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장의 令夫人
1967년 4월3일 朴正熙 대통령은 제7代 대통 령 선거 입후보자로 등록했다. 후보 등록 마감일 오후 최종 등록된 후보는 모두 7명 으로 正義黨(1번·李世鎭 73), 韓獨黨(2번 ·錢鎭漢 65), 新民黨(3번·尹潽善 69), 大衆黨(4번·徐珉濠 62), 民衆黨(5번·金俊淵 72), 共和黨(6번·朴正熙 50), 統韓黨(7번
·吳在泳 48) 순이었다. 기호 6번의 朴正熙 후보와 기호 3번의 新民黨 尹潽善 후보와 의 격돌이 예상되었다.
선거운동은 4월1일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 다. 공화당에서는 제1유세반과 제2유세반을 편성했다. 제1유세반은 이른바 元老班(원 로반)으로 金鍾泌 공화당 의장을 중심으로 白南檍, 鄭求瑛, 李孝祥 등 黨內 최고간부 들로 구성되어 전국 中小도시를 돌며 유세 연설을 했다.
朴正熙 후보를 중심으로 李厚洛 청와대 비 서실장, 金成坤 공화당 재정위원장, 朴鐘圭 경호실장 등으로 구성된 제2유세반은 4월 중순부터 전국 주요도시를 돌며 유세를 시 작했다.
1967년 제7대 대통령 선거는 朴正熙 후보에 게 큰 부담이 되지 않았던 선거였다. 무엇 보다 지난 4년간의 괄목할 만한 업적이 朴正熙 후보에게 든든한 선거 자산이 되고 있 었다. 집권당의 選擧 資産이 집권 기간내의 治績 홍보라면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야당 의 선거 자산은 비판과 선전 선동이 될 수 밖에 없다. 당시 대통령 선거전에 한 발 물 러나 업무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李錫濟 총 무처 장관은 朴·尹의 대결을 이렇게 회고 했다.
『朴대통령의 선거운동 방식은 요즘처럼 유 권자를 의식하고 얼굴 화장까지 한 채 연기 하듯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생리 적으로 그런 데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당시 정부나 朴대통령은 선거에서 당연히 이길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월남 특수와 對美관계가 좋아지면서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이 실리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누구나 朴正熙 후보가 이기는 선거라고 보 았던 겁니다.
그런데 야당에서는 4년 전 尹潽善 후보가 朴正熙 후보에게 15만표 차이로 졌다는 것 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지요. 그때는 자신이 군사정권의 행정·관권선거로 진 것이므로 정신적 대통령이며 재출마하면 이길 수 있 다고 본 겁니다.
그때만 해도 尹潽善씨는 여름에도 장갑 끼 고 사람들과 악수하는 「貴族」이었습니다 . 그분의 감각은 자유당과 민주당의 양반 시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 난 4년 동안 한국은 朴正熙 대통령의 서민 적 스타일로 전환된 시대였습니다. 尹潽善 후보만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자유당과 민 주당 시절의 감각으로 선거에 임했던 겁니 다. 당연히 尹후보측은 앞뒤 가리지 않고 정부에 비판만 해댔지요』
朴正熙 후보의 선거전략은 金鍾泌을 중심으 로 한 원로 유세반을 제1진으로 전선에 투 입시킨 뒤 전력을 탐색한 다음 공격하는 방 식을 취하고 있었다. 약 보름 동안 尹潽善 후보 진영은 朴正熙와 상대한 것이 아니라 金鍾泌과 상대한 셈이 되었다. 朴正熙의 공세적 유세는 4월17일 대전 공설 운동장에 서부터 시작된다.
이 무렵 朴正熙는 야당의 주장을 면밀히 분 석하고 하나하나 따져보는 방식을 취했다. 朴正熙 대통령의 연설문은 공식적인 경우 , 청와대 공보실에 근무하던 沈융택의 草案 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7년 4월15일 토요일, 대전 유세를 이틀 앞둔 朴正熙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혼자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뒤 여러 참모들의 의 견을 들었다. 한 참모가 서해안 개발 등 광 범위한 공약을 제시하자 朴후보는 『집권자 는 막연한 공약을 하면 안되잖소』라며 일 축해버렸다.
4월17일 월요일 오전, 朴正熙 대통령 후보 는 첫 유세지인 대전을 향해 청와대를 나섰 다. 현관까지 나와 배웅하던 陸英修여사는 평소처럼 『안녕히 다녀오셔요』란 인사가 아닌 『잘 하고 오셔요』란 인사를 했다. 陸英修 여사는 이날 오전 내내 신문을 넘기 거나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곤 하더니 부속 실에 근무하던 조카 洪晶子와 여비서 羅銀實양을 불러 車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부속 실 운전기사 具仁書는 급히 경호실에서 피 아트 승용차를 몰아 현관 앞에 대기시켰다 . 陸여사는 경호관도 대동하지 않은 채 서 울역으로 향했다.
평소 승용차를 오래 타면 멀미를 잘 하던 陸여사는 승용차로 장거리를 갈 엄두가 나 지 않자 서울역에서 기차로 갈아 탄 뒤 대 전 공설 운동장의 유세장으로 간 것이다. 洪晶子, 羅銀實 두 비서가 한복 차림의 陸英修 여사와 함께 도착한 대전 공설 운동장 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洪晶子의 회고.
『이모님은 어디로 갈 것인지도 말씀하지 않으신 채 우리를 끌다시피하며 가셨어요. 대전역에 내려서야 아, 아저씨 유세장에 오셨구나 하고 알았지요. 그런데 연단이 있 는 곳으로 가지 않고 관중들이 드나드는 정 문 쪽으로 가시더니 관중 속에 살포시 앉았 어요. 저희도 앉아야 했지요. 그동안 제 눈 엔 陸英修 여사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긴가 민가 하며 힐끗힐끗 쳐다보고 지나가 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모님은 모른 척 군중 속에 앉아 아저씨가 막 연설을 시작하는 장면을 보고 계신 거예요』 잠시 후, 곁에 앉았던 사람들이 조금씩 술 렁이기 시작했다.
『陸英修 여사 아니야?』
『정말인가?』
『令夫人이 여기에 왜 왔지?』 그러던 군중들의 음성이 이윽고 『와! 영부 인 오셨다』로 변하면서 연단으로 향해야 할 시선을 陸여사에게 집중하게 됐다. 조금 전 연설을 시작했던 朴正熙 후보는 군 중들이 한 곳으로 시선을 집중시키자 잠시 연설을 중단했다. 경호원들이 연단에서 뛰 어내려가 사태를 확인한 뒤 급히 영부인을 피신시키려 했다.
『사모님. 저쪽에 VIP 출구가 있으니 그리 로 피하십시오』
귀빈용 출입구는 연단 맞은편에 있었다. 경 호원들이 陸여사를 둘러싸려 하자 陸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걸어 나가기 시작했 다. 연설은 중단된 상태에서 군중들의 시선 은 陸여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陸英修 여사는 곧바로 걸어 나가 연단 옆으 로 올라가 단상 뒤의 빈 자리에 앉았다. 군 중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朴正熙 후보에게 돌아왔다. 이윽고 朴正熙 후보는 중단했던 연설을 계속했다.
이날 저녁 청와대로 돌아온 朴대통령 부부 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서 마주앉 게 되자 비로소 朴대통령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말했다.
『당신,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시켜야겠어』陸여사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도움이 될까 싶어 갔다가…제가 잘못했으 면 처분을 받아야지요,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