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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錫珍의 북한 기행
 林錫珍의 북한 기행
 
 1961년 9월5일, 林錫珍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북한 사회가 잘못돼 있는 곳이란 걸 직감했습니 다. 그 순간부터 저는 생각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지요』 서독에서 우편물로 받아 본 화려한 화보 속의 밝고 명랑한 북한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중충하고 잿빛 감도는 건물들, 색깔이라곤 새빨간 광목에 쓰여 진 金日成에 대한 충성 구호들뿐, 보이는 사람들은 창백하고 공포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20세기 초 유럽의 유명 作家인 아서 케슬러나 앙드레 지드가 사회주의를 주창하다 1930년대에 모스크바에 한 번 가 보고는 그 환상에서 깨어났지요 . 그로부터 30년 뒤에 제가 꼭 그렇게 느낀 겁니다. 당시 朴대통령에게 「 1970년대에 접어들면 북한은 분명히 위기국면으로 들어설 겁니다. 남한이 북한을 추월하게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朴正熙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그 사회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선 인민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공포와 강 제만이 꽉 차 있었습니다. 이조시대 탐관오리보다 더한 사람들이 당간부였 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마치 자신도 그렇게 짐작 하고 있었다는 듯이.
 
 林錫珍은 평양 모란봉 초대소에 도착해 칙사 대접을 받으며 3주 동안 북한 의 여러 곳을 돌아 다닐 수 있었다. 벤츠 승용차에 감시하는 안내원과 동승 하여 정해진 시간표대로 방문하기는 했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빈틈을 林錫珍은 놓치지 않고 발견하곤 분석했다.
 
 『청진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초라한 驛舍였는데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기약없이 플랫폼에서 서 있어야 했어요. 감시하던 안내인 도 화장실을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주민들이 기차를 타러 나왔다 가 제 곁에서 이야기하는 걸 엿듣게 됐지요. 한 사람이 「우리 고향엔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이 아우성이오」라고 하니 옆 사람이 「그럼 밀가루 과자나 주지」라고 했어요. 그러자 한 숨을 푹 쉬던 주민은 「그것도 있어야 주지 요」 하는 겁니다.
 
 기차 안에서도 주민들은 제가 입고 있던 독일제 양복과 구두를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습니다. 안내인이 허용하는 북한 사회만 보던 나에게 이런 쥐구 멍 같은 틈을 통해 흘러 나오는 북한의 내면은 충격 이상이었습니다』 며칠 뒤 林錫珍은 안내원들을 따라 모란봉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로 갔다.
 
 평양의 유명 음식점 옥류관이 마주하고 있었다. 안내받아 간 곳에 는 애타게 그리던 수양 어머니 金씨와 그의 남편 尹熙在, 그리고 尹起鳳이 있었다. 尹起鳳은 이미 결혼해 다섯 살바기 아들도 있었는데 부인은 평안 북도 출신 농부의 딸이었다. 건강하고 후덕하게 생겼지만 학교를 제대로 나 오지 않았는지 지식수준으로 봐서는 도저히 남편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성 싶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눈을 떴으니 회포를 충분히 풀었을 성싶은데 그 게 아니었습니다. 기봉이 형님은 처음에 나를 보자 반가운 표정을 잠시 짓 더니 이내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고, 그러자 저도 그런 인상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두고 형님과 제가 마주 앉았는데 중앙당 과 장인가 하는 이가 내 옆에 앉고 또 다른 무슨 기관 사람이 그 형님 옆에 앉 아 뱀술을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작 물어보고 싶은 말, 의미 있는 대화를 서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형님 속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그 분은 저 를 믿지 못한 겁니다. 「석진이 네가 얼마나 이 자들에게 충성했으면 여기 까지 초대받아 왔을까. 내가 너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 이해해 달 라」 뭐 이런 표정 같았습니다』
 
 林錫珍은 그 집 자체가 수양어머니의 집이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방이 두 개인데, 아무리 전후 복구기간이라 해도 家具가 없다는 게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金日成 사진, 밀감 상자 같은 나무 책상 하나에 이불이 개어져 올려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수양 어머니도 별 말씀 없이 음식을 준 비해 놓고는 옆방에 가 누워 계시고… 자리잡고 사는 집이 아니었던 겁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가 이른 새벽에 깨어나 안내원 들이 없는 틈을 타고 조용히 모란봉으로 산책을 했다고 한다. 아파트 정문 을 나섰는데 거리에는 인적이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모란봉에 올랐지 만 11년 만에 만난 의형제는 서로를 믿지 못해 속마음을 털어 놓지도 못하 고 혹시 누가 오지는 않는지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林錫珍은 설사 상부에 보고된다손 치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질문을 생각해 냈다.
 
 『형님, 박헌영 이하 남로당원들을 미국 고용간첩으로 사형시켰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요.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형님도 아시다시피 그 사람들이 어떻게 미국 간첩이 됩니까? 전부 몰아버린 것 아닙니까』
 
 林錫珍은 형이 北쪽의 상투적인 주장을 하는지 주의깊게 살폈다. 형은 한발 물러나서면 『정말 나도 그 속을 모르겠다. 다만 金日成광장에서 그들이 간첩활동 할 때 사용하던 물품을 전시하면서 학생과 직장인들을 관람시켰지 』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함께 자라면서 형의 의식세계를 넘나들었던 林錫珍은 형의 말투에서 「박헌영과 관련된 북한 당국의 발표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암시를 받았다.
 
 모란봉 공원에서 내려 온 뒤 林錫珍은 尹起鳳의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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