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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年辭
 新年辭
 
 1967년 1월1일 아침 朴正熙 대통령은 붓글씨로 「民族中興」이란 신년휘호 를 쓰고 新年辭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新年辭에는 향후 朴正熙 時代를 상징하는 「民族中興, 새역사의 創造, 祖國의 近代化, 國土統一」 뿐 아니 라 反共 統一의 목표가 「노예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를 구출하 기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민족적 자신감이 배어 있는 1967년 新年辭에 담긴 文句들은 이듬해인 1968년 12월5일 발표하는 「국민교육헌장」 에도 반영되는 등 정책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어 朴正熙 대통령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思想을 압축해서 보는 듯하다. 新年辭는 다음과 같다. <나는 먼저 새해의 모든 영광과 萬福이 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고루 깃들기 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지난 1년은 中興하는 민족으로서, 발전하는 국가로서 우리가 이룩하려 했던 많은 일들이 거의 뜻대로 이루어진 「成功의 해」였습니다. 우리는 혼돈과 위기가 감도는 아시아에서 우뚝 솟은 평화의 보루로서, 자유의 旗手로서, 번영의 표본으로서 태평양 공동사회 건설의 先導的 使命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편 근면, 검소, 저축을 행동강령으로 온 國力을 총동원했던 제1차 경제개 발 5개년 계획은 의존과 빈곤으로 얼룩졌던 이 나라에 자립과 번영의 터전 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난관을 끝내 극복하고 제한된 자원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으며, 서구의 전문가들이 불가 능하다고 한 그러한 환경 속에서 바로 그 서구의 선진 공업과 기술을 습득 하여 그들과 겨루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출발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수난과 빈곤 의 역사는 끝나고 번영과 영광의 새로운 역사가 이미 우리 앞에 전개되었습니다. 祖國의 近代化, 그것은 國土統一 이라는 민족적 지상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기필코 이룩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며 우리의 후 손에 물려줄 값진 유산입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노예생활을 강요당하 고 있는 북한 동포를 구출해야 겠다는 우리의 염원이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 그리고 우리의 자녀에게 살기 좋은 조국을 물려주어야 겠다는 결의가 새 로우면 새로울수록 조국 근대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더욱 더 크고 줄기차 야 하겠습니다>
 
 朴대통령의 자신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4개월 뒤 大選과 總選이 연이 어 예정되어 있는 선거의 해를 맞은 정부는 1월5일 오전 9시30분 중앙청 중 앙홀에서 始務式(시무식)을 갖고 1967년을 「前進의 해」라 명명했다. 이날 오후 朴대통령은 경제기획원을 초도 순시하고 『금년에도 안정의 바탕 위에서 成長을 지향하고 量的 발전과 아울러 質的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고 지시했다. 朴대통령은 4시간 이상 各局別로 경제동향 보고를 받아 張基榮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기획원의 各 局長들이 시무 첫날부터 진땀을 뺐 다. 財政 안정계획부터 電源개발에 이르기까지 경제의 全분야에 대해 보고 를 듣는 동안 朴대통령은 특히 物價정책에 관심을 보이면서 품목별 도매물 가와 소비자 물가의 추세를 따지고는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따 지도록』 강조해서 당부했다. 엽차 한 잔만을 마시고 자리에서 꼼짝앉고 보 고를 받던 朴대통령은 『경제 문제를 경제기획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모 든 장관이 입체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하고 그 예로, 『공보부 장관은 정 책 실천의 잘된 점과 못된 점을 무비 카메라로 잡아 국민들에게 알릴 뿐 아 니라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확인, 평가하라』고 지시했다.
 
 1월8일 일요일을 맞은 朴대통령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 고 陸여사와 아들 志晩군을 데리고 한양 컨트리 클럽을 찾았다. 吉在號 사 무총장, 金成坤 재정위원장 등 공화당 간부와 金炯旭 정보부장 및 대구사범 동창생인 黃龍珠 前 문화방송 사장도 가족을 동반하고 나와 朴대통령과 오 후 늦게까지 9홀을 돌았다.
 
 이날 처음 골프채를 쥐어 본 陸英修 여사는 몇 차례의 스윙 끝에 날아가는 공을 쳐다보며 『맞으면 힘이 안 들고, 안 맞으면 힘만 빠지는 운동이군요 』라고 해 좌중을 웃겼다.
 
 朴대통령은 휴가가 아니면 가족과 나들이할 여유가 없었던 혁명 초기의 긴 장된 분위기와 달리 다소 삶의 여유를 되찾은 新年을 보낼 수 있었다. 선거 를 앞둔 대통령으로서 자신만만함이 배어 있었던 이 무렵, 야당인 新韓黨과 民衆黨은 선거 대책에 부심하고 있었다.
 
 연초부터 야당 대통령후보 단일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해 온 新韓黨과 民衆黨은 1월24일 新韓黨의 尹潽善(윤보선) 총재가 兪鎭午(유진오) 民衆黨 대통령 후보의 필동 자택을 방문함으로써 후보 단일화와 야당 통합의 가능 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25일 兪鎭午 후보가 尹潽善 총재의 집을 방문, 회담 끝에 民衆-新韓 兩黨의 통합을 결의했다. 두 사람은 발표문을 통해 『朴정권의 군사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해 野黨대통령 후보단일화가 오늘 국민 대다수의 절대적 요청이므로 우리는 政派의 異同과 피차의 得失(득실)을 초월해서 야당 단일화를 이룩하여 救國大業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야당은 1주일 뒤인 2월2일 黨名을 新民黨으로 바꾸고 尹潽善씨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이날(1월25일) 朴正熙 대통령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으로 馬山에서 추진되어 온 한일합섬섬유공업회사의 준공식에 참석한 뒤 오후에는 부산시 를 초도순시하고 금년도 시정계획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朴대통령은
 
 『선거가 임박했다고 해서 판잣집이 늘어나는 것을 묵과하면 구청장과 경찰 서장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고 『종합적인 주택계획을 세워 연차적 으로 현존하는 판잣집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1963년 10월 제5대 대통령 선거 기간중에도 있었다. 당 시 선거 운동에 막 돌입한 朴正熙 후보에게 중앙정보부 간부가 차트를 넘겨 가며 보고를 하던 중 『서민들의 표를 모으기 위해 판잣집 철거를 중지하고 교통규칙도 완화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朴후보는 버럭 화를 내면서 이렇 게 말하더란 것이다.
 
 
 『뭐? 우리가 그 따위로 하려고 革命했어? 더 철저히 철거하고, 교통규칙도 더 철저히 지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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