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풍경
박 대통령은 오전 9시 쯤 2층 식당에서 일어나 1층 집무실로 내려 가는 계단으로 몸을 옮겼다.
'나 오늘 삽교천에…' 대통령은 '갔다 올 거야'라는 뒷 말을 망설이다 끝내 하지 않았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두 딸이 머리숙여 인사했다. 이것이 영원한 작별인사가 되었다.
박 대통령은 필기도구와 안경, 연설문 따위가 담긴 누런 가죽가방을 직접 챙겨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왔다. 2층에서 1층으로 출근한 것이다.
김계원 실장은 이런 식의 출근이 대통령의 기분 전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별채건물을 지어 내실을 그 곳으로 옮기자고 건의했으나 청와대 건물에 돈을 쓰는 것을 싫어한 박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다.
{ 기상하여 공관 후정 산책. 후정 벚꽃 터널을 걸어 본다. 1974년 4월9일 아침 아내와 같이 마지막으로 거닐던 이 길, 추억의 꽃길을 걸어간다. 낙화가 길을 덮고 있었다.
아내의 우아한 한복 차림의 그림자가 내옆에, 내뒤에 걸어가는 듯, 같이 걷고 있다는 기분으로 걸어 간다. 확실히 오늘만은 그이와 같이 걷고 있다.
매년 봄이면 이 길을 걷는 것이 나의 가장 즐겁고도 감상적인 시간이다. 현관앞 태산목 밑에 서서 또 추억에 젖어 본다. }
(박대통령의 1977년 4월 12일자 일기중에서)
대통령은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와 우측으로 난 문을 열고 집무실로 통하는 '전실'로 들어섰다. 부속실 역할을 하는 전실에는 박학봉 비서관과 이광형 부관이 교대로 '미스 리'라 불리는 이혜란과 함께 근무했다. 이광형 부관과 이혜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인사를 했다.
대통령의 가죽 가방은 이혜란이 받아 들었다.
박 대통령이 집무실로 들어가자 잠시 후 김계원 실장이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 김 실장은 정보부와 경찰에서 올라온 1일 보고서를 노란 봉투에 넣어 대통령에게 올렸다. 평소에는 대통령이 봉투끝을 잘라 보고서를 꺼내 읽어보지만 이날은 봉투째 서랍속에 집어 넣었다.
박정희의 집무실은 서재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군인출신이었지만 책속에서 살았다. 이 서재 겸 집무실에는 약 6백권의 책이 꽂혀 있었는데 소설이나 수필집, 시집은 단 한권도 없었다.
세계대백과사전, 파월한국군전사, 난중일기, 박정희 대통령(중국어 판), 불확실성의 시대, 감사원 결산 감사 보고서,성경, 성경사전, 최수운 연구, 단재 신채호 전집, 백두진 회고록, 지미 카터 자서전, 자본론의 오역(일어판), 김일성(일어판), 사상범죄론, 한국 헌법, 다국적기업, 정경문화(잡지)….
'암살사연구'란 책도 있었다. 박종규 경호실장 시절인 1973년에 경호실의 연구발전실에서 펴낸 상하권으로 된 책이었다. 세계 각국의 암살 사례를 분석, 암살을 예방하는 방법을 개발하자는 취지로 쓰여진 책이었다.
이 도서목록이 풍기는 분위기는 실용주의자의 그것이었다. 관념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실무적이고 물질적인 소재로 꽉 차 있었다.
집무실 비품들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있었다. 계산자, 돋보기, 은단통, 소독솜통, 라디오, 정원수 정지용 톱, 그리고 부채와 파리채.
대통령은 기름을 절약한다고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않고 창문을 열어놓고는 부채를 부치며 파리를 잡았다.
한번은 이광형 부관이 집무실에 들어갔는데 대통령이 더위를 먹은 듯 얼굴이 벌겋게 돼 있었다. 이 부관은 보일러실 직원을 불러 에어컨을 정식으로 틀지말고 실내 공기순환만 시켜달라고 했다.
그날 저녁 박 대통령은 가족과 식사를 하다 말고 근혜양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놈들이 에어컨을 틀었더군. 갑자기 시원해지던데 내가 모를 줄 알고. 앞으로는 절대 틀지 말라고 해'.
비품 중에 재떨이가 없었던 것은 박 대통령이 말년에 금연을 선언 한 때문인데 간혹 한 개비씩 피우기도 하였다. 특히 아들 문제로 고민 할 때는 부속실 직원에게 담배를 가져오라고 하여 한 개비를 빼내 피웠다.점심을 먹고는 김계원 실장을 불러 마치 고교생이 숨어서 담배 피우 듯 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건강 파수꾼 노릇을 했던 김병수 국군 서울 지구병원장이 말렸더니, 대통령은 '임마, 그러면 너는 뭣 때문에 있노?' 하더란 것이다.
서재에는 비디오 테이프도 몇 개 있었다. '일본 후지 텔레비전과의 인터뷰' '오원춘사건' '500MD 헬기' 등등이었다.
서재겸 집무실은 1967년에 청와대 본관을 증축하면서 기존의 벽을 헐고 방을 낸 것으로 약 40평 정도 됐다. 그때까지는 전실을 집무실로 사용해 왔다.
서재 남쪽 벽으로 출입문이 하나 있었다. 밖에는 잔디밭에 평행봉과 철봉이 설치돼 있었다. 이 문 옆에는 가로 50cm 세로 80cm 가량되는 커다란 일력이 걸려 있었다. 매일 아침 부속실 직원이 청소부를 데리고 들어가 청소를 하면서 한 장씩 찢어 내고 있었다. 일력은 날짜만을 크게 인쇄하고 연도와 달을 작게 표기한 것으로 1979년 10월 26일자가 걸려있었다. 서재에 걸렸던 일력은 그 날로 영원히 고정되었다.
이 날 오전 9시20분 경 김 비서실장은 보고를 마치고 집무실을 나 왔다. 이때부터 대통령은 이날 결재할 서류를 모두 처리하고 일상적인 여타 업무도 거의 다 정리했다.
얼마 후 둔중한 프로펠러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K-16' 성남비행장(현재 서울 비행장)에서 이륙한 석 대의 헬리콥터가 청와대 동편으로 날아와 지하벙커 지붕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막 넘어설 무렵이었다.
헬리콥터가 착륙한 직후 전실 입구 복도에 차지철 경호실장과 천병득 수행과장이 도착했다. 김계원 비서실장도 2층 집무실에서 복도로 내 려왔다. 비서실장을 본 차 실장은 들으라는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비서실장도 내려가는데 중정부장까지 거길 가려 하다니…이런 비상시국에는 서울을 지켜야지…'.
조금 전에 있었던 김재규 정보부장과의 통화내용에 관한 언급이었다. 김계원은 일언반구 대응이 없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 이윽고 전실 문이 열리고 박대통령이 걸어 나왔다. 기다리던 세 사람은 인사했다.대 통령을 뒤따라 나온 이혜란이 박 대통령의 가죽가방을 천병득 과장에게 넘겨 주었다.
현관을 나서는 대통령의 뒤에서 미스 리와 이광형 부관이 '안녕히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했다. 대통령은 연신 콧노래에 맞춰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인사에 답했다.
본관 앞마당에는 대통령 전용차량 슈퍼 살롱과 비서실장 차량 및 경호차량 등 다섯 대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할 수행원 들과 관계 장관들이 차 옆으로 도열해 서 있다가 대통령을 보고 일제히 인사를 했다. 청와대 내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차에는 김계원 비서실장이 대통령 왼쪽에 동승했다.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실장 모친이 편찮으신 모양인데, 내일 모레는 내가 찾지 않을 테니 고향에 다녀 오시오'라고 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