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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鄭長出의 로비
 성공한 鄭長出의 로비
 
 1968년에 일단 석유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던 포항시추는 왜 시작되었으며 그것도 왜 정보부가 그 일을 하게 되었는가? 196 0년대 포항 드라마의 주인공이 鄭宇眞(나중 에 鄭盛燁으로 改名)이었다면 1970년대의 주인공은 그의 큰형 鄭長出이었다. 그는 대 단한 手腕(수완)의 소유자였다. 鄭씨는 5· 16 전후 정당 간부생활도 했고 비록 낙선했 지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본 경험이 있 었다. 鄭長出은 학자들과의 이론투쟁보다는 정치력을 동원해서 일이 되는 쪽으로 꾸미 는 데 전념했다. 먼저 일본인 친구를 찾아 내 자민당 중의원 다나카 다츠오(田中龍夫 )와 나카니시 이치로(中西一郞)를 소개받은 뒤 자신의 복안을 전했다. 1975년 1월12일 자민당 국회의원단 16명이 訪韓(방한)했을 때 훗날 문부상이 되는 다나카 다츠오 의 원이 자민당 대외경제 협력 위원장 자격으 로 끼어 있었다. 다나카와 나카니시 의원은 鄭長出과 만나 포항지역의 한일 공동개발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2월14일 일본 의원단은 朴正熙 대통령을 방 문했다. 이 자리에서 두 의원은 포항 석유 를 한일 양국이 공동개발할 것을 제의했다 . 朴대통령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이 없 었다고 한다. 이들은 다음날 金鍾泌 총리를 방문해서도 그 계획을 털어 놓았지만 金총 리도 듣고만 있었다고 한다. 일이 어느 정 도 추진됐다고 판단한 鄭長出은 포항 1차 시추 때부터 친면있던 고려대 趙東弼(조동 필) 교수의 소개로 코리아 타코마의 金鍾珞 (김종락) 회장과 공화당 鄭泰成(정태성) 의 원을 만나 한일 민간자본으로 포항 석유를 개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2월4일 이들 네 사람은 金鍾泌 총리의 사무 실로 찾아갔다. 鄭長出은 한아름의 보고서 와 포항 1차 시추 때의 사진 앨범을 갖고 가 열정적으로 金총리를 설득했다. 이 무렵 포항에서 朴대통령에게 「고위 정치인들이 포항 광구를 빼앗으려 한다」는 탄원서가 올라왔다.
 朴대통령은 金正濂 비서실장을 불러 탄원서 를 주면서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확 인 결과 진정서의 내용은 사실과 많이 달랐 다. 金正濂 실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朴正熙는 화를 내는 대신에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아무튼 석유가 나오긴 해야겠는데, 업자 는 있다고 하고 기관에서는 없다고 하고, 게다가 모략까지 들어온다고 하니 참…. 아 예 이해관계가 없는 정보부에 시켜서 포항 지역에 시추탐사를 하도록 하시오. 미국에 도 우리 학자들이 있으니 순수한 애국심만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반드시 이해관계 없이 중립적으로 추진하시오』朴대통령으로부터 석유 탐사 특명을 받은 申稙秀 정보부장은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金正濂 당시 비서실장의 회고는 이렇다.
 
 『석유에 문외한인 정보부장이 이 일을 맡 게 되니 난감한 표정이 되어 땀을 흘립디다 . 그래도 朴대통령은 申稙秀 부장을 믿고 맡기신 거지요. 申부장은 이해관계 없는 순 수한 사람을 쓰라는 각하의 하명에 따라 시 추회사의 회장격으로 정보부 陸東蒼(육동창 ·당시 육군준장) 국장을 발탁했어요』 2월6일 鄭長出은 뜻밖의 사람으로부터 연락 을 받았다. 서울 광교 부근의 어느 다방에 서 만난 사람은 정보부 陸東蒼 국장이었다 . 陸英修 여사의 인척이기도 한 陸국장은 그동안의 포항 시추 경과에 대해서 물었다 . 鄭씨는 정보부가 고위층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보부는 鄭씨 에게 정부에 요구할 사항을 물었다. 鄭長出 은 시추기 두 대, 자금 2억원, 방해요인 제거를 건의했다. 陸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申稙秀 정보부장은 3월5일 朴대통령에 게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朴대통령은 말했다.
 
 『하느님은 아마도 자원을 골고루 나눠 주 었을 것이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기름이 어디엔가는 숨어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도 이만큼 컸으니 우리 손으로 기름을 한 번 찾아보자』
 
 대통령으로부터 특명을 받은 정보부는 즉시 포항 시추의 진행 책임을 김영수 기획조정 실장 - 陸東蒼 국장-崔甲東(최갑동) 과장선 으로 정했다. 현장에서 진두지휘를 할 사람 으로 뽑힌 崔과장은 육군 공병 대령으로서 정보부에 파견 나가 있었다. 1975년 5월31일부터 포항에서 중앙정보부 특별 석유탐사반은 「동신산업공사」라는 위장 간판을 내걸고 鄭長出이 지목한 3개 지점 A, B, D 세 개 갱정의 시추 기공식을 올렸다. A, B공은 鄭長出, D공은 자문위원 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위치선정이었다고 한다. 정보부는 상공부로 하여금 鄭씨 형 제들이 갖고 있던 이 지역의 석유개발권을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 등록을 취소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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