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孟熙의 충격적인 고백
경향신문의 특종에 의하여 촉발된 韓肥(한비·한국비료) 밀수사건은 움직일 수록 세력이 커지는 태풍이 되었다. 언론이 民心을 자극하고 정치권을 격발 시켰다. 여론에 떠밀린 朴대통령은 9월19일 大檢으로 하여금 밀수사건을 전 면적으로 재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李秉喆은 해명광고를 내고 1년 전에 창 간한 중앙일보를 내세워 저항을 시도했으나 다른 언론들의 일제 공세를 유 도한 셈이 되었다. 李秉喆측은 이 사건은 회사의 직원 몇 사람이 개인적으 로 저지른 범죄에 불과하고 그에 따른 처벌도 이미 받았으므로 이 문제를 다시 수사하는 것은 一事不再理(일사부재리)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朴대통령은 9월21일 『이번 삼성사건을 보고 재벌이 언론을 독점, 私物視하 는 폐단을 막을 필요성』에 대해서 성명을 내기도 했다. 언론-정치권-정부 -대통령의 연합 총공세에 직면한 李秉喆은 9월22일 한국비료를 국가에 바치 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사업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대검은 이틀 뒤 李秉喆의 차남인 한국비료 상무 李昌熙(이창희 ) 등 밀수관계자들을 구속하고 李秉喆을 불러 신문했다. 동아일보를 필두로 한 언론은 집중취재를 벌여 「사카린 밀수는 빙산의 일각이고 건설자재란 명목으로 세탁기, 양변기, 전화기, 텔레비전 등도 밀수했다」고 보도했다 . 검찰은 그러나 사카린 밀수에 한정해서 수사를 진행하여 10월 초에 마무 리지었다.
10월21일 동아일보는 한국비료가 양변기까지 밀수했다면서 그 증거로서 목 격자들의 구체적인 증언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야당도 증인들을 불러 조사 했으나 검찰은 증거가 없다면서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이로써 이 사건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사카린 밀수」란 선에서 종결되었다. 그후 한국비료에서 밀수품들을 땅에 파묻어버렸다는 소문이 간간이 흘러나오기 도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986년에 나온 李秉喆의 「湖巖自傳」. 여기서 李秉喆은 한비 밀수사건이 억울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이 정치 문제화되고 일부 매스컴이 이에 가담하여 끈질긴 삼성공격을 되풀이했던 이 면에는 당시의 복잡한 政界(정계)사정이 있었다」고 썼다.
그는 또 「OTSA(편집자 注-밀수된 사카린 원료)문제가 일사부재리의 원칙도 무시된 채 강제수사를 받게 되었던 배경에는 몇몇 정치인의 공작이 숨어 있었다. 삼성이 마치 국가적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정도 를 넘는 일이었다. 입을 열면 모두 변명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 다」고 썼다.
李秉喆은 또 「OTSA는 요소비료 공정에 쓰이는 것으로 사들인 것인데 어떤 현장담당사원의 부주의로 당국의 허가없이 6t(당시 5만 달러)을 처분했다 . 이 과오로 벌금을 물고 일단 해결된 사건이었는데 몇몇 정치가의 의도적 인 作害공작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再燃된 것이다」는 입장을 취했다. 다시 그로부터 7년 뒤인 1993년 李秉喆의 장남으로서 한국비료 건설에 핵심 적으로 참여했던 李孟熙(이맹희)는 「회상록-묻어둔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비료 밀수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체험적으로 길게 언급 했다. 그 내용은 아버지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일 뿐 아니라 1966년 의 검찰 수사결과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오히려 당시 언론의 보도(사카린 밀 수는 빙산의 일각이란 주장)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만약 李孟熙가 이런 고백을 1966년 당시에 했더라면 아무리 강력한 朴正熙 정권이라 하더라도 무너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고 백도 건망증이 심한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조용하게 넘어갔다. 李孟熙는 요컨대 韓肥 밀수사건은 朴正熙와 李秉喆의 共謀(공모) 아래서 정 부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비호하는 가운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엄청난 규모 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삼성이 韓肥 건설을 위해 일본 미쓰이 그룹으로부터 빌리기로 한 4천 2백만 달러의 차관은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미쓰이측이 주로 기계와 설비를 韓肥측에 파는 것에 대한 代金(대금)이었다. 이에 따라 미쓰이는 기계를 파는 편에서 관례대로 삼성측에 1백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미쓰이측에서 제공할 리베이트 1백만 달러를 이용하여 정치자금 문제, 한비 건설자금의 부족분 보충, 그리고 울산공단 건설용 기계류를 들 여오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했다」는 것이 李孟熙의 주장이 다. 1백만 달러의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합법적으로 국내로 반입하는 것이 어려운 형편임을 알게 된 朴대통령은 『그렇게 돈을 가져오는 것이 힘들면 물건을 사와서 여기서 처분을 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1백만 달러어치 물건을 밀수해 와서 시중에 내다팔면 대강 4배 정도를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한다. 李孟熙는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4백 만 달러는 피부에 와 닿는 감각으로는 지금의 2천억원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고 했다. 李孟熙는 요컨대 삼성이 정권측과의 합의하에 리베이트 1백만 달러어치의 물건을 밀수하여 암시장에 내다팔고 그 중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 나머지는 韓肥건설에 內資로 쓰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