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油徵과 油田의 혼동
 油徵과 油田의 혼동
 
 기자는 포항석유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써서 사회부장에게 제출했다. 사회 부장은 『어제부터 정보부에서 연락이 있었 다. 이제부터는 포항석유에 대해서 일체 보 도하지 못한다는 통보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朴대통령이 포항석유 발견을 확인 해준 날로부터 6일이 지나자 포항석유란 단 어가 신문과 방송에서 썰물처럼 사라졌다. 기자는 이 무렵 석유개발에 대한 나름대로 의 이해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교실에 서 배운 지식 덕분이 아니라 취재현장에서 특종을 노리고 뛴 덕분이었다. 1972년 11 월13일, 동해 제6광구의 해저석유 개발권을 가진 로열 더치 쉘은 울산 正東 80km 해저 (수심197m)에서 돌고래 I孔 시추를 시작했 고 그때 국제신보 문화부 기자이던 필자는 「석유발견」이란 稀代의 특종을 하기 위 해서 부산 감만동 바닷가에 있는 현장사무 소를 들락거렸다. 필요에 의해서 기자는 미 국 및 네덜란드 기술자에게 묻고 석유지질 학 책을 참고하면서 「지상 최대의 도박」 이라 불리는 성공률 2%의 석유개발 취재에 빠져들었다.
 기자는 1973년 1월4일자 국제신보 사회면 머릿기사로 돌고래 I공의 굴착심도 2000m 지층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되고 있어 油層 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특종으로 보도했다. 나중에 檢層해본 결과 기름과는 관계가 없는 천연가스로 밝혀졌다. 이 지 역은 油田보다는 천연가스田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그때부터 확실해졌다. 최근 석유개발공사는 이 부근 해저에서 발견된 천연가스層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개 발하기로 했다.
 
 석유개발 과정을 면밀히 취재하면서 기자는 두꺼운 퇴적층을 뚫었을 때 석유가 나오는 것은 구름이 끼면 비가 오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런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매장량이다. 육상에서는 수백만 배럴의 매 장량도 油田으로서 경제성이 있으나 해저유 전은 수천만 배럴의 매장량도 비싼 개발비 때문에 경제성이 없을 수가 있다. 이런 사 정을 잘 모르는 기자들, 국민들, 그리고 나 중에는 朴正熙 대통령까지도 기름 몇 드럼 정도가 발견되어도 흥분하려는 태세였다. 외국에선 퇴적층을 시추할 때 석유가 안 나오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판인데 우 리나라에선 당연히 나와야 할 천연가스에도 흥분하고 그것을 곧장 유전 발견으로 연결 시켜 확대 해석하곤 했다. 시추의 목적은 천연가스나 油徵이 아니라 경제성이 있을 만큼 多量으로 매장된 유전이나 가스田의 발견이란 것을 망각한 데서 포항석유 대소 동이 있었다.
 
 기자도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알아버린 것 이 아니라 취재과정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웠던 일이었다. 1975년 6월 로열 더치 쉘은 제6광구의 제주도 동쪽 82km에서 도미 A공 시추를 再開했다. 굴착심도 2,400m 부 근 沙岩層(사암층-모래가 굳어서 된 틈이 많은 퇴적암. 이 틈 속에 석유나 가스가 괸 다)을 뚫을 때부터 원유가 검출되기 시작했 다. 포항석유가 아니라 이 원유검출이 우리 나라에서 최초였다.
 
 기자는 1975년 6월17일 국제신문 1면 머릿 기사로 「원유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油層은 2,480m 부근에 있었다. 이 지층에 대한 檢層 결과 경제성이 있을 만한 매장 량을 갖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다. 기자는 유전 발견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이 두 개의 불발 특종 - 천연가스 발견과 油徵발견의 경험을 통해서 浦項석유발견을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기 자는 포항석유의 수준을 아무리 높게 잡더 라도 제6광구 도미 A孔에서 발견된 원유 정 도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포항유전의 가능성을 최초로 제기했으나 1 975~77년 시추에는 관계하지 않았던 鄭盛燁 (鄭宇眞의 改名)은 이즈음 정보기관에 불려 가 조사를 받았다. 거의 모든 신문은 포항 석유발견의 主役(주역)이 鄭盛燁이라고 誤報를 했었다. 이번 포항시추는 鄭長出의 활 약에 의해 착수되었다는 것을 모른 언론이 옛날 신문철을 뒤져서 쓴 기사 때문이었다 . 당국에선 鄭盛燁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고 오해를 한 것 이다.
 
 이 무렵 기자는 어떤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포항석유는 경제성이 없다」고 소리치 고 싶은 충동이었다.
 
 이런 충동에는 기자가 알고 있는 진실을 전 하고자 하는 욕심에다가 석유개발에 관한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도 깔려 있었다 . 명예욕과 정의감이 뒤섞인 충동을 자제하 지 못한 기자는 언론종사자와 지질학자들, 그리고 관계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편의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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