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과의 惡緣
1966년 8월13일 오후 닉슨 前 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 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1960년 大選(대선)에서 케네디한테 졌고 그 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패배한 뒤 정치적 浪人(낭인) 생활을 하 고 있었다. 윈스롭 브라운 駐韓 미국대사는 朴正熙 대통령 비서실에 닉슨을 위해 만찬을 베풀어줄 수 없느냐고 打診(타진)했다. 朴正熙의 반응은 냉담 했다. 브라운 대사는 李東元 외무장관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李장관은 朴대통령을 찾아가 이렇게 건의했다고 한다.
『각하, 언론에서는 닉슨이 끝났다고 냉대를 하지만 그는 아직 거물이고 차 기 대통령후보로 다시 출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불우할 때 그를 후대한다 면 후일 義理(의리)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 이미 끝난 사람인데 구태여…』
『그래도 각하』
朴대통령의 얼굴엔 찬 기운만 감돌았다.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았던 닉슨은 도착 직후 청와대로 朴대통령을 예방하 고 커피 한 잔 얻어마시면서 형식적인 잡담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몸이 단 브라운 대사는 이날 저녁 한국의 장관들을 초청하여 닉슨과 합석시키는 만 찬을 준비했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이날 저녁 朴대통령은 예정에도 없 던 청와대 회식을 준비하여 장관들을 불러가고 말았다. 李東元 장관만이 미 국 대사관의 만찬장으로 들어서니 닉슨은 미8군 장성들과 앉아 있었는데 한 국측 요인은 두서너 명에 지나지 않았다.
李東元은 분위기가 너무 썰렁하여 식사 뒤 닉슨에게 제의했다.
『아직 초저녁인데 우리 요정에라도 갈까요』
닉슨은 좋다고 했는데 브라운 대사가 다른 일정 때문에 곤란하다고 발을 뺐 다. 닉슨은 『그럼 우리 여기서 이야기나 더 합시다』라고 했다. 닉슨의 첫 인상은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으나 말문을 열자 經綸(경륜)과 집념이 느껴졌다. 그는 『미국이 월남에 개입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일단 발을 담갔으면 속전속결로 끝장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李장관은 닉슨의 설득 력에 감명하면서 언젠가는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고 이날 朴대통령의 푸대 접은 비싼 代價를 치를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썼다(회고록 「대통령을 그 리며」).
당시 반공연맹 이사장은 국방장관을 지냈고 후에 총리까지 오른 金貞烈(김 정렬·작고)이었다. 金貞烈은 닉슨이 아이젠하워 밑에서 부통령일 때 만난 적이 있었다. 닉슨은 金貞烈을 예방하여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대화를 한 시간이나 하고 갔다. 金씨는 『왜 우리 정부가 巨物 요인의 일정을 저렇게 관리하나』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1968년 切齒腐心(절치부심)의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韓美 관계는 껄끄 럽게 되어갔다. 닉슨은 아시아의 분쟁에 미군의 개입을 제한하는 괌 독트린 을 발표하여 주한미군 1개 사단(7사단)의 철수 길을 열어놓았다. 월남전 휴 전협상 때, 그리고 마무리 때 朴대통령은 참전국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대 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겉돌았다. 1969년 8월 朴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한 호텔에서 닉슨과 회담했는데 이때 모욕적인 푸대접을 받았다. 李東元은 朴正熙가 이렇게 불평하더라고 기록했다.
『난 호텔에 가면서 닉슨이 최소한 로비에서 나를 맞아주리라 기대했어. 로 비는커녕,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내릴 때도,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그는 보이지 않았소. 내가 방에 들어서니 왼쪽의 큰 문이 다시 열렸는데 저끝에서 닉슨이 서서 나를 기다리지 않겠어. 저녁식사 때는 시시한 고향친 구들이란 자들을 불러다 앉혀놓고 같이 먹으라는 식이야. 내가 아무리 그때 닉슨에게 섭섭하게 대했다손 치더라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그 뒤 朴正熙는 몇 번 측근들에게 『그때 닉슨을 잘 대우해주는 건데』라고 후회했다고 한다. 李東元은 「돌이켜보면 닉슨의 서울 1박2일은 우리 역사 상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고 썼다. 그 1박2일이 주한미군 1개 사단의 철수 와 연결되고 위기감을 느낀 朴대통령은 핵무기 개발과 10월 유신을 결심했 으며 이로 인한 불편한 관계는 카터 시절엔 갈등관계로 변하고 10·26 사건 을 낳았다는 해석이다.
李씨의 이런 해석이 큰 논리의 비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反證(반증)이 하 나 있다. 닉슨이 한국을 방문한 바로 그해 정치낭인 신분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 여기서도 그는 朴대통령에게 당한 것과 비슷한 홀대 를 받았다. 그를 위한 만찬에 초청된 이스라엘 장관급 정부요인 중 참석한 이는 이츠하크 라빈 참모총장뿐이었다. 라빈은 쓸쓸한 모습의 닉슨을 동정 했다. 그를 다음날 부대로 초청하여 사열을 받도록 하면서 위로했다. 닉슨 은 이것을 은혜로 생각했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라빈은 駐美대사로 나갔다.
닉슨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었다. 라빈이 닉슨 후보를 만났더니 닉슨은 과거의 환대에 대해서 여러 번 감사하다면서 이렇게 말했 다고 한다(라빈 회고록에서 인용).
『그 고마움을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이 닉슨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라빈 대사는 이스라엘의 국익을 지키는 데 주 재국 元首(원수)와의 친분을 충분히 활용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