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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冠中의 메모
 朱冠中의 메모
 
 鄭求瑛은 그의 회고록 「실패한 도전」에서 1966년 말부터 朴대통령의 「1 人 至上主義(지상주의)」가 점점 대통령 개인과 친목 관계에까지 파급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화당은 무력해졌고, 복귀한 金鍾泌은 무기력해졌습니다. 實權(실권)이 없었지요. 소위 공화당 간부라는 사람들이 李厚洛과 金炯旭 등 대통령 측 근들의 그늘에서 金鍾泌을 견제합디다. 행정 권력이 집권 여당을 지배하는 겁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정당 정치라야 하는데 공화당이 집권의 주체도 아니고 중심도 아니었습니다.
 
 「3選 개헌은 안하겠습니다」라는 답변 대신 「1971년 선거에는 안 나가겠 습니다」라고 한 것은 그 얼마 전부터 이런 「1人 至上主義」 풍토가 자라 왔기 때문입니다』
 
 鄭求瑛이 말하는 朴正熙의 「1人 至上主義」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만한 근 거로는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敎文 社會 담당)으로 근무했던 朱冠中(주관중·70 前 경희대학교 교수)의 메모가 도움 이 될 것이다.
 
 朱冠中은 1953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58년 미국 南일리노이 대학원 을 거쳐 연세대학교 조교수로 있던 중 選擧를 개량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방 법을 기술한 「選擧工學」을 펴내 최고회의 비서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朱씨는 1963년 초 최고회의 비서실로부터 근무를 제의받고 들어가 1969년 청와대 비서실의 대폭 개편이 있을 때까지 근무한 뒤 민족발전 연구원장(1 970∼1976년)을 거쳐 경희대학교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朱冠中씨에 따르면 朴正熙 대통령은 가끔씩 비서관들이 근무하는 방으로 들 어와서는 흉금에 쌓여 있던 말들을 털어 놓곤 했다고 한다. 이때마다 朱冠中 비서관은 朴대통령의 思想을 연구할 목적으로 언론과 대중 앞에서 직설 적으로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솔직한 말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최근 기자에게 보여 준 메모는 간략하게 12개 항목으로 정리된 것이다. 이 메모는 朴대통령의 備忘錄이 공개되지 않은 지금 朴대통령의 內面을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朱씨의 메모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朴대통령 이 털어 놓은 말 중에서 골라 담은 것이라 인용 부호를 달았다. 각 項별 해 석은 朱冠中씨의 설명임을 밝힌다).
 
 < 1. 『모든 정치행동은 억압해야 한다. 정치 행동은 해결보다 혼란만 초래한다』 6·3 사태 후 계엄령을 선포한 朴대통령이 어느 날 비서실로 들어와 학생시 위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한 뒤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2. 『교수들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이 나라에 도무지 도움 이 안된다』
 
 3. 『국민의 문제는 내가 다 알고 있다. 해결책도 내가 다 알고 있다』 야당의 정책비판이 강해지면 朴대통령은 이런 투의 말을 툭 툭 내뱉듯 우리 비서관들에게 하곤 했다.
 
 4. 『言論은 나를 지도하기보다 나에게 협조해야 한다. 言論도 여론도 부분 적이다. 전체적인 것은 내가 다 안다』
 
 언론에 대한 시각을 드러낸 말이다. 朴대통령은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지엽 적인 부분만을 문제삼는 언론을 답답해 했다.
 
 5. 『국회도 마찬가지다. 지역발전문제는 知事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 들은 晝夜로 일하고 있다』
 
 사실, 道知事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지시를 최우선으 로 알고 시행했고, 이때문에 인접 道의 업무와 마찰도 종 종 빚었다. 비서 실에서 근무하며 지켜보면 이런 부작용도 없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道知事들 을 믿는 만큼 道知事들은 필사적으로 일하는 분위기였다. 만약 게으르다는 보고가 올라가면 그 날로 경질되어 버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6. 『교수들은 나에게 방향을 가르치기보다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朴대통령은 지식인들을 나름대로 활용하는 기준이 있었다. 자신은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공하는 지식인 들을 가까이 하려 했다. 경제인들에게도 비슷한 시각으로 대했다. 鄭周永 현대그룹 회장은 이런 측면에서 朴대통령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사람이었다. 7. 『근로자들은 경제수준이 오를 때까지 참아라』
 
 누군가가 대통령에게 勞組문제를 거론하자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이 말을 전해들었을 때의 語感은 근로자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힘들겠 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좋아질 것이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8. 『경제만 발전한다면 통일문제·부패문제·교포문제·근로자(노동)문제 가 모두 해결된다. 민주주의도 경제개발을 先行할 수 없다』朴대통령이 경제개발과 관련해 다른 가치보다 先行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메모한 것으로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9. 『군인들은 다시는 정치 행동을 하지 말고 국방에 힘써야 한다. 전쟁이 없을 때는 국토건설에 협조해야 한다』
 
 1960년대 후반 국군의 날 행사를 마치고 청와대로 들어와 閑談을 나누던 중 에 했던 말.
 
 10. 『예비군은 토착군대다. 가장 이상적이다』 예비군을 창설한 뒤. 朴대통령은 예비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지대했다. 자신이 창군한 군대, 그래서 마치 자신의 군대라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훗날 새마을 운동에 대한 애정과 흡사했다. 11. 『우리 文化는 별 자랑할 게 없다. 개발이 중요하다』
 
 국가 지도자로서 공개적으로는 절대 해서 안 될 말이지만 우리 비서관들에 게는 터 놓고 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朴대통령은 『웅장한 맛도 없고 보존도 잘 안되는 작은 목조 건물로 세계 문화유산과 비교하자니 …』하면 서 이런 말을 했는데, 나는 대통령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12. 『法대로 하면 獨裁가 아니다. 改憲도, 무엇도 法대로 하면 民主主義다 . 思想, 理念보다 法이 중요하다. 선거도 법에 있으니까 해 보는 것이다』 1967년 선거에 즈음해서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특히 『선거도 법에 있 으니까 해보는 것이다』는 말은 안해도 자신만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나온 말로 들렸다. 3選 개헌도 이런 생각에서 자신 있게 추진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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