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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달 늦은 特種
 넉달 늦은 特種
 
 陸英修는 朴正熙의 측근들 가운데 특히 李厚洛 실장을 싫어했다. 남편에게 도 여러 번 李厚洛의 非行을 지적하기도 했다. 朴대통령은 측근에게 아내의 지적을 소개하면서 『본처가 첩을 내쫓으려는 것 같애』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화당內 朴正熙 직계세력 4인방이나 정치자금 모집창구 4인방이 정치자금 과 이권을 교환하는 바람에 경제가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복투자 등 자원의 낭비도 많이 빚어졌다. 한 상공부 고관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富者 는 『지금 李○○에게 정치자금을 내고 오는 중인데 이제는 무슨 기업을 해 야 하지?』라고 묻더라고 한다. 상공부 고관은 기업이 잘 되지 않아도 국가 에 손해를 덜 끼치는 시멘트업을 그에게 권했다. 이 사람은 이때 시작한 시 멘트업을 잘 살려 대기업으로 키웠다. 이 상공부 관리 출신은 『우리가 정 치를 의식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경제논리에 충실한 자세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유신선포 후였다』고 말했다.
 朴正熙 정부가 민간기업에 의한 차관도입에 대해서 정부가 지불보증을 서주 도록 한 것은 위대한 결단이었다. 이는 정부의 운명을 기업의 운명과 묶어 버린 것으로서 정부가 기업의 경영에 책임을 지도록 했다. 기업이 부도나면 정부도 함께 부도난다는 절박감이 朴正熙와 관료들을 몰아붙였다. 반면 차 관도입은 그 자체로서 돈이 되는 특혜였다. 차관도입을 허용해주고 그 기업 으로부터 일정률의 정치자금을 떼는 것은 정계 실력자들의 일이었다. 나중 에는 차관을 도입하여 이익을 내면 정치자금을 바치는 식으로 개선되었지만 차관이 들어오기도 전에 정치자금을 떼는 관례는 政經(정경)유착의 표본처 럼 되었다.
 
 1966년에 발생한 삼성그룹 계열 한국비료에 의한 밀수사건은 朴正熙 정권의 깊은 곳에서 형성되어가던 부패구조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 사건은 또 재벌과 정권 및 언론이 利權에 얽혀드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 였다. 문제는 당시의 언론보도와 수사는 이 사건의 진실과 본질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1966년 8월 하순 京鄕新聞(경향신문) 편집국장 金光涉(김광섭·88·합동통 신사 부사장, 대한언론인회 회장 역임)은 친지의 결혼식장에 늦게 도착해 앞마당에서 머물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의 대재벌이 그럴 수가 있어? 밀수라니 말이 돼?』
 
 『밀수까지 해서 치부해야 된다니 나도 사업하는 사람이지만 암만해도 알 수가 없어』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金국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金국장은 얼떨결에 『 글쎄 말이야』라고 되받았다. 그는 「사실인 것 같은데 어째서 모든 신문들 이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하고 궁금해 했다. 그 길로 회사로 돌아온 金국 장은 오후에 열리던 편집회의를 주관하면서 10여명의 부장들에게 확인해 보 기로 했다.
 
 
 『나는 오늘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어느 재벌인지는 모르겠으나 재벌이 밀수를 했다가 들통이 났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이야기나 비슷 한 말을 들은 일 없습니까?』
 
 
 『…』
 
 회의장 분위기는 이상할 만큼 무거운 침묵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金국장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우리 신문 기자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좀 더 알 아봅시다』라며 격려했다.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씩 회의가 열릴 때마다 金국장은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고 부장들은 국장의 말에 대답이 없었다 . 보름쯤 지난 날 아침, 이날 기획회의에서도 金국장은 『무슨 비슷한 정보 가 입수된 것이 없는가』고 물었고 누구도 한마디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 아갔다. 朴在權(박재권) 경제부장만이 金光涉 국장 자리로 다가오더니 허리 를 숙여 귓속말을 했다.
 
 
 『국장님, 그거 정말 신문에 내실 겁니까?』
 
 『무슨 소리요? 쓰지도 않을 걸 내가 이렇게 여러 사람 괴롭혔단 말이오? 알아 냈소?』
 
 
 『예, 재무부에 출입하던 기자가 어떤 국장으로부터 확인을 했답니다』
 
 『그럼 빨리 써요』
 
 1966년 9월15일자 경향신문 초판(일부 가두 판매용, 일부 지방판) 사회면의 삼성재벌 사카린 밀수사건 특종 기사는 이렇게 해서 보도됐다(金光涉의 언 론회고록 「고백과 증언」에서 인용).
 
 <坂本(판본)방적의 밀수사건을 매듭짓기도 전에 또다시 삼성재벌의 방계회 사인 한국비료에서의 밀수사건이 드러나 크게 주목된다. 15일 관계 소식통 에 의하면 부산세관은 지난 6월 한국비료에서 사카린 약 2천 부대(43kg들이 )를 건설자재로 가장, 울산으로 밀수입한 것을 적발, 同(동)물품을 압수하 는 한편 이미 벌과금을 비롯한 기타 세금 약 2천만원을 부과 징수했다는 것 이다. 이 소식통은 이미 부산세관에 前記(전기) 밀수입품 사카린 약 2천 부 대 중 5백 부대는 시중에 유출되고 있어 나머지 1천5백 부대만 압수하고 있 다고 전했다(하략)>
 
 이날 석간신문인 京鄕新聞 가판이 시내에 배포된 지 두 시간 뒤에 東亞日報 (동아일보·夕刊)가 서울 배달판에, 여타 朝刊(조간)신문들은 다음날 아침 부터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점은 경향신문의 폭로 직후 다른 신문들은 확인취재할 시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경향신문의 보도를 훨씬 앞선 상세한 내막을 게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京鄕측이 「 사카린 밀수」로 표기한 것을 다른 신문들은 「사카린의 원료 OTSA 밀수」 로 摘示(적시)하는 것은 물론 밀수 경로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즉각 보도 하기 시작했다. 단, 中央日報(중앙일보)만이 「사카린 밀수, 사실과 다르다 」는 제하의 기사와 사설을 실었을 뿐이었다.
 
 며칠 뒤 金국장은 지방 신문철을 뒤적이다가 마산에서 발행하던 慶南日報( 경남일보)가 5월29일자로 삼성재벌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다루었음을 발견하 곤 아연실색했다.
 
 金光涉 당시 편집국장은 최근 기자에게 이런 증언을 했다.
 
 『경향신문은 「확인됐다」는 정도만 건드린 기사여서 톱기사로서는 불만스 러울 정도로 내용도 빈약하고 기사 크기도 작았습니다. 그런데 뒤에 나온 다른 신문들은 우리 신문보다 깊게,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들 은 이미 내막을 알고 있었지만 기사화하기엔 찜찜하니까 누군가가 터뜨려 주기를 기다린 겁니다. 그러니까 저만 모르고 특종이라 생각하고 기사화한 것이었지요』
 
 京鄕新聞 金光涉 편집국장은 이 폭로기사를 社主(사주)와 상의없이 냈다고 하여 한달 뒤 편집 고문이란 閑職(한직)으로 발령받았다. 한국 신문윤리위 원회는 11월16일자 신문에 이런 요지의 경고문을 발표했다.
 
 <한국 신문윤리위원회는 저간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는 세칭 「사카린 밀수사건」의 보도와 관련하여 일부 극소수 기자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 었다는 일부 보도와 항설이 있고 또 5월에 발생한 사건이 9월 중순경에야 사회에 공개된 경위에 대하여 일반의 의혹이 있음을 중대시하고 본 위원회 의 사명에 감하여 그동안 이를 신중히 조사해 왔다.
 
 본 위원회는 조사결과, (1) 본 사건에 관하여 최초로 5월29일자 경남일보의 사카린 밀수에 대한 대체적인 보도가 있었기는 하나 당해 세관을 비롯한 관계당국의 이례적인 비협조 등으로 사건 진상의 취재가 곤란하였던 사실, (2) 당해 세관 출입기자단의 일부 기자는 암암리에 물품 수입에 관한 모종 의 부정이 게재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기미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임무를 태만히 하여 능동적인 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3) 당해 세관 출입기자단은 그동안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향응과 다소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에서 보면 5월에 발생한 본 사건이 9월 중순에야 비로소 각 언론기관을 통해 보도되었다고 하여 그 경위에 있어 지탄받을 이유가 없다고 인정되는 바이나 다만 관련 일부 기자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그 품격을 유지하 지 못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언론계 전체에 대한 사회의 의혹을 사게 한 책 임을 면할 수 없다. 이는 신문윤리강령 품격장 및 동 실천요강 품격장 제1 장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 위원회는 본건 관련기자들에게 대하여 소 속 언론기관이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며 아울러 언론의 사회적 사 명의 중대성에 비추어 금후 이러한 사례가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경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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