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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求瑛의 염려
 鄭求瑛의 염려
 
 1966년 11월2일, 訪韓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은 존슨 대통령 부부는 국립묘지 를 찾아 獻花(헌화)한 뒤 오전 9시10분에 국회에 도착했다. 존슨 대통령 부 부는 議長室에서 李孝祥(이효상) 국회의장과 金鍾泌 공화당의장, 朴順天 민 중당 대표 및 金泳三 민중당 총무 등 의회 지도자들과 만나 선물을 교환하 고 10여분 동안 환담했다.
 李국회의장이 개회선언을 하자 존슨 대통령 부부가 裵泳鎬(배영호) 국회사 무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존슨은 의원들의 박 수를 받으며 연단에 올라 30여 분간 연설했다. 존슨 대통령은 연설에서 『 공산주의자들은 무력수단에 의한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깨닫게 될 때만 평화 를 선택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싸움을 걸어 온 자가 싸움을 그만 둘 때까지 우리는 강력해야 한다』며 韓美간 우호협력을 강조하면서 『유능한 한국 정부는 활발한 야당과 민주적인 대화를 해 나가면서 국가를 근대화하고 있 으며 새로운 아시아 공동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서 指導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국을 찬양했다.
 
 이어서 청와대를 방문한 존슨 대통령 부부는 離韓인사를 겸해 예정시간인 15분을 넘기고 약 30분 동안 정상회담을 정리는 시간을 가졌다. 兩國 頂上 은 이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2개 項으로 구 성된 공동성명에는 「한국의 경제, 사회 및 과학분야 발전을 위해 미국이 계속 지원할 것과 駐韓미군을 현재線 이하로 줄이지 않으며 한국에 대한 武力 공격이 있을 경우 미국은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원조를 하겠다」는 미국 의 결의를 천명했다.
 
 오전 10시50분, 朴正熙 대통령은 존슨 대통령 부부와 함께 헬기에 동승, 김 포공항에 도착하여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3軍 의장대를 사열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歡送辭(환송사)를 통해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 국민 들이 각하를 얼마나 존경하고 또 얼마나 친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이해 할 줄 믿는다』면서 『이번 訪韓이야말로 각하가 한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 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韓美양국간의 전통적인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함은 물론 태평양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서로 「태평양 盟友( 맹우)」로서 사명을 다시금 다짐한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離韓辭에서 『한국인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하며 공산주의와 對面해서 자유수호를 위해 싸우고 있는 한국민을 위해 미국 정부와 미국인 은 영원히 어깨를 같이할 것이며 국민과 국토와 생활방식을 보존하기 위한 한국인의 노력에 미국은 언제나 돕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1966년 11월2일 오전 11시30분, 존슨 대통령 일행은 한국을 마지막으로 동 남아 7개국 순방이란 긴 여정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朴正熙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과의 蜜月관계는 미국의 강력한 對韓 支援을 보장해 주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한국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일본 으로부터의 청구권에 의한 무상자금 및 경제차관, 월남파병에 의한 연간 1 억 달러 내지 1억 5000만 달러에 이르는 본국 송금, 베트남 軍需(군수)호황 등으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미 1966년 2월에 설립된 한국과학기술 연구소(KIST)도 존슨의 지원에 이 루어진 것이었고, 비료공장, 원자력 발전소, 전주 공단, 구로수출공단, 경 부고속도로 등 대한민국의 경제기반은 대부분 존슨 대통령 재임시 시작했거 나 완성한 것들이다.
 
 1966년은 무르익은 가을 들판의 곡식처럼 풍요롭게 저물어갔다.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에 대한민국은 13.4%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 을 기록했다. 임기를 6개월 가량 남긴 朴대통령에게 再選은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朴대통령의 고민은 그 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초대 공화당 총재를 지낸 鄭求瑛(정구영·당시 당총재 상의역) 의원은 朴正熙의 속을 내밀하게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鄭求瑛의 생전 회 고록 「실패한 도전」에 실린 그의 회고.
 
 
 『1966년 가을부터 朴대통령의 再출마가 논의되었습니다. 朴대통령은 몇 가 지 점에서 실책이 없지는 않았지만 경제 계획으로 2차 산업을 일으켰다는 점은 그분의 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2期 대통령에 출마하면 서 朴대통령이 1971년 선거를 미리 전망하고 이 나라 정치 판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때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걸 염려했습니다.
 
 물론 항간에 논의되던 부정부패가 결점이기는 하지만 지난 4년간의 경제개 발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점, 대통령이 國政에 열성적임을 국민들이 인정 하고 있다는 점에서 朴대통령이 2期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1971년의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확고한 결의가 없이는 2期 통치 기간중 정치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란 점을 걱정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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