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IA 보고서의 충격
1966년 3월18일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한일관계의 장래」란 제목의 심 층보고서를 작성, 미국 정부의 고위 정책입안자들에게 돌렸다. 이 보고서의 6페이지에는 충격적인 대목이 있다.
<민주공화당이 일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있다는 비판은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보도에 의하면 일본 회사들은 1961~65년 사이 공화당 예산의 3분의 2를 제공했다고 한다. 6개 회사가 6천6백만 달러를 제공했는 데 각각 1백만 달러에서 2천만 달러씩을 주었다는 것이다. 金鍾泌 당 의장 에 따르면 공화당은 196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2천6백만 달러가 필요하다 는 것이다. 많은 일본회사들이 金鍾泌에게 한일회담을 추진하는 데 따른 감 사의 표시로 돈을 준 것 외에도 한국에서의 독점적인 지위 유지를 위해서 돈을 냈고 공화당은 이와는 별도로 일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한국회사들 로부터도 돈을 받았다. 서로 연합한 8개 한국회사들은 최근 정부가 방출한 6만t의 쌀을 일본에 수출하면서 공화당에 11만5천 달러를 냈다고 한다> 1975년에 당시 걸프석유의 한국사업 책임자 굿맨은 美 의회 조사에서 1960 년대 후반의 정치자금 모금과 관련하여 이런 증언을 했다.
『1966년에 나는 李厚洛 비서실장으로부터 1백만 달러를 현금으로 스위스 은행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미 국무성은 그때 한국 정부에 대해 선 거를 미국식에 따라 私的인 정치기부금을 모아서 치르도록 할 것을 권고했 고 駐韓 미국회사들을 포함한 여러 기업체로부터 기부금을 거둘 것도 제의 했다. 이에 따라 걸프도 기부한 것이다』
봅 도시 걸프 사장은 같은 시기 美 상원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1969년) 서울에 가서 金成坤(김성곤·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서 정치자금 모집창구)을 그의 집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내가 평생 만나본 사람들 중 아마도 가장 다루기 힘든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날처럼 제가 모욕을 당한 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거칠고 깐깐한 자금모집책이 었습니다. 그는 1천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결국 3백만 달러로 낙착되었습니 다. 그 돈은 걸프 본사 자금으로 지출되었지만 일단 바하마에 있는 바하마 탐사주식회사로 돌려져 한국으로 건네졌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걸프측 굿맨의 증언에서 흥미를 돋우는 것은 美 국무성이 한 국측에 대해 駐韓 미국회사들로부터 기부금을 거두어 선거자금을 마련하도 록 助言(조언)해 주었다는 대목이다. 이것은 1960년대의 동서냉전과 밀월관 계에 있던 韓美 양국의 사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 미국 언론과 의회가 미국회사의 해외 활동에 대하여 도덕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서였다.
위의 두 자료는 朴正熙 정권의 정치자금 모집방법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길 잡이가 될 만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막대한 선거자금의 필요 성, 일본 및 외국회사들로부터의 모금(그에 따른 利權 배분)관행,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의 존재, 국제적인 돈세탁, 朴正熙 정권 경리부장으로서의 李厚洛 金成坤의 존재 등등.
걸프가 공화당과 정부측에 1백만 달러와 3백만 달러를 각각 제공한 시기는 걸프가 정부로부터 중대한 利權을 얻은 시기, 그리고 선거를 앞둔 시기와 일치한다. 정치자금을 거둘 명분과 필요성이 있던 때란 이야기이다. 걸프 는 油公(유공)이 울산 정유공장을 지을 때 25%의 주식투자를 했다. 걸프는 餘勢(여세)를 몰아 진해화학(복합비료 등 생산)에는 1천50만 달러를 투자 하여 50%의 주식과 함께 경영권을 인수했다. 걸프는 투자액의 1백50%를 뽑 아 미국으로 송금할 때까지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한데다가 이익률을 최저 年20% 정도로 보장하는 조항을 한국측(충주비료)과의 계약서에 집어넣었다. 즉, 발행주식 6백만 주 가운데 우선주 3백만 주를 걸프가 차지하기로 하고 이 우선주에 대해서는 매년 이익이 생기면 2백만 달러까지는 먼저 걸프측 에 이익배당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진해화학에 대한 나프타 인광석 유황 염 화칼리 따위의 원료공급권도 걸프가 가지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걸프가 진 해화학에 투자하도록 도왔다. 처음 우리 정부는 미국 국제개발처(AID) 차관 으로 진해화학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AID는 그러나 「미국 大회사의 對韓투 자를 고무하기 위하여 미국 大회사의 참여를 조건으로 AID 차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진해화학 10年史」)는 것이다.
정치자금을 모으는 입장에서 보면 걸프는 거대한 利權덩어리였다. 예컨대 걸프는 1966년에 5만3천t급 유조선 네 척을 범양 전용선에 빌려주고 울산 정유공장에 대한 원유수송을 독점시켰다. 걸프가 책정해준 운임단가는 매우 높았고 배를 빌리는 데 필요한 경비도 걸프가 대주었다. 이런 이권은 정치 권력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이 利權을 얻 은 사람은 코리아게이트의 주인공 朴東宣(박동선)의 친형 朴健碩(박건석)이 었다.
1971년에도 걸프는 新造(신조)된 초대형 유조선을 한국측에 빌려준 뒤 장기 운송계약을 맺고 울산정유에 들어오는 원유를 나르도록 하는 이권을 가지고 정부 쪽에 접근했다. 걸프의 굿맨이 경영층에 보고한 문서에 따르면 걸프 는 이 이권을 金鍾泌 당시 총리에게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金총리는 한 국측 선주로 정태성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굿맨은 「鄭씨는 간판일 뿐이 고 그의 역할은 배의 운영에서 생기는 이익이 공화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감 시하는 것이다」고 간파했다. 굿맨은 「金총리의 영향력으로 유공(의 이권 )에 접근하려던 다른 회사를 배제시켰고, 이번 거래로 우리의 한국내 경영 이 직면한 다른 문제들이 잘 풀리고 있다」고 했다. 朴정권측에 이권을 건 네줌으로써 다른 반대급부를 얻었다는 고백이다.
이런 거래에 노련한 굿맨은 이 거래에 관계된 인물들이 한국의 정치상황에 서 힘을 잃을 때에 대비하여 세운 일종의 함정에 대해서도 이런 취지로 쓰 고 있다.
「계약갱신 약관에 따라 유공(편집자注-당시는 걸프가 경영권을 갖고 있었 다)이 한국인 선주측(편집자注-이용가치가 없어진 인물)에 운임단가의 인하 를 통보하면 그 선주는 이익이 안 생길 것이 뻔한 유조선을 돌려주고 손을 털고 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