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동산
1966년 11월1일 오전 9시, 李東元 외무장관은 訪韓 이틀째를 맞은 존슨 대 통령 부부를 모시기 위해 워커힐 에메랄드 빌라를 찾았다. 30분쯤 시간이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李장관과 아침산책을 함께 했다. 李東元 당시 외무 부 장관은 존슨이 산 중턱에 올라 갈대밭 사이로 모래가 반짝거리는 한강을 내려다 보며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李장관, 저길 보시오. 저 갈대밭… 내 고향 텍사스를 보는 듯하구려. 정 말 서울은 살기 좋은 곳이오. 사실 워싱턴은 공포의 밤을 지내야 하오. 그 러나 서울은 너무 평화스럽고 질서 있소. 난 진정 사람이 살 만한 곳인 이 곳 서울, 특히 저 강너머 갈대밭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오』 존슨 대통령 부부는 오전 10시에 헬기 편으로 청와대에 도착했다. 兩國 頂上 부부가 나란히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陸英修 여사가 버드 여사를 안내하 며 경복궁에서 열리는 國展을 관람하고 梨花여자대학교를 방문하는 동안 朴正熙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예정 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끝난 이날 회담에서 존슨은 마닐라 정상회담에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무례함을 거론하면서 한국 정부를 추켜 세웠다. 존슨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정치적 안정에 만족을 표시했으며 한국 측은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국방현황 및 軍援상황을 설명, 미국의 재정 지원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회담에는 兩國 頂上 외에 한국측에서 丁一權 국무총리, 張基榮 경제부총리 , 李東元 외무부 장관, 金聖恩 국방부 장관, 金炯旭 중앙정보부장 및 李厚洛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했고, 미국측에서는 러스크 국무장관, 번디 극동 담당 국무차관보, 로스토우 대통령 특별보좌관, 브라운 駐韓美대사 등이 참 석했다.
회담이 끝난 뒤 兩國 대통령은 서울역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40분 늦게 도 착한 존슨 대통령은 12시3분 朴대통령과 金聖恩 국방부 장관의 안내를 받으 며 인천 방면 개찰구를 통해 미리 마련된 두 칸짜리 특별 기동차에 올랐다. 열차 안에서 梁鐸植(양택식) 철도청장은 존슨 대통령에게 終身(종신) 승차 권과 철도 기념메달을 전달했다.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철도청은 이 화여대 4학년 유재숙孃 등 4명의 女승무원을 긴급 채용, 열차內에서 접대를 하게 했다. 두 頂上은 기차 안에서도 회담을 계속했다. 본스틸 유엔군 사 령관, 丁一權 국무총리 등도 함께 탄 특별 전망차는 서울역을 출발, 용산- 서빙고-청량리-의정부驛을 거쳐 12시 58분 주내역에 도착, 리무진으로 육군 제26사단 연병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朴대통령은 연병장으로 걸어가면서 1m93cm의 존슨 대통령을 의 식한 듯 빙그레 웃으며 徐鐘喆(서종철) 1군 사령관을 존슨 대통령 옆으로 끌어 세우곤 했다. 존슨 대통령과 비슷한 키의 徐鐘喆 사령관은 軍帽 때문 에 존슨보다 더 커 보였다. 이를 의식한 존슨은 徐장군이 곁에 설 때마다 발돋움을 하며 좌중을 웃겼다.
兩國 頂上은 26사단 장병들의 태권도 격파 시범을 참관했다. 존슨 대통령은 장병들이 격파한 벽돌을 직접 만져 보며 놀라워했다. 이날 존슨 대통령은 월남에서 전사한 故 이인호 소령의 미망인 이경자 여사에게 銀星武功勳章 을 전달했다.
오후 2시, 청와대로 향하는 朴대통령과 헤어진 존슨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함께 헬기 편으로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1군단 제36공병단을 방문했 다. 유엔군 사령부 의장대 사열을 받은 존슨 대통령은 150여 명의 미군 장 병들과 午餐을 함께 나눈 뒤 헬기로 부대를 떠났다.
오후 3시45분 존슨 대통령이 탄 헬기는 京畿道 華城郡 泰安面 安寧(안녕)마 을의 安龍(안룡)고등공민학교 운동장에 착륙했다. 3만여 명의 郡民과 학생 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했다. 대기중이던 경찰 백차에 올라탄 존슨 대통령은 20여분 동안 마을을 순회하면서 열광하는 학생들의 손을 잡 아 보기도 했다. 주민들은 존슨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 뒤에 있던 無名동산을 「존슨 동산」이라 命名하고 동산 꼭대기에 존슨 기념비 를 세웠다. 이날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기념비를 손수 제막했 다. 지금도 존슨 동산과 기념비가 있는 이곳은 지난 1999년에 華城郡民의 이름으로 현충탑도 건립했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던 金典洙(김전수·44·現 화성군 태안읍 주사)씨는 존슨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가 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에 착륙하는 순간 학 교에서 나눠 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동료들과 언덕 위에 서서 구경했 던 추억을 더듬었다.
『아이스케키에 사용하던 30cm짜리 대나무 막대기에 풀칠해서 만든 국기를 들고 된소리로 「쫀슨 대통령」이라 부르며 뛰어다니곤 했습니다. 미국 대 통령의 방문은 우리에게 외롭지 않고 든든하다는 자신감 같은 걸 주었습니 다. 가난하고 못 살았지만 세계 제일가는 강대국 대통령이 직접 우리 마을 에 와서 손을 흔들어 주고 노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童話 같은 느낌도 듭니다. 우리 마을엔 지금도 「쫀슨 동산」이 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李得龍(이득룡) 농림부 농정국장으로부터 安寧마을 개발공사 에 대한 보고를 받던 중 군중 맨 앞자리 갓 쓰고 남색 도포차림으로 앉아 있던 崔시종(66)노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존슨은 노인의 이름을 묻 고 자신을 우리말로 『내 이름은 존슨입니다』라고 소개한 뒤 동네 주민들 이 선물해 준 신랑복장을 걸쳐 입고 崔노인과 사진촬영을 했다. 존슨은 崔 노인의 손을 잡고 헬리콥터까지 걸어간 뒤 崔노인을 번쩍 들어 헬기에 탑승 시키고는 자신과 함께 水原 상공을 두 차례 선회한 뒤 지상으로 내려왔다. 機上에서 존슨은 농사일로 거칠어진 崔노인의 손을 잡으며 『미국에 오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崔노인이 『한 번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초청 하겠습니다』라고 한 뒤 호주머니를 뒤져 볼펜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주 머니 칼을 선물했다.
이날 존슨은 동네 노인들에게 『나도 농촌 출신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심정 을 잘 압니다. 이 마을과 같이 아시아 전역이 발전하게 될 때 아시아에 평 화가 깃들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24인치 RCA社 텔레비전 한 대를 기 증한 뒤 숙소인 워커힐로 돌아왔다.
11월1일 오후 6시30분 존슨 대통령 부부는 워커힐 코스모스 홀에서 朴대통 령 부부를 초청, 만찬을 베풀었다. 당시 民主黨 의원이던 金大中 現 대통령 도 만찬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金大中 의원은 이 날 만찬 도중 발생한 停電(정전)사건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리셉션이 시작되었을 때 갑자기 전기가 꺼졌다. 우연한 사고였지만 약 1분 동안에 걸쳐 어둠이 계속되는 동안 이것은 혹시 암살음모에 따른 것 이 아닌가 생각하고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기나긴 1분이 지나 홀이 밝아졌 을 때 존슨 대통령은 보이지 않고 그와 함께 있었던 朴대통령만이 그 자리 에 서 있었다.
순간 우리는 깜짝 놀라면서 존슨 대통령의 신변에 어떤 이변이 생긴 것이라 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미국 경호원들이 미리 준비한 장치 즉, 벽에 回轉門(회전문)을 만들어 두고 있었는데, 전기가 꺼지자 마자 경호원들은 존슨 대통령을 위로 덮치면서 그를 재빨리 이끌어 회전문 뒤쪽으로 숨겨버 렸던 것이다. 우리는 존슨 대통령이 무사했다는 것을 알고 한숨 돌렸지만 미국의 우수한 「경호술」에 감탄했던 것이다>(金大中 著 「행동하는 양심 으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