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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三月 素描
 春三月 素描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朴正熙 대통령은 2월22일 낮 청와대에서 정부 ·여당 연석회의를 주재하면서 동남아 순방 소감을 피력했다.
 『우리가 방문한 세 나라 모두가 우리보다 일찍 개발에 눈을 떠 우리보다 잘 살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들이 급속히 발전한 이유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建設事業(건설사업)에 대해 야당이나 일부 언론이 말썽을 안 부린 때 문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깨끗한 일이라면 강력히 밀고 나갈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자세를 가다듬어 부정부패를 뿌리뽑 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국민도 납득하고 건설도 잘 될 것입니다』李東元 당시 외무장관의 회고에 따르면 동남아 순방을 마친 朴대통령은 蔣介石 총통의 충고를 받아들여 온화한 지도자가 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동남아 순방을 마친 지 보름쯤 지난 1966년 3월6일 일요일 오전. 청와대 정 보 비서관 權尙河(권상하)는 집에 머물다 張基榮 부총리로부터 전화를 받고 부총리실로 나갔다. 張부총리는 자신이 경영하는 韓國日報社(한국일보사) 에서 몇 년 전 경기도 驪州(여주) 남한강변에 이탈리아 포플러 나무를 심었 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 앞으로 전국에 보급할 계획이라며 朴대통령께 보여드리고 싶으니 주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權尙河는 『마침 일요일이고 하니 저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갑시다』라며 그 길로 청와대로 들어갔다. 朴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생인 權비서관이 청와대 내실로 들어가니 朴正熙 는 아들 志晩(지만)군과 함께 국수로 점심을 들고 있었다.
 
 
 『權비서, 마침 잘 왔어. 국수 한 그릇 같이 먹지?』
 
 『예. 그런데 각하, 오늘 오후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안 그래도 무료해서 말이지. 야외라도 나가볼까 하는데…』
 
 『각하, 좋은 코스가 있습니다』
 
 잠시 후 朴대통령과 張부총리, 權비서관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양복 상의를 벗고 점퍼 차림으로 청와대 현관으로 나갔다. 검은색 유리창의 지 프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民情(민정)시찰로 潛行(잠행)할 때 朴대통령 은 검은 안경을 쓰고 점퍼 차림에 朴사장으로 행세하는 것이 관례였다. 운 전석 옆자리에는 朴대통령이 타고 뒷자리에는 張부총리와 權비서관이 탄 채 차가 출발했다.
 
 朴대통령은 색유리창 밖으로 시가의 정황을 살피는 중에 차는 시내를 빠져 나가 八堂(팔당), 兩水里(양수리), 楊平(양평), 利川(이천), 驪州를 거쳐 남한강변 포플러 단지에 도착했다. 朴대통령은 쭉쭉 뻗어 올라간 나무들 사 이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포플러(미루나무) 둥치를 끌어안고 흔들어 보았다. 朴대통령은 무척 만족한 표정이 되어 『야, 이건 대성공인데. 우리 국토에 쓸모없는 閑遊地(한유지)가 많으니 이런 速成樹 (속성수)를 많이 보급시켜 收益性(수익성) 있는 國土綠化(국토녹화)를 해야 겠어』라고 말했다.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3월이었지만 먼 산에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날씨도 쌀쌀했다. 歸路(귀로)에 오른 차량은 驪州를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길가에 한적한 주막이 나타나자 朴대통령이 『저기 좀 들렀다 가지』라며 차를 세웠다.
 
 들어서니 낮은 천장에 전깃불도 없이 컴컴한데 메주 냄새가 물씬 났다. 환 갑이 지났을 성싶은 酒母(주모) 할머니가 따뜻한 방으로 안내해 朴대통령은 아랫목을 차지하고, 張부총리와 權비서관이 윗목에 앉았다. 방에서도 안경 을 벗지 않은 朴대통령은 『날도 쌀쌀하니 막걸리 따끈하게 해서 한 잔 주 시오』라고 주문했다. 잠시 후 할머니는 찌개 안주와 데운 막걸리를 한 상 차려 방으로 들어온 뒤 손님들에게 한 잔씩 권했다.
 
 
 『朴사장님, 이거 맛이 괜찮은데요』
 
 權비서관이 너스레를 떨자 대낮부터 약간 취해 있던 주모는 점퍼차림에 왜 소하게 앉은 朴사장이란 사람의 무릎을 탁 치면서 일동을 긴장시키는 말을 했다.
 
 
 『아이고, 이 양반이 꼭 朴正熙 닮았네. 신문에서 본 그대로야. 꼭 같애. 어쩌면 이렇게 생겼지?』
 
 朴대통령이 그 말을 받아 넘겼다.
 
 『주모! 내가 왜 朴正熙를 닮아? 모두들 朴正熙가 날 닮았다고 하는데』 웃음이 술좌석을 휘감자 주모의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오다가 급기야 신랄 한 정부 비판으로 이어졌다. 朴대통령이 주모에게 계속 술을 권하면서 변죽 을 맞추자 주모는 郡守(군수), 署長(서장), 支署主任(지서주임), 巡警(순경 ), 面長(면장), 面職員(면직원) 등 일선 공무원들의 작태를 적나라하게 나 열하면서 욕을 퍼부었다. 급기야 주모는 『朴正熙는 새까맣고 조그만 것이 어찌 그리 肝(간)이 크노! 하도 다부져서 朴正熙는 돌로 쳐도 죽지 않을거 야』라며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朴대통령은 연신 즐거워하면서 소리내 웃 었지만 張부총리와 權비서관은 坐不安席(좌불안석)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밖에서는 동네 청년들이 화투를 들고 한 판 벌이자며 술집으로 들이닥쳤다. 朴대통령과 일행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 어나며 술 값으로 5천원을 던져 주고는 차를 타고 황혼길을 달렸다. 차중에 서 權비서관이 『각하, 죄송합니다』라고 하자 朴正熙는 『야, 이 사람아. 오늘 아주 유쾌했어. 참 재밌었어. 이것이 민심이란 걸 오늘 잘 알았네』 라며 흡족해 했다.
 
 다음날 오전에 청와대 정보비서관실로 여주군수와 경찰서장이 찾아왔다. 전 날 저녁에 황급히 주막을 떠난 것을 이상히 여긴 동네 청년들이 주모로부터 말을 전해 듣고는 대통령이 暗行視察(암행시찰)을 했다는 소문을 내어 알 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權尙河 비서관 앞에서 전전긍긍하면서 『어제 각 하께서 오셨는데 전혀 몰랐습니다. 게다가 그 무식한 주모가 너무 실언과 실수를 많이 범해서 몸 둘 바가 없습니다』라며 백 배 사과를 했다. 權비서 관은 이들을 자리에 앉아 있게 한 뒤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 구두보고를 했다. 朴대통령은 어제 일을 다시 생각하면서 환하게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어제 여주에서 주모한테 民情을 잘 전해 들었고, 좋은 충고도 고맙게 받아들이겠다고 그 군수하고 서장한테 전해주게. 그리고 그 두 사람에게 그 주모를 잘 보살펴 주도록 부탁한다고 해』라고 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다리던 군수와 서장은 權비서관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용기백배하여 청와대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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