蔣介石의 충고
朴대통령 부부의 동남아 순방을 수행 취재하던 韓國 기자들은 自由中國 정 부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 었고 태국 정부는 계엄하에서 단 한 줄의 정부 비판기사를 쓸 수 없게 했음 에도 韓國 기자단들에게 세단 승용차를 제공하는 등 비교적 귀빈 대접을 해 주었다. 自由中國 정부는 공항에 내린 수행기자단에게 한국의 시골에서 흔 히 볼 수 있는 버스 한 대를 제공했다. 한국 기자단을 더욱 불쾌하게 만든 것은 保安(보안)을 이유로 공항 도착사진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 다. 自由中國의 언론계는 정부로부터 오랫동안 통제받고 있어 정부 관리의 하인처럼 취급되곤 했다. 이런 관행은 한국 기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약간 거슬리는 장면을 촬영하려 하면 관리들이 달려와 한국 기자들에게 호 통을 치며 카메라까지 빼앗으려 했다.
自由中國 국방부 보도과장인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공군소장이 한국 기자단 을 초청한 파티가 열리자 金鍾信(김종신) 기자가 『自由中國에는 언론의 자 유가 없다』며 항의했다. 보도과장은 『거리에 예쁜 아가씨가 걸어가는데 어떤 놈팡이가 집적거리며 농을 걸기에 나무랐더니 언론의 자유라며 대들더 군요』라며 金기자의 말을 비꼬았다. 金기자가 화를 내며 『여보시오. 당신 은 자유와 방종을 어떻게 구별하는 거요』라고 대들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수행기자단장이던 코리아 타임스 정치부 차장 金泰雄(김태웅)의 회고. <우리가 탄 버스가 길이 막혀 서 있었을 때 거리는 서울운동장에서 축구경 기가 막 끝난 것처럼 복잡하기만 했다. 헌병, 순경, 특무대원들이 곳곳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설쳐댔다. 그들은 張총통의 영도하에 「本土收復(본토수 복)」 「共匪滅殺(공비멸살)」이란 대목표 아래 戰時(전시)체제에 있었다. 모든 것이 군대식이고 모든 행사가 군인이 주인이었다>
朴대통령을 수행했던 李萬燮 의원은 뒷날 『우리가 방문했던 동남아 3개국 중 한국보다 민주주의를 잘 실천하는 나라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1966년 2월15일 오후 3시, 朴正熙 대통령은 숙소인 그랜드 호텔에서 여장을 푼 뒤 蔣介石 총통을 예방하고 훈장을 교환한 뒤 정상회담에 임했다. 이날 저녁 8시에 朴正熙 대통령 일행은 蔣介石 총통이 總統府(총통부)에서 주최 한 만찬에 참석했다.
朴대통령은 아시아의 젊은 反共지도자로 평가받을 만한 웅변조의 연설을 했다.
『或者(혹자)는 自由中國과 大韓民國을 가리켜 자유의 방파제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比喩(비유)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波濤 (파도)에 시달리면서도 그저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란 말입니까! 우리는 전진하고 있습니다. 暴政(폭정)의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자유세계의 구현을 위하여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야말로 방파제 를 때리는 波濤입니다. 이 波濤는 머지않아 北京(북경)이나 平壤(평양)까지 휩쓸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2월17일 밤 朴대통령은 蔣介石 총통의 특별요청에 의해 일정을 바꾸어 臺北 교외에 있는 總統府에서 만찬을 겸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蔣介石 총통은 중국 전통에 따라 젓가락으로 음식을 朴대통령 앞까지 건네 주며 자신의 통치 철학을 말했다.
『지도자란 사람을 잘 써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쓸 땐 반드시 주위보다 는 좀 먼 곳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묘하게도 국가적 으로 가치 있는 인재는 꼭꼭 숨어 있어 찾기가 힘듭디다. 나라 일이란 역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게요. 또한 훌륭한 인재는 오래 일할수록 유익하니 그 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여건을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시아에서는 국민을 다스리려면 지도자는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권위를 내세운답시고 함부로 칼을 뽑는 건 절대 금물입니다. 칼의 권위란 뽑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꽂혀 있는 상태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지요. 지도 자의 얼굴엔 항상 덕망이 넘쳐야 하며 사생활도 깨끗해야 하는 게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참된 反共은 총칼로 하는 게 아니오. 국민을 위한 복리증진 이 더 효과적일 거요』
李東元 장관이 곁에서 지켜보니 이날 朴正熙는 蔣介石의 조언에 깊은 감명 을 받은 듯했다고 한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 온 朴正熙 대통령은 시종 숙 연한 얼굴로 별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2월18일 韓中 지도자는 공동성명을 통해 「中共은 아시아에 있어서 모든 분 쟁의 근원」이라고 비난하고 「安全,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있어서의 공동 관심사에 관한 협의를 위하여 兩國間, 또는 필요에 따라 자유 아시아 지도자들간의 최고위급 회담을 개최할 것」에 합의했다. 성명은 이어 월남 공화국 국민을 원조할 긴급한 필요를 인정하고 兩國間의 기술협력과 통상 관계를 강화하고 문화교류를 증진한다는 점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이날 松山비행장에서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朴正熙 대통령은 蔣介石총통과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이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蔣介石 총 통은 몇 번이나 손을 잡았다 놓곤 했다. 朴대통령과 일행이 탑승한 특별기 가 이륙하자 자유중국 공군기 2개 편대가 영해 밖까지 호위비행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