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조심하라!
1967년 10월 초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康仁德(강인덕·북한국
장,통일부 장관 역임·68) 중앙정보부 분석 과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 다. 보고서 제목은 「최근 북한의 對南침투에 관한 분석-북한의 冬季 게릴 라 침투 豫想報告」. 朴대통령은 보고를 들으면서 밑줄을 치고 때때로 메모를 했다. 결론 부분에 이르자 朴대통령은 한 문장에 밑줄을 두 번이나 치고 있었다. 「북괴는 내년부터 冬季작전에 돌입하여 본격적인 인민전쟁이 시작될 것입 니다」라는 부분이었다. 북한의 동계 게릴라 침투작전을 예상한 보고가 끝 나자 朴대통령은 인터폰으로 『국방부 장관, 각 軍 참모총장들 다 들어오라 고 해』라고 지시했다.
『康君, 이건 게릴라戰이라 중앙정보부 통제능력에서 벗어나는 거야. 그래 서 좀 모이라고 했으니까 자네가 다시 한번 설명하게』
이날 오후 국방부 장관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 사령관 앞에서 康과 장의 설명이 끝나자 朴대통령은 『내가 조만간 全軍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 과 기관장들을 다 모아 놓고 對간첩작전 회의를 해야겠으니 자네는 이 내용 을 설명할 준비를 하게』라고 했다. 대통령은 金聖恩 국방장관에게는 『국 방부에 對간첩 작전에 관한 모든 권한을 부여할 테니 준비하시오』라고 했다. 「북한의 冬季 게릴라 침투 豫想報告」는 그때까지 중앙정보부에 속했던 對 간첩 작전의 권한들을 대부분 국방부로 이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康仁德 과장이 이런 보고를 하게 된 것은 1967년 1월초 휴전선을 침투해 들 어 온 3인조 간첩을 체포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들은 서울 시내에서 소 매치기를 하며 지내다 경찰의 불신검문에 의해 체포되었고 신원조회를 하는 과정에서 특이점이 나타나 對共수사기관에 이첩된 경우였다. 康仁德 前 통 일부 장관의 회고.
『세 명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지 않고 내려 왔습니다. 그저 서울에서 소 매치기를 하며 돈을 쓰다가 신분증만 몇 개 구해서 월북하라는 것이 전부였 는데, 당시로서는 특이한 경우였지요. 특히 6·25 이후 겨울에 휴전선을 통 해 3인조를 내려 보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눈밭에 발자국이 남기 때문에 북한은 극력 피하던 방식이었거든요. 「왜 내려 보냈나」하는 의문 을 가지고 다각도로 분석해 보니 冬季작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겁니다』 5·16 당시 康仁德 해병대 중위는 전략정보관으로 해병대 사령부에 근무하 다 중앙정보부에 차출된 경우였다. 그는 중앙정보부에서 군복을 벗고 분석 국 과장, 부국장을 거쳐 1970년 12월 북한국장이 된 뒤 1978년에 퇴직했다 . 그는 매월 한 차례씩 북한 동향을 분석 보고하는 과정에서 朴대통령의 신 임을 받고 있었다.
朴대통령은 1967년 9월 초 金聖恩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북한이 게릴라 부대 를 만들었다는 보고를 접했다.
金聖恩씨의 증언.
『9월 초쯤 방첩대장 尹必鏞(윤필용)이 해안으로 침투하던 공비를 생포해 심문했더니 이런 정보가 있더라면서 보고를 해 왔습니다. 「124군 부대」였 지요. 정확한 규모나 위치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북한이 군사도발을 강 화할 것이란 판단을 했습니다』
방첩대의 정보는 비교적 정확했다. 북한은 1967년 8월12일 민족보위성 정찰 국 직속의 對南 공작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124군 부대」란 명칭을 가진 이 집단은 2400명에 이르는 부대원을 300명씩 8개 基地(기지)로 나누어 對南 유격훈련을 시작했다. 각 基地는 남한의 일 개 道를 담당했으며 제 6기 지는 경기도와 서울 지역을 담당했다.
이해 가을 제 6기지 부대원 중 정예요원 35명이 선발되어 서울 침공 계획 훈련에 돌입했다. 이 중 제1조 15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고 나머지 4개조(각 5명)가 각기 다른 목표를 동시에 타격한다는 계획이었다.
제2조는 美대사관저를 습격하여 대사와 그 가족을 살해할 동안, 제3조는 육 군본부를 폭파해 將星들을 살해하고 제4조는 서울 교도소 정문을 폭파하여 죄수들을 탈옥시키며, 제5조는 서울 서빙고동에 있는 방첩부대의 간첩수용 소를 급습하여 간첩들을 구출해 함께 월북한다는 계획이었다. 훗날 생포된 인민군 金新朝 소위는 자신이 선발되었을 때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임무가 실패하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부대 원들에게는 당과 수령을 위해 죽는 것이 최대의 영광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