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눈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대령은 아내에게 작별을 고한 뒤 부장 차로 돌아오더니 운전사 유씨에게 담배를 달라고 했다. 그는 담배연기 를 깊게 들여마시고는 내뿜더니 입을 뗐다.
'유 기사, 유 기사는 차 끌고 들어가지. 나는 어디론가 갈테니.' '아니 이 밤에 어디로 가십니까?'.
박대령은 유씨의 만류를 받고는 다시 차를 타더니 잠실로 가자고 했다. 잠실 아파트 지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간 박대령은 부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부장이 어디 있는지 아직도 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로 돌아온 박흥주는 라디오를 켰다. 음악 만 나오고 있었다. 유석문기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모르겠어.'.
박대령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새벽7시를 넘어 라디오를 트니 '대 통령 유고와 김재규 구속 수사중'이란 방송이 나오는 것이었다. 유기 사가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또 물었다.
'나는 몰라.'. '그럼 남산으로 가시죠.'. '좋아. 아침이나 먹고 이문동 본청으로 가자.'.
그러나 잠실 부근에서는 문을 연 음식점을 찾을 수 없었다. 박흥주 는 유씨에게 이문동으로 가도록 지시한 뒤에 이문동에 가까이 오자 '될 수 있는대로 차를 천천히 몰아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정보부 본청에 도착한 박흥주는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38구경9연발 독일제 권총과 빈 탄창을 유석문에게 주면서 수송부에 반납하라고 시켰다. 그는 제1차장 보실에서 쉬고 있다가 오후3시쯤 합수부수사관들에게 연행되었다.
이날 궁정동에서 난 총성은 듣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스물 한 발의 총성은 권총에서 난 것이었다. 여섯 발은 엠16소총에서 발사되 었다. 모두 실내에서, 또는 실내를 향해서 쏜 것이었다. 대통령 시해현 장인나 동 안에서도 딱총처럼 들렸다는 증언이 있는가 하면 먼 데서도 똑똑하게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궁정동 정보부 시설 안에 있으면서도 이날 밤의 총성은 물론이고 상황을 전혀 몰랐던 일군의 사람들도 있었 다.
시해사건 현장인 나동에서 한 70미터 떨어진 본관 1층의 기사 및 경 비원 대기실. 이말윤 등 경비원 네 사람과 김계원실장차기사 등 네 운 전기사, 그리고 정승화참모총장 전속부관 등 모두 아홉 명이 텔레비전 을 보고 있었다. 무슨 프로였는지 이들이 모두 웃고 떠들 만큼 재미있 었다. 이들 중 아무도 나동에서 난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 밤 8시쯤 인 근 효자파출소의 김경장이란 사람이 대기실의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가 열어주었다.
'청와대 상황실에서 방금 총소리가 이 근방에서 났다고 확인하라고 해서왔습니다.'. '우리는 아무 소리 못들었는데요.'.
김경장을 돌려보내고 나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조금 있다가 인터폰이 울려서 이말윤이 받아보니 신관에서 이기주가 건 것이었다.
'총소리가 어디에서 났는가라고 묻는 데가 있으면 모른다고 대답해.'.
본관 정문에서 경비 근무를 끝내고 돌아온 김인태가 '총소리가 났는 데 의전과장님이 급히 정문으로 나가시면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사 격하라고 했다'고 전갈했다. 이말윤은 간첩이나 데모대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8시20분쯤 육군참모총장 승 용차전속부관이 모처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 있다가 청와대 비서실장 차 기사가 나갔다. 김정섭차장보의 운전기사도 나갔다. 전속부관도 나 갔다.
그래도 이말윤과 세 경비원은 텔레비전을 계속해서 보았다. 밤9시가 되어 서남하 이말윤 두 사람은 본관 정문 초소에 가서 보초를 섰다. 부 장비서 윤병서가 전화를 걸어 '누가 와도 문을 열어주지 말아라. 무조 건 모른다고 하라'고 했다. 바깥 거리에서는 경찰관들이 호구조사를 하 는듯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말윤은 간첩침투 사건이 난 것 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경비원 이말윤은 밤11시30분에 교대를 한 뒤에 본관 2층에 가서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 4시부터 5시까지 다시 정문에서 보초근무를 했는 데 교대하러온 서남하가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라디오 뉴스를 알려주 었다. 이때도이말윤은 데모가 난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였으나 그 사건의 현장이 바로 옆 건물이란 데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말윤은 본관 2층 대기실로 와서 잠 을 자고 있는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다. 비로소 바로 옆 인 나동에서 간 밤에 역사적인 사건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 도 모르고 태평하게 근무하고 잠을 자고 한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경 계심없이 근무했던 본인과 동료들은 놀랄 뿐이었습니다'라고 합수부에 서 진술했다.
이날 궁정동에서 근무한 정보부 경비원들은 거의가 무엇이 어떻게 돌 아가는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면서 밤을 지샜다. 나동옆에 있는 한옥 (옛날에 쓰던 대통령 만찬장) 경비원 장민순은 총성을 듣고는 '불순분 자가 침입했다가 사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가 나중에는 '각하께서 약주를 드시다가 화가 나서 총을 들고 쏘시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정 직전에 경비원 대기실에 있는데 박 선호의 전과장이 와서 '이제 너희들 걱정안해도 된다. 육군본부에서 계 엄령을 선포할 것이다'고 말했을 때는 '쿠데타나 혁명이 일어나나 보다' 고 생각했다. 그는 새벽5시에 라디오 방송을 듣고서야 대통령이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방금 전에 확인사격을 하고 온 경비원 김태원도 이날 밤 정상적으로 근무하였다.그는 밤10시를 넘어서는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갔다. 주방 에 있다가 허리에 총상을 당했던 요리사 이정오가 입원해 있었는데 입 원수속을 밟아주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그는 다시 궁정동으로 돌아와 서 심야에는 경비를 선 뒤에 대기실에 붙은 침실에서 잠을 청했다. '잠 을 자긴 했으나 자다가 깨기도 하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 다. 그가 일어난 것이 아침8시. 그때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온 뉴스를 듣고서야 간밤에 자신이 취한 행동이 대강 어떤 좌표에 해당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초조한 가운데서도 그는 계속해서 궁정동에 있으면서 수사관들이 잡 으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27일 정오에는 합수부사람들이 와서 남효주, 이기주, 김일선, 김용남을 연행해갔다. 김태원이 합수부에 연 행된 것은 다음날(28일)새벽이었다. 군검찰신문에서 검찰관이 '왜 현장 에서 도망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본인은 사람을 죽인 자인데 도망갈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도망갈 래야 갈 데도 없습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