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드는 의문점
시추현장에서도 이즈음 B공 원유에 대한 의 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국립지질조사소에 서 현장에 파견나가 있던 석유지질 전문가 곽영훈 박사(현재 한국자원연구소 소장)는 그 의문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선 석유가 나올 수 없는 지층에서 나왔 다는 점이었습니다. 석유지질학설로는 어떤 경우에도 설명이 되지 않는 석유발견이었 습니다. 즉, 과학으론 해명이 되지 않는 현 상이었다는 점입니다. 포항지역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라고 있는 곳은 최대 두께가 800미터쯤 되는 제3기 海成層(바다 밑에서 퇴적된 지층)뿐입니다.
그런데 이 3기층을 여러 번 뚫어보니 석유 를 生成하기엔 지층의 成熟이 미흡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B공의 기름은 이 3기층이 아니라 中生代의 백악기층, 그것도 화강암 , 정확히 말하면 규장암 지층에서 나왔단 말입니다. 다른 지층에서 생성된 것이 틈을 따라 이동하여 이곳까지 왔다고 설명하려 고 해도 무리였습니다. 중생대 퇴적층은 제 3기층과 달리 過성숙되어 기름을 생성시킬 수 없다고 우리는 판단했습니다. 중생대 퇴적층이라면 또 모를까 화강암층에서 나왔 으니 더욱 석유발견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B공 기름에 대한 유공과 KIST의 최초 분석에 대한 오해 입니다. 이 분석은 原油여부를 판별한 것이 아니라 原油라는 전제하에서 성분을 알아 본 것이었습니다』
郭박사는 『KIST에 B공 기름을 분석하러 갈 때 나도 동행했다』면서 『성분 분석을 해 보니 더욱 원유가 아니란 생각이 굳어졌다 』고 했다. 郭박사는 『원유인가 아닌가를 분석하는 확인법이 당시 국내에선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서 『원유인가 아닌 가를 알아보려면 분석화학적 여러 가지 시 험과 함께 석유지질학적인 검토가 따라야 하는데 어느 것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대통령이 원유라고 발표하고 무서운 정보부가 대통령의 말씀을 사후적으로 뒷받 침하려고 달려들고 있는 판에 자문위원들이 제기하는 이런 異見(이견)은 그냥 묻혀 넘 어갔다.
하루는 金正濂 실장이 吳源哲을 부르더니
『이젠 포항탐사를 매듭지을 때가 된 것 같 다』고 했다. 두 사람은 우선 정보부를 납 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吳源哲은 걸프의 석유탐사 전문가 레딩 햄을 초 빙하여 포항을 시찰하게 하고 탐사자료를 검토하도록 했다. 조선호텔에서 정보부 탐 사반 사람들과 만난 그는 간단하게 『석유 부존의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하 루 500달러, 10일 기한으로 온 오일맨의 권 위 앞에서 정보부도 反論을 제기하지 못했다. 동신산업 회장으로 통하던 정보부의 陸東蒼 국장이 吳源哲 수석을 찾아 와 『이제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하면서 상의하 더라고 한다. 吳源哲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오래 끌수록 정보부도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보부는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장비와 殘務(잔무)를 국립지질조사소에 인 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신산업이 마지막으로 뚫은 것은 칠포해수 욕장 남쪽 해안 언덕의 DS 4호공이었다. 최 후를 의식해서인지 가장 깊게 뚫었다. 최종 심도는 3117m. 역시 화산암층을 헤쳐나오지 못하고 굴진은 끝났다. 1976년 말에 중앙 정보부장으로 취임한 金載圭는 시추종료를 朴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 령은 『석유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는 것도 통치자의 의무가 아니겠는가』라고 말 했다고 전한다. 연인원 약 4만명, 약 70억 원의 예산, 12개 구멍 시추, 延 25000m 굴 착. 그 흔적은 암석표본과 각종 檢層자료로 만 남았다. 朴대통령, 金鍾泌 당시 총리, 鄭長出, 崔甲東, 그리고 현장의 몇 사람들 은 B공에서 나온 기름을 기념으로 조금씩 얻어가 최근까지 보관했다. 1981년 여름 기자는 포항시추 현장을 5년 만에 둘러보았다. 기름이 나왔던 B공은 시 추파이프가 박힌 채 남아 있었고 가스가 지 층수에 섞여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었다. 풀 밭 속에 버려진 이 坑口(갱구)가 기름에 한 맺혔던 대통령과 온 국민들을 흥분시켰던 곳인 줄 아는 행인들은 별로 없었다. 뜨거 운 지하수가 나왔던 D공 주변은 정부가 주 변의 땅과 집들을 사들여 통제구역으로 설 정해놓았다. 坑口의 손잡이를 트니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국립지질조사소의 後身인 동력자원연구소의 현장관리소 직원들은 굴 착장비에 기름칠을 해가며 다시 때가 오기 를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