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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과 재벌이 결탁한 조직적인 밀수
 정권과 재벌이 결탁한 조직적인 밀수
 
 李孟熙는 韓肥가 울산에서 밀수한 품목을 「정부와 협의한 부분」과 「정부 와 협의하지 않고 몰래 한 부분」으로 나누었다.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리스판 같은 것은 「정부와 협의한 밀수품」이었다고 한다 . 李秉喆은 OTSA가 요소비료 제조공정에 필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했으나 李孟熙는 처음부터 암시장에 내다 팔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도입한 것이라고 말해 아버지의 주장을 뒤엎었다.
 <아버지는 우리 회사의 설탕 판매량에 타격을 줄 사카린의 재료를 우리가 왜 밀수했겠는가라고 했지만 설탕과 사카린은 그 용도가 다르다. OTSA를 試 (시)운전용 재료로 들여왔다고 하는 코멘트도 있었는데 화학을 아는 사람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그것은 비료공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미 30년이 흐른 일이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야겠다고 생각하기에 털어놓는 말이다> 1966년 동아일보가 의문을 제기한 양변기 밀수도 사실이었다는 것이 李孟熙 의 고백 내용이다.
 
 <암시장에서 15만원 하는 양변기를 외국에선 한화로 3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화장실 양변기도 (밀수)품목에 포함시켰다. 우리가 울산을 통해 들여온 양변기 1백개를 남대문 암시장에 푸니까 갑자 기 가격이 10만원으로 떨어졌다>
 
 밀수 스테인리스판을 암시장에 내놓으니 값이 한 장당 3만원에서 2만원으로 떨어졌고, 냉장고나 에어컨은 절반이나 3분의 1로 떨어지더란 것이다. 그 래서 「이러다간 4백만 달러는커녕 1백만 달러도 못건지겠다」고 퍽 초조하 게 생각했다는 것이 李孟熙의 증언이다.
 
 그는 또 「정부에서 파견된 기관들은 감시는커녕 우리의 밀수를 돕고 있었 다」고 했다. 밀수된 사카린 원료가 적발된 것은 정부기관의 비호가 거두어 져서가 아니라 사카린 원료를 사들이기로 했던 금북화학에 납품을 하고 있 던 회사측에서 韓肥측의 트럭을 미행하여 붙든 것이라고 李孟熙는 썼다. 그 는 또 이 사건을 벌금 물리는 정도로 흐지부지한 것도 「우리를 감싸주었던 정부內 세력 덕분이었다」고 한다.
 
 李孟熙는 이러한 「정부와 협의한 밀수품」 외에 「정부 몰래 한 밀수」가 따로 있었다고 자신의 회상록에서 폭로했다. 그것은 朴정권측이 정치자금 조성을 위해 밀수를 권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삼성은 타공장 건설용 기 계류를 덤으로 밀수했다는 것이다. 타공장 건설용 기계류란 것은 나중에 울 산공단內 다른 공장들을 건설하는 데 써먹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李孟熙 는 1만분의 1mg까지 잴 수 있는 정밀저울이나 두꺼운 강판을 굽힐 수 있는 기계들을 그런 식으로 밀수했는데 韓肥가 국가로 헌납된 후에 고철로 팔리 는 것을 보고 가슴아팠다고 쓰고 있다.
 
 이런 李孟熙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1966년의 요란했던 韓肥수사는 결국 三星 이 회사차원에서 저지른 대규모의 조직적인 밀수를 덮어버리고 「빙산의 일 각」인 사카린 원료 수사에만 국한한 축소·은폐 였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부로서는 수사를 더 깊게 하면 삼성과 공모한, 정치자금을 위한 밀수와 비호 사실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했고 삼성으로선 사카린 원료가 밀수품이 아니라고 버티다간 본질적인 부분이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 「사카린 밀수 시인, 韓肥의 국가헌납」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란 뜻이겠다. 과연 李孟熙의 이 엄청난 고백은 사실인가. 기자는 檢證(검증)에 들어간다. 1966년 대검 특별수사반의 반장은 대검 차장검사이던 金炳華(김병화·별세 )였고 부반장은 李宅珪(이택규·당시 서울고검 검사)였다. 현재 법률신문사 회장으로 있는 李변호사는 李秉喆 신문담당이기도 했었다. 그는 이렇게 말 했다.
 
 
 『1966년 5월에 지방신문에 보도되었지만 언론들이 쓰지 못한 데는 당시 중 앙일보측의 엄청난 財力(재력)에 다른 신문들이 겁을 먹고 못 쓴 것이었지 요. 물론 세관출입기자 중 금품을 수수한 기자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사건 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경향신문이 쓰니까 이때다 싶 어 모두들 달려든 겁니다. 언론끼리 전쟁을 한 셈이었지요.
 
 울산의 韓肥 건설 현장에 수사차 도착해 보니 사카린 원료인 OTSA가 담긴 부대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주장하는 다른 물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지요. 수사결과 三星은 비료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으로부터 借款(차관)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內資(내자)가 없어 물품을 밀수 , 되팔아 內資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란 윤곽을 알게 됩디다. 그해 9월29일 李秉喆씨를 신문했는데 딱 잡아떼더군요. 그는 「사카린 원료 인 OTSA는 비료공장에서 사용할 재료로 구입한 것이고 부하직원이 유용한 것」이라고만 했어요. 그후 다시 한번 신문을 하게 됐는데 목이 쉬어 말도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계속 추궁하니까 쉰 목소리로 「三星을 어떻게 보고 그렇게 말합니까. 내가 그렇게 밀수까지 할 필요가 어디 있소」하며 절보고 따지던 기억이 납니다.
 
 서류를 추적해 가니 차남 李昌熙의 도장 결재는 보이는데 李秉喆씨의 것은 없어 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증거확보에 실패한 채 차남 을 구속시키는 선에서 사건이 매듭지어진 겁니다』
 
 李宅珪 회장은 이어서 놀라운 증언을 했다.
 
 『1972년에 제가 초대 관세청장으로 근무할 때입니다. 이때 韓國肥料측에서 연락이 온 겁니다. 물론 三星측이 손을 뗀 다음이니 三星과 직접 관련이 없었겠지요. 내용인 즉, 韓肥 공장 앞마당을 파 보니 콘크리트 지하실이 발 견되었는데 그 속에 외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가서 보니 전화기, TOTO 양변기 등 전부가 돈이 되는 것들이었지 요. 韓國肥料측에서는 국무회의에서 이것을 팔기로 의결했으니 절더러 통관 을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알아보니 사실이더군요. 그러면서 오래된 물 건이니 古物(고물)취급을 해 달라는 겁니다. 저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가 져올 때 새 것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관세 전액을 물렸습니다. 하지만, 6년 전 검사시절에 수사를 하면서 내가 왜 이걸 놓쳤나 하는 부끄 러움과 자괴감이 한동안 날 괴롭혔지요. 그때 수사란 것이 너무나 형식에 매달렸다는 반성과 함께 사카린 원료 OTSA 밀수사건은 언론이 지적한 대로 「빙산의 일각」이었구나 하고 가슴을 쳤습니다』
 
 요소비료 年間 생산량 33만t 규모의 한국비료 건설을 허가할 때 상공부에서 기술검토를 했는데 담당국장은 吳源哲(오원철)이었다. 뒤에 중화학공업담 당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지낸 그는 경제기획원에서 보내온 기술검토 의뢰서 를 읽어보고 건설자금 총계가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당시 4천3백90만 달러였다(후에 4천8백만 달러로 증액). 너무 비싸다. 진 해 제4비료 건설비는 부대비 3백96만 달러를 포함해서 3천5백93만 달러였다 . 공장의 규모는 거의 동일하다. 제4비료는 복합비료 공장이고 한국비료는 단일제품 공장이므로 더 싸야 한다.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날 퇴 근시간쯤 되어서 전화가 왔다. 張基榮(장기영) 부총리였다.
 
 『吳국장, 비료사업이 중요한 것은 다 알고 있지. 한국비료의 기술검토를 오늘중으로 끝내고 내일 보내시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자료가 없어 검토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니 전 화가 탁 끊겼다. 그런데 10분도 안되어서 상공부 차관실에서 전화가 왔다. 『吳국장, 내일까지 끝내시오』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담당과장에게 『 기술검토하기에 자료가 불충분하니 검토불가라고 써서 보내시오』라고 지시 했다>(吳源哲 지음, 「한국형 경제건설」 제1권에서 인용)
 
 吳源哲은 기자에게 『韓肥건설비가 제4비료공장보다도 절대로 비쌀 수가 없 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李孟熙가 고백한 대규모 밀수 와 어떤 관계가 있는 일인가. 朴正熙는 과연 李秉喆과 밀수를 공모하여 정 치자금을 떼려고 한 것일까. 다음달로 그 해답을 넘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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