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파티
1966년 10월31일 오후 5시 40분, 시청앞 平和臺에서 시민환영대회에 참석한 존슨 대통령 부부는 중앙청에서 헬기로 갈아탄 뒤 숙소인 워커힐 에머랄드 빌라에 도착했다. 존슨 대통령 부부는 이날 저녁 8시25분 헬기편으로 청와 대로 다시 와 朴正熙 대통령 내외를 예방했다.
朴대통령은 陸英修 여사 및 槿惠양(당시 성심여중 3학년)과 함께 청와대 현 관에서 귀빈을 맞았다. 존슨 대통령은 槿惠양을 소개받고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양국 원수는 朴대통령 서재에서 환담을 나누다가 중앙청에서 열 리는 朴대통령 초청 만찬회에 참석했다.
만찬장에서 존슨 대통령은 張基榮 부총리에게 『오늘 나를 환영해 준 서울 거리의 군중들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張부총리가 『320만1031명입니다 』라고 답하자 존슨은 『내가 세어보니 320만2031명 같더라』며 파안대소했다. 존슨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수행한 미국 기자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反美데모나 양키 고 홈 같은 구호가 항상 있었는데 한국은 예외적인 나라여서 이상하다』고까지 했다.
존슨 대통령은 만찬장에서 부인 버드 여사와 춤을 추기도 했다. 만찬이 무 르익어 朴대통령과 나란히 칵테일 잔을 들고 있을 때였다. 李東元 외무장관 이 옆에 서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朴대통령에게 李장관을 추켜 올렸다.
『朴대통령 각하, 당신 옆에 있는 李장관은 큰 일꾼입니다. 한일회담 성사 시켰지요, ASPAC도 창설했지요, 내 밑에 李장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미국 은 달라졌을 겁니다』
朴대통령은 빙그레 웃더니 『존슨 대통령이 정말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이 李장관은 낮의 외교도 잘하지만 밤의 외교에 더 익숙합니다』라고 농담을 했다. 존슨의 눈이 무슨 뜻이냐는 듯 크게 떠졌다. 朴대통령은 키가 큰 존슨에게 귓속말로 『나는 마누라에게 꽉 잡혀 있는데 李장관은 밤만 되면 무법자지 요』라고 말했다.
허리를 숙여 朴대통령으로부터 말을 들은 존슨 대통령이 李장관을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李장관이 한 마디 했다.
『존슨 각하, 사실 제가 가끔 대접차 기생집을 더러 가는데 그걸 朴대통령 께서 질투하시는 겁니다』
존슨이 『거, 기생들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들었는데…』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朴대통령이 『李장관, 거 기생파티 한 번 열어드리지』라고 했다.
『존슨 각하, 그럼 기생집에 한 번 갈까요?』
존슨은 李장관의 말에 부인 버드 여사가 저 쪽에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 고 『李장관, 두 말 하면 잔소리요』라고 했다.
李장관은 즉시 李範奭 의전국장(뒤에 외무장관)을 불러 다음날 저녁 워커힐 별채에서 기생파티를 준비하도록 일렀다. 별로 내세울 것이 없던 한국으로 서는 외국 귀빈을 접대하기 위한 「美人외교」가 있었다.
한국은 UN에 옵서버 형식으로 참석할 수 있었고 북한은 아예 자격이 없던 시절이었다. 옵서버 자격은 매년 UN 회원국들의 과반수 찬성을 받아야만 유 지되는 신분이었다. 한국 정부는 UN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프 리카나 제3세계 고관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美人외교라는 독특한 접대를 받지 못하면 UN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현상이 종종 있었다. 이때문에 「기 생파티」는 외무부 의전국장이 담당하는 업무가 되고 있었다. 1960년대의 한국 사회는 미인들이 가질 직업이 거의 없어 유명한 요정마다 뛰어난 미인 들이 요정 마담으로부터 각별한 훈련을 받아 「외교 요원」으로 양성되곤 했다. 손님을 접대하되 본인은 취하지 않아야 한다든가 유행가를 아름답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든가 한복 아래 흰 양말을 신되 바닥이 조금만 더러워 지면 즉시 갈아 신어야 한다는 등 나름의 예법을 지키게 해 가난했지만 풍 류가 있었다.
李範奭 의전국장은 서울 장안에 5大 요정의 간판스타들을 자주 동원했다. 생전에 李範奭 의전국장은 측근들에게 『그 무렵 기생들은 나름대로 애국심 이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다음날 워커힐에서 만찬이 끝난 뒤 존슨 대통령은 기생파티가 기다려져 안 절부절못했다고 한다. 李東元 장관은 존슨 부부를 방안까지 모셨다. 李장관 은 존슨에게 『오늘 밤 월남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 는데요』 라고 하자 존슨은 『아, 나도 얘기하고 싶소. 같이 조용한 데로 나갑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그 순간 버드 여사가 불쑥 『나갈 필요 없잖아요. 여기서 말씀 나누세요』라며 옆방문을 소리나게 닫고 사라 졌다. 순간 존슨의 얼굴엔 실망의 빛이 감돌았다. 李장관과 존슨은 응접실 에서 한동안 앉아 있었다. 李장관이 말을 꺼냈다.
『모처럼 한국에 오셔서 기생파티를 하지 않고 가시면 섭섭해 하실까 봐 준 비했는데 의미가 없게 되어 버렸군요』
『나도 기대를 많이 했소. 그런데 마누라 때문에 이 모양이오. 하지만 고마 움만은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李장관, 朴대통령에게도 고맙다고 전해 주시오』李東元 당시 외무장관의 회고.
『비밀리에 준비한 파티에 관한 정보를 버드 여사가 입수한 것 같았습니다 . 이날 워커힐 만찬장에서 버드 여사는 존슨의 곁을 계속 붙어 다니곤 했거 든요. 그래서 숙소까지 동행했지만 결국 갈 수 없었지요. 존슨 대통령이 돌 아간 뒤 그가 기생파티에도 참석했다는 소문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돌 아다녔습니다. 韓美 最大의 밀월시대에 있었던 웃지 못할 촌극이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