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1966년 2월7일 오후 4시53분 朴正熙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들이 탄 루프트한 자 전세機(기)가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 부근의 수방 공항에 도착했 다. 朴대통령 부부는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崔圭夏(최규하) 駐 말레이시아 대사와 키프조하리 말레이시아 의전장으로부터 機上(기상) 영접 을 받았다.
朴대통령은 도착성명을 통해 『자유의 이웃들이 서로 결속하고 서로 도와 「자유의 의지」를 더욱 굳혀 나가는 데서 안보와 번영이 관철될 것으로 나 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스마일 나시루딘 샤 말레이시아 국왕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朴대통령 부 부와 수행원들은 샤 국왕 부처, 라만 수상과 고위관료들의 환영을 받으며 공항에서 약 40분간에 걸친 의전행사를 가진 뒤 숙소로 출발했다. 朴대통령 부부는 이스타나 네가라宮에서 여장을 푼 뒤 오후 8시에는 국왕 부처를 예방하고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했다. 오후 9시부터 테타무宮에서 열 린 만찬에서 샤 국왕은 환영사를 통해 『양국이 비슷한 경험에 직면하였으 며 다 같이 호전적인 공산주의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1인당 1백 달러 정도로 아시아 最貧國(최빈국 ) 수준. 말레이시아는 풍부한 지하자원(고무, 주석, 석유자원 등)을 수출해 연간소득이 1인당 3백23달러나 되어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국 가였다. 이 나라는 영국과의 방위조약에 의존한 채 육해공군을 다 합쳐 2만 명에 불과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朴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방문 직전 월 남에 추가파병 결정을 하여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사단급 전투부대(한국=4만 5천명, 필리핀=2천명, 호주=4천5백명, 뉴질랜드=1백50명, 태국=17명)를 파 병한 나라가 되었다는 점 때문에 朴대통령과 수행기자들은 잘 사는 말레이 시아에 대하여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朴대통령은 교포들과 조찬을 가진 뒤 오전 11시 반에 공식 수 행원 전원을 데리고 말레이시아 국가개발 상황실을 방문했다. 朴대통령은 라자크 부수상으로부터 금년 말에 끝나는 제2차 말레이시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추진상황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朴대통령은 수첩을 꺼내 메모를 해 가다가 外資導入(외자도입) 부분이 나오자 라자크 부수상에게 그것의 활 용방법을 질문하기도 했다.
이날 朴대통령은 말레이시아의 주택정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시 말레 이시아 정부는 도심에서 떨어진 숲속이나 오지에 집을 짓도록 유도하고 집 을 지으면 정부가 도로를 내 주는 정책을 썼다. 교통문제를 해결해 주니 사 람들이 여기저기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그 부근이 저절로 개발 되더란 것이다.
라자크 부수상은 말레이시아의 고민도 토로했다. 고무, 코코넛 등 대농장의 83%, 주석 생산의 63%, 무역의 70%에 달하는 실권을 영국인이 쥐고 있을 뿐 아니라 다수의 본토인들보다 상술에 뛰어난 화교들이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동행했던 부산일보 金鍾信(김종신) 기자는 이 설 명을 듣고 나서는 『말레이시아는 언젠가 정치적인 폭발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고 회고했다.
朴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가개발 상황실을 방문하는 동안 陸英修(육영수) 여사는 결핵병원과 고아원을 시찰하고 3천 말레이시아 달러씩을 기증했다. 한복 차림으로 나선 陸英修 여사에게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배치한 여자 경 호원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이날 오후 한국의 기자단 17명은 압둘 라만 말레이시아 공보相(상)의 초청 을 받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가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통에 기자들이 공보상을 상전 모시듯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초청을 거절해 버렸다. 대신, 말레이시아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한국 기자들은 洪鍾哲(홍종철) 공보부 장관과 격의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후 5시, 朴대통령은 말레이시아 국회의사당 맞은편에 세워진 독립현충 기 념탑 除幕式(제막식)에 참석했다. 말레이시아는 1948년부터 1960년 사이, 영국의 특수부대 SAS의 지원을 받아 밀림 속에서 활동하던 공산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에서 쓰러진 용사들의 英靈(영령)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18m 높이 의 동상 앞에서 라만 수상은 『朴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을 보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군중으로부터 박수를 유도했다. 朴대통령은 제막식이 끝난 뒤 李東元 외무장관에게 『말레이시아 국립묘지 와 현충탑이 참 멋있는데, 아, 우리도 이래야 하는데…그동안 너무 소홀했 어』라며 회한에 찬 말을 했다. 귀국 후 朴대통령은 동작동 국립묘지 단장 을 지시했다.
朴대통령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면서 눈여겨본 것은 국회의사당이었다. 동 상 제막식 도중 건너편의 초현대식 의사당 건물을 바라보던 朴대통령은 『 역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상징적 의미나마 국회의사당만큼은 멋지고 봐야 해』라고 했다.
朴대통령을 수행했던 李萬燮(이만섭)의원은 귀국한 뒤 쓴 隨行記(수행기)에 서 말레이시아 국회의사당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의원 각자가 방 하나씩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도 경제적 여유가 허락하는 한 지금의 劇場(극장)으로부터 새로운 의사당으 로 옮겨 모든 의원들에게 방 하나씩을 주어 연구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茶房(다방) 정치를 지양해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