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생애 최고의 날
韓美 양국의 蜜月期가 頂點(정점)에 도달한 시점은 존슨의 한국 방문 때였 다. 1966년 10월26일 존슨 美대통령 부부 일행은 마닐라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필리핀을 떠나 월남, 태국, 말레이시아를 순방한 뒤 10월31일 오후 3 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3대의 비행기에 러스크 美 국무장관을 포함한 수 행원 50여 명과 170여 명의 보도진들을 거느린 大식구였다.
한국 정부는 존슨 대통령 부부와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를 했다 . 평소 근검하기로 유명한 朴대통령이 영접비로 1억5000만원을 책정했다. 연도에 늘어서게 될 시민과 학생들에게 나눠 줄 태극기와 성조기 40만 장을 사들였다. 존슨 訪韓 기록영화 제작도 기획되었다. 5만 장의 포스터, 11개 의 대형 아치, 19개의 대형 탑, 7개의 현판, 9개의 대형 플래카드와 연변에 놓여질 국화화분 5000개. 특히 도로에 뿌려질 색종이 5만 부대와 6만 개의 고무풍선도 준비됐다.
서울 시청 앞에는 시민들이 대거 운집할 것을 예상하고 을지로 입구, 남대 문, 덕수궁 내에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로열박스와 연단을 만들고 「平和臺」라 이름 붙였다. 미국, 서독, 영국 등지에서 국빈을 맞을 때의 준비상황 과 기록필름 등을 참조하여 준비한 이 平和臺는 시민환영대회장으로서 국무 위원 이상 요인 100여 명이 양국 원수를 빙 둘러싸면서 앉게 해 두었다. 존슨 부부가 머물 숙소는 워커힐 호텔로 정했고, 한양대학교에서 워커힐에 이르는 非포장도로를 「밤을 세워」 아스팔트로 포장하기도 했다. 10월31 일과 11월1일, 존슨 대통령이 2박3일간 숙소로 사용할 워커힐은 일체 외부 손님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존슨 대통령이 1m93cm의 거구인 점을 감안해 홍콩에서 큰 침대를 갖고 왔다.
국회에서는 존슨 대통령이 연설하게 될 때 부인을 어느 좌석에 앉힐 것인지 로 고민하기도 했다.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각급 학교, 관공서는 물론 일반 회사와 婦人會, 민간단체, 정당 조직에까지 존슨 대통령이 도착하는 날 동 원령이 떨어지고 있었다.
10월31일 오후 3시 정각, 말레이시아에서 전용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존슨 대통령 부부 일행은 공항에서 朴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연옥 색 한복차림의 陸英修 여사가 버드 여사에게 장미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兩國 원수는 3軍 및 해병대 의장대를 사열한 후 시청 앞 광장에서 베풀어질 시민환영대회장으로 향했다. 朴대통령은 존슨과 함께 無蓋車(무개차)에 올 랐고 陸英修 여사는 버드 여사와 함께 2호차를 탔다. 버드 여사는 『동남아 6개 나라를 다 방문해 봤지만 이런 환영은 처음 받아 본다』며 놀라워 했 다. 30대의 경찰 사이드 카를 선두로 150대의 자동차가 출발했다. 행렬의 길이는 300m에 이르렀다.
공중에서는 전투기 편대가 오색 연막을 뿌리며 날고 그 아래로 경호 헬기가 낮게 선회했다. 연도에는 양국 국기를 흔드는 인파 속에 「Wellcome! COW -BOY!」 「JONSON, SAY YOU LOVE US」 등 플래카드와 피켓들이 존슨 대통령 의 눈길을 모았다.
존슨의 入京은 가깝고도 멀었다. 공항을 출발하자 마자 대대적인 환영인파 를 경험한 존슨 대통령은 아홉 번이나 차에서 내려야 했다. 공항에서 朴대통령과 나란히 링컨 콘티넨탈 승용차에 앉아 오던 존슨 대통 령은 연도의 환영인파에 감격하더니 강서구 발산동 삼거리를 조금 지나자 차를 세우게 하고 朴대통령을 이끌고 연도로 내려섰다. 누렇게 익은 들판을 향해 걸어간 존슨 대통령은 물이 채 마르지 않은 논으로 들어가 벼 이삭을 손으로 잡아 보면서 朴대통령에게 『이것이 한국의 主産物이오?』 하고 물 었다. 朴대통령은 영어로 『그렇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벼라고 부르지요』라 고 대답했다. 존슨 대통령은 구두와 바지에 진흙이 묻었다. 경호원들이 에 워싼 가운데서도 인파들이 몰려 들었다. 존슨 대통령은 경호원들의 제지를 만류하면서 학생들과 악수를 나누곤 다시 차에 올랐다.
양화교 앞에서도 차를 세운 존슨 대통령은 10여분 동안 시민들과 기념촬영 을 즐겼다. 노량진 전차 정류장에서도 차에서 내린 존슨 대통령은 환영인파 속의 농악대들에게 둘러싸였다. 농악 장단에 맞춰 박수까지 치는 존슨 대 통령에게 1000여 군중이 몰려들자 경호원들이 당황했다. 영접위원장 張基榮 (장기영) 부총리가 직접 앞에 나서 대열을 정리했다.
제1한강교 앞에서는 금란여중 학생들로부터 꽃가루 세례를 받으며 10여m를 걷기도 하고 삼각지 교차로 부근에서는 한복차림의 여학생들로부터 꽃다발 을 받기도 했다. 세종로에서 남녀 배우 200여 명이 궁중 예복을 입고 도열 해 서 있자 존슨은 또 다시 차에서 내려 이들과 어울렸다. 시내로 들어 올 수록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존슨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경호원들이
『이건 너무합니다』라며 제지했다. 존슨은 차에서 1분 정도 대기하다가 다 시 차에서 내려 경호원들을 제치고 환영인파와 악수를 나누었다. 양국 원수가 탄 승용차가 남대문에 이르자 500마리의 비둘기가 발목에 오색 테이프를 달고 날아 올랐다. 승용차가 남대문을 돌아서자 고층건물에서 색 종이와 꽃가루를 뿌렸다. 거리에는 군악대와 학생 밴드가 줄지어 행진하며 존슨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텍사스의 황색장미」와 「고향의 봄」 등을 연주했다. 존슨은 무개차에서 양 손을 번쩍 들고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었 다. 朴대통령도 손을 흔들었다.
시청 앞에 차가 이르렀을 때 군중은 거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남대문, 소 공로, 을지로 입구까지 약 35만 군중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깃발을 흔들 며 「존슨 대통령 만세」를 외치곤 했다. 존슨이 가는 곳마다 꽃바다에 행 진곡이 울려 퍼졌다. 아름다운 축제를 시민들도 즐기고 있었다. 시민환영대회장인 平和臺 아래로 승용차가 멈춰 서자 兩國 頂上 부부가 나 란히 차에서 내려 붉은 양탄자가 깔린 연단을 걸어 올라갔다. 양쪽에는 30 0명의 수도여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학생들과 진명여고 학생들이 국화 꽃잎을 뿌리며 「텍사스의 황색장미」와 「아리랑」을 합창했다. 공항에서 시청까지 24km를 오는 데 2시간 45분이 걸렸다. 시속 8km로 달린 셈이었다. 朴대통령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 가장 가까운 친구요, 가장 귀한 손님 한 분을 맞이 했다』면서 『우리는 언제나 신세만 지는 국민이 아니라 남의 恩惠(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남에게 신세진 것을 갚을 줄 아는 信義 (신의)와 책임을 가진 민족임을 자각하는 바』라고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여러분의 업적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과 월남에 제 공하고 있는 용감하고 관대한 도움에 謝意(사의)를 표하고자 왔다』면서 한 국의 발전과 마닐라 회담의 성과를 찬양한 뒤 『한국은 朴正熙 대통령의 영 도하에 태평양 지역 사회에서 명예롭고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본 인의 나라는 이를 열렬히 환영하고 지지하는 바』라고 말했다. 환영대회가 끝나자 존슨 대통령은 朴대통령에게 고백하듯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오. 사실 나는 한국민들이 이토록 뜨겁게 날 사랑할 줄 몰랐소. 만일 이런 경험도 없이 은퇴했더라면 난 무척 초라하고 슬펐을 겁니다』
朴대통령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수줍은 듯 웃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