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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選 개헌의 예감
 3選 개헌의 예감
 
 1966년 11월28일 오후 4시, 73세의 鄭求瑛 翁은 청와대에 들어가 朴대통령 과 세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鄭求瑛 의원은 먼저 대한민국의 지 상과제인 통일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전쟁에 의한 조국 통일은 불가능하다. 공화당 창당 선언에서 밝힌 대로 조국을 근대화해서 통일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근대화를 통해 국가를 부유 하게 하고 민주주의를 통해 국민이 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북한 을 이기는 길이다.
 그러므로 朴대통령은 재출마해 당선되면 지금처럼 조국 근대화를 추진하는 一方,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게 하여 공산당 치하보다 자유가 있 다는 强點(강점)을 넓혀 나가야 한다. 국민의 그같은 확고한 신념이 있으면 선거에 의해서든, 혹은 다른 형태의 그 어떤 방법의 통일이건 우리가 공산 당에 패배할 우려가 없다」
 
 朴대통령은 鄭의원의 견해에 뜻을 같이 했다고 한다. 鄭求瑛은 「통일에 대 비하는 정부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공화당 의원들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지적은 이듬해인 1967년 봄 통일 백서가 국회에서 통과되고 이어 정부기구로 국토 통일원이 탄생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통일 논의를 매듭지은 鄭求瑛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런 大전제하에서 2期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셔야 하며 당선되어야 합니 다. 그러나 2期 대통령에 당선돼서 4년 임기 안에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불 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2차 임기를 마친다면 그 이후 누구한테 공화 당의 지도권을 넘겨 줄 것이냐 하는 점을 생각하시고 출마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1971년의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첫째 조건이 평화적 정권 교체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또 다시 5·16 이전 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혼란이 오게 됩니다.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으뜸의 지 표로 해서 나가야 합니다』
 
 鄭求瑛 의원은 朴대통령에게 헌법상 마지막 임기가 되는 2期 재임기간 중 주변에서 제기할 3選 개헌론을 경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각하께서는 이번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되리라 봅니다. 당선되는데 2期 집 권 1년이나 2년 후면 3選개헌을 하라고 진언하는 사람이 생길 겁니다. 즉 「각하가 1차 임기에서 경제개발의 기초를 닦았고 2차 임기 중에는 2차 계 획을 수립해서 진행중이고 곧바로 3차 계획을 세워 튼튼한 개발의 궤도를 깔아야 한다.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각하 이외의 적임자가 없다. 둘째, 金日成이 남침을 떠들어 대고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 각하가 절대로 요청된 다. 경제 건설과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정치 안정이 긴요하다. 정치 안정은 각하의 영도력 없이는 안된다. 조국을 방위하고 조국을 건설하는 일에 각 하의 영도력이 필요하니 3期 대통령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겨날 겁니다.
 
 현행 헌법에는 대통령 3選을 금지하는 明文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최고회 의 의장이던 시대에 국민 투표로 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각하께서 이 헌법 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각하의 그늘에서 권력을 행사한 사 람들, 큰 치부를 한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개헌을 요청해 올 것 입니다. 그러니 각하께서는 2기 대통령에 출마하실 때 어떤 경우에라도 3選 개헌을 안하겠다, 진언하는 사람이 있어도 뿌리치겠다는 결의를 굳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가 위태로워지고 불행해집니다』朴대통령은 진지하게 들었다는 것이다. 鄭의원은 이날 朴대통령으로부터 즉 답을 듣기를 거부하고 다음 기회에 답변을 듣기로 했다. 좀 더 신중한 고려 를 기대해서였다.
 
 鄭求瑛과 朴正熙가 다시 만난 것은 1967년 2월8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朴正熙 대통령이 제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지명되고 6일째 되던 날이었다. 명목은 국회에서 통일 백서를 통과시키도록 朴대통령이 당에 지시한 것에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통일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朴대통령이 불쑥 『선생님, 작년 겨울에 저한테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화제를 돌렸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1971년 선거 말입니다. 후임자를 물색하라는 그 말씀이지요』
 
 『아! 그 말입니까. 저는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鄭求瑛은 朴대통령으로부터 「3選 개헌 문제가 나온다 해도 거부할 결심을 굳히고 있습니다」란 답변을 기대했다. 그런데 朴正熙는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저는 1971년 선거에는 안 나가기로 했습니다』鄭求瑛은 회고록을 통해 朴대통령의 이 말은 「기대 밖이었다」며 허탈했던 느낌을 기록해 두고 있다.
 
 朴正熙 대통령이 이 무렵부터 3選 개헌 문제로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 다. 그럼에도 당 총재 상의역인 鄭求瑛은 왜 3選 개헌을 염려했을까. 당을 중심으로 구축된 권력관계의 본질을 짚어보던 鄭求瑛은 朴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분위기에서 이미 그 조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1965년 6·3사태에 정부가 계엄령으로 대처하면서 정당은 힘을 잃었다. 金鍾泌이 없는 사이 反金 운동에 앞장섰던 金成坤을 포함한 非주류들이 對野 협상을 주도하면서 세력권을 넓혀갔다. 이때 李厚洛 金炯旭 朴鐘圭 등 대통 령의 막료들은 이들 非주류의 躍進(약진)을 지원하고 있었다. 鄭求瑛은 이 막료들의 세력 팽창이 장기집권을 예고하는 前奏曲(전주곡)이라 판단하고 朴대통령에게 경고를 해 준 셈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 았던 것이었다.
 
 鄭求瑛의 염려는 1967년 大選 유세과정에서 행정막료들의 金鍾泌 견제로 확 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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