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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
 아들과 아버지
 
 박지만생도는 아버지 영정 앞에서 분향한 뒤에 병풍 뒤로 돌아 편안 하게 잠자는 듯한 시신을 보았다. 그는 곧장 2층의 자신 방으로 올라가 서 음악을 틀어놓고 울었다. 그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나간 일요일이었다. 외박을 끝내고 돌아가는데 아버지가 본관 바깥까지 따라 나왔다.
 
 인사를 하는 아들에게 대통령은 '그래 잘 가, 잘 가'라고 했다. 다 른 때같으면 '응, 그래 가서 고생해'라고 했다. 아들이 '아버님, 그만 들어가세요'라고 해도 계속 서 있었다. 지만은 계단을 내려와서 뒤를 돌아보니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서 있었다.
 
 아내를 잃은 뒤 대통령은 아들에게 더욱 정을 쏟았다. 박지만이 육 군사관학교에 입교한 것은 1977년1월30일. 박대통령이 쓴 일기장에는 이날전후의 4일간이 모두 아들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1977년1월29일(토)맑음. 지만이가 내일 육사에 가입교하게 되어 저 녁 만찬을 들며 육사 이야기를 하면서 격려하다. 이제 19세 고교졸업생 이라고 하지만 아직 집을 떠나 혼자 객지생활을 한 경험이 없어서 애처 롭기도 하고불안스러운 생각도 들지만 이제부터는 국군의 장교가 되려 고 하는 남아의 출관이기에 부모의 자정에 쏠리는 표시는 하지 않아야지 하고 호쾌한 나의 경험담들도 들려주면서 약한 마음을 먹지 않도록 애썼다.
 
 낮에는 국립묘지에 참배하고 왔다기에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이 없더냐고 농담을 하였다. 자식을 길러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는 옛말 이 새삼 실감 있게 느껴졌다. 1940년3월 하순 어느날, 쌀쌀한 봄바람이 옷자락으로 스며드는 고향 구미역 북행선 플랫폼에서 멀리 이국땅 북만 주신경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하여 북행열차를 타고 떠나는 나를 전송 하기위해 칠순 노구의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나의 옷자락을 붙잡으시며 '늙은 어미를 두고 왜 그 먼 곳에 가려고 하느냐'하시며 노안에 눈물을 흘리시던 그 모습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고 어머님의 흰옷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때가지 손을 들어 흔드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완연하다. 그날어머님의 심정이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하셨을까. 어머님 너무나 불 효막심하였습니다. 이제 용서를 빌어본들 무슨 소용이있으랴!]
 
 [1977년1월30일(일). 6시반경 기상, 7시에 지만이를 깨우다. 영하 14-15도의 혹한이다. 8시반 지만이와 조반을 들다. 지만이는 아침에 육 사생도 규정대로 짧게 이발을 하였다. 식탁에 앉으면서 '머리를 깎고나 니 이제정말 집을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육사와 같은 훌륭한 학교에 가는데 사나이 대장부가 그렇게 마음이 약 해서야 어찌하느냐'하고 타이르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여 간 신히 참고 태연한 체 하였으나 이 자리에 저희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나도 몹시 마음이 언짢았었다. 저것이 저희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저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 이 찢어지는 듯 참을 길이 없었다.
 
 9시20분 청와대를 출발하다.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청와대의 많은 직 원들이 현관에 나와서 전송을 해주었다. 지만이와 한 차에 타고 태릉 육사로 가면서 차 안에서 지만이와 여러 가지 환담을 하면서 격려를 하 였다. 창밖의 날씨가 매섭게 차기만 하다. 이 추운 날씨에 지만이가 훈 련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육사2기 시절의 이야기 도 해주었다.
 
 육사본관 현관에서 지만이를 내려주고 '몸 건강히 열심히 잘해, 지만이!'하고 신입생접수장으로 보내고 육사교장실에 들어가서 교장 정승화장군과 잠시 환담하다가 귀저하다. 집에 돌아와 아내 영정 앞에 가서 '지만이가 오늘육사에 들어갔소. 내가 지금 데려다 주고 돌 아왔소. 당신께서 앞으로 지만이를 보살펴 주시오'라고 고하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란 왜 이다지도 약할까. 오전중에 지만이 방을 정돈 하였다. 온 집안이 텅 빈 듯하다. 군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다 마찬가지리라.]
 
 [1977년1월31일(월). 기침하니 날씨가 매우 차다. 아침 늦잠 잔다고 늘 잔소리를 듣던 지만이가 오늘 아침부터는 6시에 일어나서 혹한 속에 육사 교정을 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군인으로서 병영생활의 첫 아침, 한파 속에서 추위와 싸우며 청운의 대지를 펴기 위하여 의지를 불태우 는 홍안 19세의 젊은 사관생도(물론 아직 정식 입교는 하지 않았으나). 장하다, 우리 지만이. 재천의 너의 어머니는 더없이 기뻐하시리라.]
 
 [1977년2월1일(화). 오후에 육사교장 정중장이 내방하여 입교한지만 이의 동향과 교육받는 자세를 들었다. 매우 명랑하고 식사도 잘하여 동 료들과 똑같이 열심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무한히 기뻤다. 이날 아침에 태능 부근은 영하20도까지 내려갔는데 기상후 2㎞의 구보를 했 다고한다. 염려하던 발도 이상이 없는 듯 낙오하지 않고 같이 뛰었다니 기쁘기 한이 없다.]
 
 [1977년2월22일. 지만이로부터 편지가 왔다. 사관학교에서 처음 보 내온 편지다. 반갑기 한이 없다. 깨알같은 지만이의 독특한 필체로 육 사용지에 1매. 국민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시켜서 처음 받아보는 편지이다. 몇번이나 읽어보고 지만이가 이만큼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 어 대견하기만 했다. '학과 출장시 꼭 보게 되는 '내 생명 조국을 위 하여'라는 아버지의 휘호를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피가 끓어오르는 듯 한 이상한 감정이 듭니다'(중략). 편지를 아내 영정 앞에 가져다 놓고 '지만이에게서 편지가 왔소'하고 고하다.]
 
 [1977년8월8일. 지만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엄격하고도 규칙적인 군대생활을 하게 되니 군인의 사명이 무엇이란 것을 점차 깨닫게 되고 조국이 무엇이란 것을 어슴프레하게나마 알게 되고 조국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땀흘리며 받는 이 훈련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흘리는 땀이란 것을 깨닫게 되면 그 훈련이 하나도 괴롭거나 고 생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보람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땅에 엎드려 조국의 흙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돌이켜 보고 휴식시간에 철모를 벗고 땀방울을 손으로 쓱 문질러 먼 산을 바라보면 조국의 산천 이 다정히 반겨줍니다. 책임감이 얼마나 인간을 부지런하게 하는지 배 웠습니다.' 지만이 편지의 한 구절이다.]
 
 [1977년8월28일. 지만이가 7개월만에 휴가로 집에 돌아왔다. 근영이 가 차를 가지고 가서 같이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12시 반경 집에 도착했 다. 맹훈련으로 검게 타고 체중이 3kg이나 줄었다고 하니 건강하여 무 엇보다도 기쁘다. 오늘은 지만이가 돌아와서 집안에 활기가 넘쳐 흐른 다. '집이 이렇게도 좋은 곳인지 몰랐다'며 지만이는 즐겁기 한이 없다. 저녁시간에는 웃음과 화제가 그칠 줄 모른다.]
 
 [1978년1월30일. 작년 오늘 지만이를 데리고 육군사관학교에 갔었다. 지만이의 입교(가입교)차 머리를 바싹 깎고…(중략). 3년 전 제 어머니 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부모형제 한 가족이 얼마나 그립고 소중 한 것인지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단 3남매, 그중에서 하나가 육사에 입교하게 되니 집안이 더욱 호젓한 감을 느끼게 되었다. 1학기만 지나 면 매주 외출로 집에올 줄을 알면서도 먼 길을 떠나는 것처럼, 모두가 큰 이별이나 하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지난 1년을 통해서 자 식을 군에 보낸 부모의 심정이 어떤 것이란 것을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 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정이란 다 마찬가지이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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