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舜臣의 현충사에서
1967년 4월26일 오전 金鍾泌 공화당 의장과 吉在號 사무총장은 청와대를 방문, 朴正熙 후보와 마지막 1주일간의 유세전략과 투-개 표 관계 대책을 협의했다. 오전에 청와대에 서 회의를 마친 朴후보는 오후에 열차편으 로 청주에 내려가 유세를 가진 뒤 특별 기 동차편으로 光州로 향했다. 朴후보는 車內 에서 嚴敏永 내무장관, 李厚洛 비서실장, 申範植 청와대 대변인 등과 함께 선거 주변 이야기로 환담을 나누었다. 화제가 野黨의 선거 운동방법에 이르자 朴正熙 후보는 『요즘 야당지도자들이 유세하 기 전에 車를 타고 퍼레이드를 하는 모양인 데, 이런 방법은 아직 우리 사회에 맞지 않 는 방법』이라며 『그 사람들이 만일 정권 이라도 잡으면 더 화려한 퍼레이드라도 벌 일 것이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이 자리에서 李厚洛 비서실장이 「頂上의 주변」이란 책이 곧 나올 것이라는 보고를 하자 朴후보는 『나와 관계되는 책은 어떤 것이라도 선거가 끝나기 전에는 시중에 내 놓지 말라』고 지시를 했다. 4월27일 오전, 비가 내리던 光州의 날씨가 개이기 시작했다. 오후 2시 광주 조선대학 교 운동장에서 연단에 올라 선 朴正熙 후보 는 尹潽善 후보측이 호남의 지역감정을 부 추기고 다닌다는 보고를 의식한 듯 속담과 비유를 많이 사용해 가며 야당의 주장을 반박해 갔다.
『요즘 민주주의가 사망했다고 하는데 「수 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고, 배가 불러 야 민주주의도 할 수 있는 겁니다』
『野黨 사람의 몸은 20세기 것이나 머리는 19세기 것입니다. 이 野黨人 머리의 근대 화가 우리나라 근대화의 捷徑(첩경)입니다』
『야당 유세에 官이 방해해서 청중이 안 모 인다는데 우리 국민은 官이 방해하면 샛길 로 해서라도 더 많이 모입니다』 약 10만 인파가 몰린 가운데 朴正熙 후보는 40여분간 연설한 뒤 내려왔다. 4월28일 오전, 朴正熙 대통령은 특별 열차 편으로 아산 현충사를 방문하고 忠武公 4 22회 탄신 기념 및 현충사 성역화 식전에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前略…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자립경제 건설과 근대화작업에 총력을 기울인 보람으 로, 오늘날 조국의 모습은 一新하여 4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안정과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었 고, 국민의 가슴 속에 中興의 의욕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이 새 역사 창조의 국민적 대열에서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잔존하고 있는 守舊(수 구)와 派爭(파쟁)이며, 猜忌(시기)와 謀略 (모략)이며, 獨善(독선)과 我執(아집)이며 , 短見과 無定見(무정견) 등 前근대적이며 非생산적인 요소입니다.
變轉(변전)하는 세계조류에 눈이 어두워, 명백히 국가이익으로 結實(결실)된 국민의 노력을 反국가적이며, 反민족적인 행위라 고 悲墳慷慨(비분강개)하는 사람들이 스스 로 국민의 지도자임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처한 내외정세의 展望 밑에, 현실에 대한 정확한 발판을 토대로 미래를 설계할 능력과 의욕이 없는 낡은 세력이 스스로 大悟覺醒(대오각성)하거나, 국민의 峻嚴(준 엄)한 심판으로 제거되지 않는 한, 우리의 역사는 다시 후퇴하게 될 것이며, 온 국민 이 피땀 흘려 쌓아올린 자립경제와 근대화 의 토대는 한 줌의 흙이 되고 말 것입니다 (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