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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의 심술
 마르코스의 심술
 
 1966년 10월23일 오후 4시, 朴正熙 대통령 일행은 필리핀 공항에서 의전행 사를 마치고 숙소인 마닐라 호텔에 도착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 월남, 태국 등 각국 정상들도 같은 호텔에 들었다. 朴대통령에게 배 정된 방은 566호실로 2차대전 당시 맥아더가 숙소로 사용했다는 방인데 여 느 頂上들의 방보다 작았다. 존슨 대통령을 수행한 러스크 美국무장관의 방 보다도 작았다.
 李東元 장관은 마르코스의 의도적인 「한국 無視」라 느꼈다고 한다. 수행 원들이 분개하자 朴대통령은 『괜찮아. 방이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떤가. 난 오히려 작은 방이 더 정이 붙는데. 신경쓰지 말게』라고 대범하게 말했 다. 마르코스의 심술은 다음날에도 계속됐다.
 
 1966년 10월24일 월요일은 공교롭게도 국제연합(UN)의 날이기도 했다. 참전 국 대사들이 합의하여 마련한 정상회담 순서는 첫날 국회의사당에서 개회식 을 가진 뒤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낭宮 대회의실에서 1, 2차 본회의를 비공 개로 갖기로 결정했다.
 
 오전 9시, 필리핀 국회의사당 단상에는 오른편에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의 헤롤드 홀트 수상, 대한민국의 朴正熙 대통령, 뉴질랜드의 커드 홀리오크 수상,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 태국의 타놈 키티카촌 수상,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 월남공화국의 구엔 반 티우 의장과 구엔 카오 키 수상이 앉 았다.
 
 의사당에는 7개국 대표단원 약 200명과 외교단, 필리핀 국회의원, 각종 단 체 대표 등 200여 명, 세계 주요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기자와 보도진 400여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사상 최대의 국제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柳陽洙 駐필리핀 대사의 회고.
 
 
 『사전에 참전국 대사들끼리 모여 시간표를 짜면서 開會辭(개회사)는 주최 국 頂上인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主戰國인 월남과 미국에 비해 필리핀의 입장이 미묘할 것이라는 점을 두고 대사 들끼리 토론한 끝에 형식적인 개회사를 하도록 10분으로 짧게 잡아두었습니 다. 그런데 개회식에서부터 문제가 생긴 겁니다』
 
 태국 수상의 사회로 개회선언이 있은 뒤 뉴질랜드 수상의 제의로 주최국인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만장일치로 이번 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의장의 개회사 순서가 되었다. 동시통역으로 진행되는 이 회의에서 마르코스는 스 페인 억양이 강한 영어 연설을 유창하게 시작했다. 그는 사전에 합의한 대 로 참가국 정상들을 환영한다는 대목에서 연설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런 데 그의 연설은 브레이크가 없었다. 10분에 걸친 환영사에 이어 난데없이 平和論으로 이어졌다.
 
 
 『평화와 자유는 모든 인류의 권리이며 소망입니다. 평화와 자유가 없는 곳 에 인류의 번영과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단상의 수뇌들은 월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는 목적에서 참석했다가 갑자 기 平和論이 나오자 표정이 굳어졌다. 마르코스는 연설을 멈추지 않았다.
 
 『동남아 국민들은 평화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어두운 삶을 강요당한 쓰라린 역사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월남에서는 야만적인 전 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부도덕한 파괴와 살인이 자행되고 있습니다』開戰(개전)은 케네디가 했지만 뒤처리는 존슨의 몫이 된 越南戰. 존슨은 월 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군사적 압박이 필요했고 그만큼 아시아 우방의 결속된 참전이 요구되었다. 그런데 마르코스가 평화론을 주창한 것 이다.
 
 청중을 향해 앉아 있던 존슨 대통령이 갑자기 의자를 돌리더니 단상의 마르 코스를 향해 앉았다. 그리고는 보통 사람의 얼굴만큼 큰 손을 번쩍 들더니 마르코스를 향해 박수를 쳤다.
 
 
 『이것은 인류 문명의 파괴이며 인간 양심에 대한 반역이고 신의 섭리에 대 한 죄악입니다』
 
 존슨 대통령은 더욱 열렬히 박수를 쳤다. 청중들은 마르코스와 존슨을 번갈 아 보며 침을 삼켰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았던 朴正熙 대통령 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단상 아래에서 지켜보던 柳陽洙 대사의 회고.
 
 『저를 포함해 단상 밑에서 보고 있던 참전국 외교관들은 경악하는 중이었 습니다. 존슨은 마르코스를 향해 앉아서 「평화」라는 단어만 나오면 박수 를 쳐 댔습니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怒氣(노기)의 표현이었습니다. 마르 코스는 10분 예정인 환영사를 무려 30분이나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동안 존 슨은 혼자서 수십 번이나 박수를 쳤던 겁니다』
 
 기이한 개회사에서 마르코스는 평화와 자유를 외쳤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한 방안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마르코스와 존슨의 대결은 이날 오후 에 열리는 2차 본회의장으로 옮겨갔다.
 
 오전에 개회식이 끝난 뒤 대통령宮에서 열린 제1차 본회의에서는 월남 수상 구엔 카오 키의 월남 현황 설명이 있었고 웨스트 모어랜드 주월미군 사령 관의 월남전 전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오후 4시부터 열린 제2차 본회의 는 각국 원수의 연설로 진행되었다.
 
 커다란 U자 형태의 원탁에 7개국 정상이 알파벳 순서대로 앉고 各國 정상들 뒤로 수행 참모들이 앉았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사회로 오스트레일 리아에 이어 한국의 朴正熙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신봉하는 세계 인류의 염원을 구현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이 회담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회담을 통해 참전국들은 不義와 결연히 대결하며 정의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세계 만방에 再천명함과 동시에 침략자들에게는 침략을 포기하게끔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朴대통령은 휴전 前에 외국군대 철수 반대, 월맹의 베트콩에 대한 지원의 즉각 중지, 월남에서 월남공화국 외 정치권력 불인정, 휴전 후 월 남의 독립 보장 등을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참가국 頂上 중 존슨을 만족시 킨 유일한 내용임이 회의가 진행될수록 확연해져 갔다.
 
 뉴질랜드에 이어 필리핀 순서가 되자 U자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던 마르코 스는 예의 평화론을 개진했다. 여기서도 존슨은 의자를 돌려 앉은 뒤 다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U자형 테이블을 따라 순서가 바뀌면서 이윽고 존슨 미국 대통령의 차례가 되었다. 러스크 국무장관 등이 배석하고 그 뒤로는 10여 명의 참모와 수행원들이 앉아 있었다. 참모 한 사람이 존슨에게 준비 된 연설문 원고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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