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착수
1967년 5월22일 오후 金炯旭 중앙정보부장은 李龍澤 수사과장을 부르더니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청와대에 들어갔더니 각하께서 이 사람이 李基陽 특파원의 行不사건에 상 당한 단서를 갖고 있다고 하시면서, 東伯林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對南공 작을 벌여 왔다고 하시는구먼. 은밀한 수사를 지시하셨으니 당신이 이 사람 을 만나 알아 보고 결과를 나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께 보고하시오』李과장이 메모지를 펼쳐 보니 林錫珍 교수의 이름과 전화번호였다. 李과장 은 다음날부터 이틀간 충무로에 있는 아스토리아 호텔에 방을 잡아두고 林錫珍 교수와 만났다.
『얘기를 들어 보니 엄청났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정보는 林교수의 진술 에 비하면 지엽말단적인 것에 불과했지요. 다음날 또 만나자고 하여 상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5월24일경, 李龍澤 수사과장은 金炯旭 정보부장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 . 李과장은 朴대통령에게 사건 개요를 보고했다. 그런데 朴대통령은 보고가 끝나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군』李龍澤 前 의원의 회고.
『대통령께서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아 보니 林교수가 사전에 朴대통령을 만났고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고 합니 다. 그 보고서는 金炯旭 부장도 보지 못한 걸로 보아서 대통령 당신이 연구 하기 위해서인지 혹은 金炯旭 부장의 업무능력 평가를 위해 갖고 있었던 모 양입니다』
이날 朴대통령은 金炯旭 부장에게 따끔한 질책을 했다.
『북괴가 해외에 나가 사는 우리 동포를 활용해서 해외로부터 우리를 포위 하고 침투공작을 하려는 의도인 것 같은 데, 당신은 외국 정보기관에서 주 는 것만 갖고 일하나? 너무 국내에만 치중해서 對南간첩이나 지하당 간첩단 사건에만 얽매이지 말고 국제적으로도 신경 좀 쓰시오. 국외업무도 강화하 고. 그리고 이 사건은 철저히 수사해서 뿌리 뽑으시오. 이게 어디 東伯林뿐 이겠어? 북괴 대사관이 있는 곳이라면 전부 이럴 테지』
『예, 철저히 하겠습니다』
金炯旭 부장은 90도 각도로 절을 했다. 朴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를 金炯旭부장은 「합리성을 잃어도 좋다」 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해외로부터 무리한 拘引(구인)과정, 합리적이지 못한 확대 수사, 도처에서 나타나는 고문 흔적들은 眞犯(진범 )을 찾아내 엄중 처벌하는 데 실패하고 무고한 피해자 속에 眞犯들이 섞이 게 만들어 종국에는 사건 자체가 조작이란 汚名(오명)을 쓰기에 이르렀다. 중앙정보부內에서 金炯旭의 위력은 막강했으나 부하 직원들의 자발적 복종 심을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존경할 수 없는 인물」로 군림했 던 金炯旭 시대의 정보기관원들은 북한의 진일보한 지하당 공작 사건에 직 면하여 재래식 일반 간첩 수사 기법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당시 李龍澤 수사과장은 정보부 수사국 직원을 총 동원하다시피 해서 혐의 자 명단을 만들어 갔다고 한다. 李龍澤 前의원의 증언.
『東伯林 사건 수사는 결과적으로 미완의 수사가 되었습니다. 수사관은 한 정되었고 東伯林뿐 아니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와 미국에까지 지하망의 뿌리가 뻗쳐 있어 혐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일부 관련자를 소환한 직후부터는 서독과 프랑스에서 외교적 압력이 가해져 서둘러 종결 시켜야 했습니다.
당시 북괴가 한국 사회에 조성해 놓은 지하당은 통상 선거 시기에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선거가 있다보면 수사관들의 힘이 선거 쪽으로 분 산되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죠. 東伯林 사건도 林교수가 대통령께 제보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학생데모가 과열되는 가운데 7월 말이나 되어야 꼬리가 잡혔을 겁니다. 저의 경우 李基陽 특파원 실종사건을 내사중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단서를 잡았을 테고 그러자면 체코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사 람을 투입시켜야 했을 테지요. 그런데 林교수의 제보는 이런 수고를 덜어 주었습니다』
중앙정보부의 수사는 그 해 5월 말에 시작하여 7월 초까지 한 달 반 가량 진행된 후 검찰로 넘겨졌다. 林錫珍 교수는 매일 출근 하다시피 중앙정보부 로 나와 수사관들의 질문에 응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李龍澤 과장은 수시로 청와대로 들어가 朴대통령에게 直報(직보)했다.
『서독의 경우는 수사를 하면 할수록 관련자들의 상부선은 尹伊桑에게 연결 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의 정점은 尹伊桑이라고 판단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林錫珍 교수가 朴대통령을 만나 털어 놓았을 때엔 주요 인물 한 명 이 빠져 있었다.
당시 서독 대사로 근무중이던 崔德新이었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과 대면한 林錫珍은 崔德新 대사도 혐의자라고 지적하고 북한에서 보고 들은 그의 행적에 관해 진술서를 작성했다. 다음날 金炯旭 정보부장 이 林錫珍을 불렀다.
『崔德新 대사까지 거론했던데, 이거 너무 범위가 넓어지는 거 같아요. 당 신 逆工作하는 거 아니오?』
林錫珍은 경멸스런 감정이 솟아나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 들 수도 없는 처지라 『나는 다만 이상한 말을 들었기에 적어준 것뿐입니다 』라며 빠져 나왔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