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錫珍 박사의 공포
1967년 7월8일 金炯旭(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東伯林을 거점으로 한 북 괴 對南 공작단 사건」을 발표했다. 일명 「東伯林 사건」은 朝鮮日報 李基陽(이기양) 기자의 실종사건을 중앙정보부가 수사하던 중 그의 친구가 자수 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당시 서독 주재 李基陽 특파원이 1967년 4월14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개최된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취재차 공 산국가이던 체코로 출국한 뒤 소식이 두절됐다.
이 대회에서 한국팀은 朴信子(박신자) 선수의 맹활약으로 소련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李특파원의 실종도 덩달아 교민사회에 많은 소문을 낳고 있었다. 독일 교민사회에서는 자진 월북, 납치 혹은 살해 등 각종 소문이 떠돌아 朝鮮日報社측은 사안이 명확하게 판단되기 전까지 가능한 보도를 자제하고 있었다.
朝鮮日報社는 李기자가 체코로 출발한 지 5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자 4월19 일, 일본 東京을 경유하여 프라하의 한국 여자 농구 선수단에 국제전화로 李기자의 동정을 알아 보았지만, 입국 및 체류 여부에 대해 일체 들은 바 없다는 회신이었다. 4월25일 독일 본을 경유해 귀국한 선수단원들로부터도 李기자를 목격한 단원을 발견할 수 없었다.
5월 초, 중앙정보부 수사국 李龍澤(이용택·12代 국회의원 역임, 現 경주 관광공사 사장) 수사과장이 우연히 朝鮮日報 사장실에 들렀다가 方又榮(방 우영·現 조선일보사 회장) 사장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아우님, 거 우리 서독 특파원 李基陽 기자가 어떻게 됐는지 좀 알고 있소?』
『무슨 말씀인지요?』
『체코에서 열리는 농구 대회를 취재하라고 지시했는데, 도착했는지 어쨌는 지 소식이 없어요. 전화를 걸어보면 집에서는 부인이 받는데 체코에 들어 갔다고 하고, 체코는 공산국가라 확인할 길도 없고… 벌써 보름이 지났거든』
『글쎄요…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李龍澤 과장은 최근 기자에게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1967년에 들어서자 미국 정보기관에서 우리에게 유럽을 주의하라고 귀띔 해 주고 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북괴에 의한 납치」라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정보 전문가란 이유로 方사장 앞에서는 표정관리에 무척 신경쓰면 서 대수롭지 않게 사장실을 빠져 나왔지요』
李과장은 이문동에 위치한 중앙정보부에 도착하는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서독에서 체코로 들어간 것은 확인되었습니다. 그 다음엔 체코에서 묵을 만한 호텔을 뒤졌으나 도착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체코 공항을 통해 알아 보니 공항에서 입국 신고가 안되어 있는 겁니다. 결론은 체코行 비행기를 타고 프라하 공항에 도착해서 막바로 다른 비행기에 실렸다는 것 이지요』
당시 朝鮮日報社는 중앙정보부로부터 사건의 성격을 확인한 뒤 1967년 5월 14일자 신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열린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취재 하기 위해 지난 4월14일 체코에 입국했던 李특파원이 현재 체코 당국에 의 해 억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한달이 지난 14일 현재 그의 소 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날 아침 라디오 방송을 통해 李基陽 기자의 행방불명 사건을 접한 林錫珍 (임석진·현재 67·現 명지대 철학과 명예교수) 박사는 귀국한 지 일년여 동안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 모종의 공포와 직면했다. 서독 유학 당시 林錫珍은 절친한 친구인 李基陽 기자를 포섭해 북한 대사관에 연결시킨 장본인 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친구 李基陽에 대해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있던 차에 친구가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여겨지자 북한에 대한 적개심 이 솟아나면서 공포가 사라졌다고 한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나와 李基陽군을 떠나 제2, 제3의 피해 자가 나올 것이 뻔했습니다. 우선 누구와 사전협의를 해야 할지 잠시 생각 했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많은데 이걸 제대로 이해해 주고 종합적으로 상의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