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어도 뚫어도
1976년 연두 기자회견 석상에서 한 朴대통 령의 석유 발견 발표 이후 정보부는 바빠졌 다. 申稙秀 부장은 검사 출신답게 합리적이 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정보부는 朴대통령 이 그런 발표를 하는 것에도 반대했다고 한 다. 언론의 과장 왜곡보도로 여론이 과열되 자 우선 언론의 포항관련 보도를 일체 금지 시킨 다음 정보부는 미국에서 5000m까지 뚫 을 수 있는 유전시추기를 도입하고 미국인 석유시추 기술자 20여명도 데리고 왔다. 명인성, 김연수 박사 등 해외에서 활동중이 던 한국인 전문가들도 초빙했다. 동신산업 은 현대적 석유개발회사로 변모했다. 3월에 정보부의 위장회사 동신산업은 기름이 나 온 B공 북서쪽 약 50m 지점에서 DS 1호공을 뚫기 시작했다. B공 시추는 일반광산용 시 추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구멍이 지름 2.7c m로 좁아 檢層(검층-지층의 상태를 조사하 여 유전의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추기가 掘進(굴진)심도 1000m를 넘어 석유가 나왔 던 1475m를 향해 접근하자 누구보다도 가슴 을 죄기 시작한 것은 현장책임자인 동신산 업 사장 崔甲東이었다. 육군대령이던 그는 포항석유발표 직후 준장으로 진급했다. 지 하 1394 ∼ 96m 안산암에서 형광반응이 있 었으나 기름은 비치지 않았다. 시추봉은 지하 1400m를 넘어섰다. 메마르고 단단한 화강암층을 갈아서 부수면서 조금 씩 조금씩 파고들어갔다. 崔사장은 寢食(침 식)을 잊다시피하여 현장에 나와 초조하게 작업을 지켜보았다. 정보부, 청와대로 매 일 아침 보고를 했다.
그는 졸도했다. 긴장의 연속에 의한 신경성 고혈압 때문이었다. 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다가 링거병을 팔뚝에 꽂은 채 현장에 다 시 나타났다. 『문제의 油層심도에 접근하 고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병상에 누워 있 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1450m, 1470, 1480, 1490, 1500, 1550m. 기 름은 나오지 않았다. 崔사장은 눈에 띄게 초췌해졌다. 초조하게 좋은 소식을 기다리 는 정보부장과 대통령 쪽으로 매일 「油徵 없음」이란 보고를 하는 것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마침내 申稙秀 부장은 석유보다도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훈계를 한 뒤 그를 부산의 동래 온천장으로 강제 휴양을 보내버렸다.
B孔에서 불과 50m 거리를 두고 뚫었는데도 기름이 나오지 않았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 이었다. 含油層은 보통 고립적으로 존재하 지 않는다. 수㎢나 수십㎢ 뻗어 있는 법이 기 때문에 같은 그 지층에 도달하면 유징이 나오게 되어 있다. DS 1호공 시추는 지하 2176m까지 뚫고 끝냈다. 화강암층이 끝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기름은 沙岩, 石灰岩 같은 무른 퇴적층에 스며 있지 강철 같은 화강암층에선 발견되 지 않는다. 정보부는 화강암을 지나면 또다 시 퇴적층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굴진을 계속했으나 인간의 소망이 아 무리 간절하다고 한들 자연의 이치가 바뀔 리가 없었다.
정보부는 이어서 기름이 나온 B공에서 남동 쪽으로 수십m 떨어진 장소에서 DS 2호공을 시추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지하 1,475m 지층을 목표로 했다. 이런 시추는 아마도 세계 석유개발사상 처음이었을 것이다. 마 당만한 면적에 세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이 미 유전을 찾자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대 륙붕 시추에서는 수십 평방킬로미터의 평면 적을 가진 油田 유망지층에 대한 평가를 단 한 구멍의 시추로 결론을 내렸다. 포항시 추는 유전이 아니라 대통령이 발표한 석유 발견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 성격 이 변질되어 버렸다. DS 2호공 시추도 지하 1475m를 아무 소식없이 통과했다. 매일 아 침 『아무 징후 없습니다』란 보고를 정보 부, 청와대 비서실로 올려야 하는 崔甲東 동신산업 사장의 괴로움이 극에 달하고 있 었다. 吳源哲 수석은 직접 전화를 걸어와
『무슨 소식이 있습니까?』하고 물어오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朴대통령의 숨결 이 느껴지는 듯했다. 朴대통령은 그해 3월 포항의 시추현장을 찾아 격려하고 올라가 지 않았던가.
단단한 화강암층을 파고들어가는 것을 보다 못한 한 미국인 기술자는 자문위원인 이희 철 교수(인하대학)에게 『당신들은 차라리 금을 찾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더란 것이 다. 새 구멍 굴진을 시작하는 한 기공식에 참석한 김영수 정보부 기조실장은 崔甲東 에게 『이번에도 기름이 나오지 않으면 너 를 이 구멍에 파묻어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DS 2호공에서 油徵이 나오지 않자 정 보부는 지하 1823m에서 굴진을 종료했다. 다른 지역의 시추공에서도 아무 성과가 없 었다.
기자가 『포항석유는 경제성이 의문시된다. 있다 해도 소규모일 것이다』는 요지의 논문을 써낸 것은 이처럼 정보부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