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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黨대회
 제4차 黨대회
 
 林錫珍이 방북했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북한 노동당 제4차 黨대회가 열리던 기간이었다. 형식상 黨 최고기관인 「黨대회」는 북한 정권의 공식적인 정 책 결정 기구이다. 1946년 8월28일에 처음 열린 이후 1948년, 1956년에 이 어 1961년 9월11일부터 8일간 제4차 黨대회가 열렸다. 1961년에는 북한이 승승장구할 무렵이어서 중공의 당중앙 총서기 등소평, 소련의 공산당 이론 가 수슬로프도 참가했다. 林錫珍은 노동당 대의원 1657명과 함께 이 대회의 기념집회에 참관했다.
 
 『金日成광장에서 바라보니 70∼80명이 나란히 앉은 主席壇(주석단)이 보이 더군요. 맨 가운데 金日成이 서 있고 옆에는 검은 안경을 쓰고 서 있는 金正日도 보았지요. 당시 金日成대학에 재학중이라고 안내원이 설명해 주었습 니다』
 
 노동당 제4차 黨 대회는 「인민경제 7개년 계획」의 수립을 결정하는 중요 한 회의였다. 우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보다 1년 먼저 시작한 북한의 경제계획은 그 후 60년대를 관통하면서 朴正熙가 이끌었던 남한과의 경쟁 에서 완전히 패배했다.
 
 제4차 黨 대회에서는 對南공작의 전술적 전환을 모색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 리기도 했다. 노동당은 이른바 남조선에서의 혁명의 성격을 제국주의와 봉 건주의에 반대하는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이 대회를 통 해 남한에서 「지하당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하당 조직」이란 남한 사회 저변에 숨어서 정치(反정부·反체제 운동) , 경제(노동 운동), 사회문화(계급의식 고취·反美·親北 문화 조성) 분야 에서 非合法, 非公開를 원칙으로 운동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지하에 숨어야 하는 만큼 핵심으로만 구성되는 두뇌조직이 지하당 조직이다. 어느 정도 사회가 이완되면 半합법, 半공개로 전환하며 정세가 완전히 유리하게 전개 되면 비로소 합법, 공개조직으로 변신하여 각종 단체 이름을 걸고 사회에서 대중적 활동을 한다는 것이 북한의 對南혁명전략이다.
 
 1989년 독일에서 유학하던 韓秉勳(한병훈)씨는 30여년 전의 林錫珍과 같은 방법으로 포섭되어 북한을 네 번 드나들었다. 그는 북한에서 2~3주 동안 「교양」을 받으며 지하당 조직의 연원에 대해 교육받은 바 있다면서 제4차 黨대회와 관련해 이런 증언을 했다.
 
 
 『제4차 黨대회 때 「지하당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된 까닭은 5·16과 깊 은 관련이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사회에 朴正熙를 중심으로 군사정권이 들 어서고 그 성격이 反共的임을 확인하자 남한內에 활동하던 親北 운동가들의 역량을 보존하고 육성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 무렵부터 북한의 對南공작 부서는 남한과 해외 교민사회內 고급 지식인들을 상대로 포섭활동을 벌여왔 지요. 고급 두뇌들로 구성된 지하당 조직을 구축해야 혁명 역량의 보존이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1967년의 東伯林 사건은 북한의 지하당 조직 공작 사업 중 하나가 드러난 정도입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조직망은 그 후 독일 內에서 다시 소생하여 지금은 半공개 혹은 완전 공개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 입장에서는 상황이 좋아졌다고 보는 겁니다』
 
 1961년 9월 林錫珍이 제4차 黨대회에 초청받아 가게 된 배경도 對南공작 부 서의 지하당 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이때 북한은 林錫珍에게 노동당에 정식 가입할 것을 강권했다고 한다(林錫珍은 1963년 서독에 거주하며 입당원서 를 쓰게 된다).
 
 임석진의 거듭된 거절끝에 입당원서 문제가 보류되자 이번에는 초대소에 머 물도록 하면서 공작부서 간부들로부터 對南혁명전략 중 지하당 공작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林박사에게 지하당 조직을 꾸려 남한에서 민 주기지를 만드는 일에 대해 강의하고 연방제 통일방안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 黨의 노선을 인민 대중, 나아가 사회 전반 基層(기층)에 파급시켜 나갈 방도를 강구하셔야 합니다. 지하당 조직을 꾸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머리 좋은 동지들을 규합해 문화운동으로 시작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문 화운동은 민주기지 건설에 이르는 중간 다리입니다. 민주기지란 권력 핵심 부를 장악했을 때 완성됩니다.
 
 북조선의 공고한 혁명기지와 남조선의 공고한 민주기지가 손을 잡으면 외세 를 물리쳐버리고 제1단계 연방제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나중에 군중 봉기가 나면 우리는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 과업은 완수되는 겁니다』 그들은 林錫珍이 북한을 떠나는 날 비행장에서 尹起鳳씨만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다섯 시간 가량 출발이 지연되었습니다. 공항 대기실에서 두 사람이 죽치 고 앉아 있었지만 얘기다운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형님도 가끔씩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곤 입을 다물었지요. 자기 선배와 동료들이 하나 같이 간첩으로 몰려 총살을 당한 판이니 누굴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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