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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은행 비밀계좌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
 
 1960년대 기름과 관계된 사업을 말할 때 빠뜨려선 안되는 인물이 徐廷貴(서 정귀)이다. 朴正熙의 대구사범 동기생이자 국회의원 출신. 그는 걸프가 투 자한 유공과, 칼텍스-럭키그룹의 합작인 호남정유 양쪽에 걸쳐 있었다. 19 66년에 럭키그룹이 호남정유 사업권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徐廷貴였다.
 그는 한때 흥국상사란 석유판매회사를 세워 유공의 벙커C유를 팔았다. 그는 1967년 이 회사의 주식 25%를 1백51만 달러에 걸프에 팔았다. 2년 뒤에는 25%의 주식을 다시 걸프에 팔아넘겼다. 주식인수대금은 2백만 달러로 결정 되었다. 李厚洛 비서실장은 이 거래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걸프로 하여 금 주식인수대금을 높게 책정하도록 한 다음 비자금을 뗐다. 1978년의 「美 하원 한미관계 보고서」의 부록에는 이런 요지로 쓰여 있다. <李厚洛은 걸프측에 대해 주식매입대금 2백만 달러 중 20만 달러를 떼내 朴 대통령의 미국 방문경비로 건네줄 것을 요청했다. 1969년 8월21일 피츠버그 의 걸프본사는 전신환으로 취리히 소재 스위츠란드 유니언 은행에 20만 달 러를 보냈다. 수취인은 서정귀였고 계좌번호는 625, 965, 60D이었다. 그해 12월 이 계좌에서 19만9천7백50달러가 인출되었다. 이 돈은 李厚洛이 서정 귀를 대신하여 서명함으로써 인출해간 것 같다>
 
 기자가 확인한 美 하원 조사보고서 부록에는 아주 흥미 있는 자료가 붙어 있었다. 1969년 9월2일자로 유니언 은행이 정화섭이란 인물에게 보낸 徐廷貴 명의의 계좌명세서(Statements for the Account)이다. 여기에는 20만 달 러가 입금되었다는 사실을 통지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정화섭은 누구인 가. 그는 李厚洛의 사위이다. 李厚洛이 사위를 통해서 徐廷貴 명의의 스위 스 은행 비밀계좌를 실질적으로 관리했다는 추리는 합리적일 것이다. 한미관계 보고서는 1960년대의 朴正熙정부內 파워센터에는 네 명의 실력자 가 있었다고 썼다. 金鍾泌 공화당 의장, 李厚洛 청와대 비서실장, 金炯旭 중앙정보부장, 金成坤 공화당 재정위원장. 朴대통령은 이들 가운데 세 사람 을 연합시켜 金鍾泌을 견제하여 균형을 이루게 하다가 3選 개헌을 앞두고는 金鍾泌 세력을 거세했다. 金鍾泌의 약화는 먼저 정치자금 조달능력의 약화 로 나타났다.
 
 1964~67년 사이 여권의 4大 정치자금 모집창구는 李厚洛, 張基榮 부총리, 金成坤, 金炯旭이었다. 美 하원의 한미관계 보고서는 김성곤은 주로 수표, 金炯旭은 현금, 李厚洛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를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한미관계 보고서는 또 이런 요지로 기록했다.
 
 <1970년에 청와대의 한 고위관리는 李厚洛, 金成坤, 金炯旭이 각기 1억 달 러쯤의 개인재산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美 하원 소위원회의 증언에서 金炯旭은 金成坤이 끌어모은 정치자금 가운데 75만 달러를 자신이 개인용도로 가져가 썼다고 했다. 그는 또 金成坤이 朴대통령 부처, 丁一權, 李厚洛 등 에게도 私用자금을 대주었다고 말했다. 朴대통령에게 제공된 자금에 관하여 본 소위원회가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판단해볼 때 李厚洛은 이 자금을 모아가지고 스위스의 은행계좌에 대통령용이란 명목으로 입금했을 가능성이 있다. 스위스 은행계좌의 實在(실재)는 은행기록, 李厚洛의 아들 李東勳( 이동훈)의 증언, 청와대內 朴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하여 입증됐다. 李東勳은 소위원회 조사관에게 스위스 은행에 있는 돈은 대통령을 위한 자금이라고 했다. 그는 또 李厚洛이 그 자금을 관리하였으나 李厚洛의 개인용도는 아 니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에다가 아버지의 돈으로 2백만 달러를 은행에 예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朴대통령이 그런 비밀자금을 필요로 했던 이유 에 대해서 그는 지지자들에게 돈을 주고, 政敵(정적)들을 매수하기 위한 것 이었다고 했다. 미국 정부의 어느 보고에는 거의 모든 야당 국회의원들이 돈을 받았다고 한 한국 기업인의 말이 실려 있다. 이 실업인은 대통령이 군 부의 배신을 두려워한 나머지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더 많은 돈을 육군의 핵심 지휘관들에게 주고 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청렴한 장교생활로 일관하면서 정치인과 軍장성들의 부정부패에 분노했던 사람이다. 소박한 朴대통령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政敵, 지지자, 軍지휘관들을 상대로 돈을 써야 하 고 그 돈을 만들기 위하여 기업인들에게 온갖 利權을 제공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고민했다. 그런 돈을 만드는 데 중심역할을 한 李厚洛, 金成坤 등 측근들은 자금동원력을 이용해서 한층 영향력이 커졌다. 朴대통령은 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정권유지, 나아가서는 3選개헌을 위해 이들의 협 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정권 비자금을 모집 관리하는 것을 눈감아주었다.
 
 朴대통령은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한 원인이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했 다. 선거를 위해 돈이 필요하고 선거조직으로서의 정당유지를 위해 또 돈이 드는 것에 대하여 朴正熙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는 유신선포를 결심하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부작용인 부정부패를 일 소하기 위해서 정치자유를 제약한 셈이다.
 
 1966년 어느 날 육군방첩부대장 尹必鏞(윤필용) 준장은 陸英修 여사의 부름 을 받고 그녀의 오빠인 陸寅修(육인수) 의원의 집으로 달려갔다. 尹장군은 사단장 朴正熙를 참모로 모실 때부터 陸英修와 친면이 있었다. 陸英修는
 
 『우리 두 사람이 만난 것을 각하께서 몰라야 한다』면서 이렇게 하소연하 더란 것이다.
 
 
 『김○○, 이○○, 장○○, 박○○, 이런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가 망해야 하는데 그래도 농촌에 가면 아이들의 옷차림이 점점 좋 아지고 있는 것은 웬일입니까』
 
 
 『사모님, 우리가 동남아로, 월남으로 진출을 많이 해서 국력이 신장되고 있어 한두 사람이 부정을 해먹어도 표가 안 납니다』
 
 
 『윤장군님, 이건 절대로 여자의 시샘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하께 여자를 소개하면 소개했지 왜 꼭 말썽날 탤런트들을 소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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