국군의 근무수당이 월남군인의 5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1월27일자 신문에는 맹호부대 1연대 2대대 5중대 2소대 崔京煥(최경환) 상병이 베트콩의 총격을 받아 숨 지면서 호주머니에서 14달러 10센트를 꺼내더니 동료들에게 이렇게 부탁했 다는 기사가 실렸다.
 
 
 『나는 부모도 친척도 없어…. 어디 있는지 모를 남동생을 찾아 이 돈을…』 사망 후 소지품을 검사해보니 동생 최군환 앞으로 된 예금통장이 하나 있었 고 19달러가 입금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朴正熙 대통령은 1개 사단 增派에 따른 代價(대가)를 미국 정부로부터 아주 비싸게 받아내겠다는 작심을 하 고 黨政(당정)을 총동원하다시피하여 對美(대미)교섭을 벌이게 했다. 비밀분류에서 해제된 1966년 2월1일자 미국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 문서가 있다. 안보회의의 동아시아 담당관 제 임스 C 톰슨이 대통령 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에게 올린 것이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윈스롭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가 보고하기를 朴正熙 대통령은 우리가 요청 한 日程(일정)에 따라 월남에 추가파병을 하는 데 동의했다. 즉, 오는 4월 에 1개 여단과 지원부대를, 오는 7월에는 1개 사단과 그 지원부대를 파견키 로 했다. 朴(박)대통령은 월요일에 동남아시아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데 2월 17일에 귀국한 다음에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다. 브라운 대사는 朴대통령이 출국하는 2월7일 전에 우리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朴대통령에게 감사를 전 함으로써 朴正熙로 하여금 자신의 결심을 변경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았으면 한다고 건의해왔다>
 
 이틀 뒤 맥조지 번디는 존슨 대통령에게 「1개 사단의 追加派越(추가파월) 에 대한 甘味料(감미료)」로서 1967 회계년도에 한국에 대한 1천5백만 달러 의 개발차관을 제공하는 데 동의해줄 것을 건의했다. 번디는 『이 액수는 통상수준보다도 5백만 달러가 많지만 한국측이 요구한 여러 가지 대가 가운 데는 가장 값이 싸게 치는 것이다. 朴대통령도 무엇인가를 얻어내어야 유권 자들에게 1개 사단 增派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미국은 2월7일 하와이에서 美越(미월)정상회담을 가졌다. 朴대통령은 월남 전에 대한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협의하게 되어 있는데 이 회담에서 한국이 소외되었다고 화를 냈다. 李東元(이동원) 장관은 브라운 대사에게 1개 사 단 增派를 再考(재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측에서는 이견 조정을 위해 험프리 부통령을 急派(급파)하겠다고 알려왔다. 그 기간 朴대통령은 동남아 3국을 방문하게 되어 있었는데 험프리를 때맞추어 방콕으로 보내겠 다는 것이었다. 朴대통령은 방문국에 결례가 된다면서 이 회담을 거절했다 . 험프리는 朴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후인 2월22일 서울에 왔다. 2월23일 朴正熙는 청와대 신관 3층의 집무실에서 험프리 부통령, 해리만 대 사, 발렌티 보좌관을 맞아 국군增派 문제를 한시간 반 동안 논의했다. 험프 리는 離韓(이한) 기자회견에서 『韓美 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할 필요는 없다 . 휴전선에 미군이 단 한 명 남아 있더라도 미국은 한국의 방위를 위해 끝 까지 싸울 것이다』고 말했다.
 
 험프리 부통령을 수행하여 한국 등 동아시아를 巡訪(순방)하고 돌아온 대통령 特補(특보) 잭 발렌티는 2월25일 존슨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이런 표현을 했다.
 
 <한국정부 인사들은 그들이 더 많은 현대식 무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 들은 곧 월남에 4만5천명의 병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들을 무장시키고 급료를 주는 데 들어가는 돈은 같은 숫자의 미국인들을 쓸 경우에 비교해 서는 콩알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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