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公明
선거 운동이 종반에 이르자 이번에는 중앙 정보부가 신민당에 전국구 후보 10번으로 입후보한 金載華(64·재일동포)씨를 구속하 는 일이 벌어졌다. 공천헌금 이면에 조총련 자금개입이 개입되었다는 이유였다. 신민 당의 경리장부도 압수했다가 선거자금 3천 만원만 예금동결에서 풀어주었다. 투표일을 이틀 앞둔 전국의 선거 분위기는 매수와 폭력과 폭로로 험악해졌다. 경북 영천의 한 면사무소 계장이 副면장으로부터 대리투표 지령을 받았다고 폭로하는가 하 면 부산에서는 이미 폐간된 주간신문에 모 정당 후보자의 인신공격 내용이 실려 수천 장이 돌아다니고 목포에서는 투표통지표와 고무신이 함께 배부되었다는 등 말썽이 꼬 리를 물었다.
목포에서는 신민당 유세장에 모였던 청중들 이 데모를 벌였고 대구에서는 공화당 후보 자 초상화 화형식이 벌이지는가 하면 천안 , 보령 등지에서는 신민당 선거운동용 차량 이 파괴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6월6일까지 전국적으로 1318명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입건되었고, 702명의 입후보자중 225명(약 3분의1)이 입건되었다.
언론은 「멍든 公明」이라고 보도했다. 6월 8일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국 곳곳에 서 매표, 폭행, 대리 및 공개투표로 시비가 일었다. 개표과정에서는 일부 지방에서 개 표 중단, 부정선거 규탄데모 등의 사태가 빚어졌다.
서울 동대문 갑, 을구, 서대문 갑구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불리하자 젊은 당원들이 개 표소에 난입, 기물을 부수고 야당 참관인들 을 폭행하기도 했다. 이밖에 전주, 안동, 순천 등지에서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야당 지지자들의 데모가 잇따랐다. 개표 결과 지역구 131석중 신민당 28석, 大衆黨 徐珉濠 후보가 1석을 차지한 데 반해 공화당은 102석을 차지했다. 이 결과에 대 해 공화당 재정위원장이던 金成坤은 회고록 에서 「공화당도 놀랐다」고 썼다. 신민당 은 서울 14개 지구중 13개 지구에서 압승했 고 부산에서도 5석을 얻은 반면, 농촌에서 는 공화당이 휩쓸다시피했다. 이런 양상은 5·3 大選에서 드러난 東西化 성향을 뒤엎 고 자유당 정권하 3代 총선인 54년 5·2선 거때와 마찬가지로 「都野, 農與」로 환원 됨을 의미했다.
6·8선거의 후유증은 개표 완료와 동시에 시작됐다. 연일 야당은 선거 무효를 외치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6월10 일 朴正熙 대통령은 申稙秀 검찰총장에게
『공명선거는 준법선거임을 강조한 바 있거 니와 이번 총 선거는 1천명에 가까운 입후 보자들의 과열된 경합의 결과로 선거 분위 기를 전체적으로 불명예스럽게 했다』고 지 적하면서 검찰에 수사를 지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