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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놈들, 결국 여기까지 쳐들어 왔구먼』
 『고약한 놈들, 결국 여기까지 쳐들어 왔구먼』
 
 1968년 1월21일 밤 10시 15분부터 30분 사이 총성이 여러 차례 울린 시각, 朴正熙 대통령은 감기약을 먹고 잠을 자다 깨어났다. 朴鐘圭 경호실장이 제일 먼저 달려왔고 崔宇根(최우근) 수경사 사령관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와 상황을 보고했다.
 비슷한 시각, 金聖恩 국방부 장관도 총성을 듣고 국방부에 비상전화를 걸었 다. 청와대 부근에서 交戰中이란 보고를 받은 金장관은 즉시 차를 타고 청 와대로 달려왔다. 朴正熙 대통령은 점퍼 차림으로 집무실로 내려와 있었다 . 金장관이 보니 대통령은 경황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金장관, 내가 감기에 걸려 약을 먹고 자다가 일어났는데 말이야. 거 참, 이놈들이 여기까지 쳐들어 올 줄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소?. 고약한 놈들. 뭐 못하는 짓이 없구먼. 그렇게 파괴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쳐들어 왔구먼』
 
 『저도 놀랐습니다. 각하. 괴뢰군 놈들이 神이 아닌 이상 어떻게 하룻밤 사 이에 여기까지 오겠습니까』
 
 두 사람은 전쟁을 겪은 군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수행하던 경호원들이 보아 도 무척 대담했다고 한다. 청와대 밖 하늘은 수경사 30대대에서 쏘아올린 조명탄으로 훤하게 밝아 있었다. 尹必鏞 방첩대장은 金聖恩 국방부 장관에 게 戰果와 피해상황을 수시로 보고했다. 자하문에서 최초 총격전이 벌어져 종로경찰서장이 피격당해 순직했으며, 한 명은 생포했고 현재 청와대 외곽 으로 몰아내며 추적중이라는 내용이었다. 朴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崔圭植 총경이?』하며 몹시 안타까워 했다.
 
 崔圭植 총경은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재학중 6·25를 만나 종합학교 31기생 으로 임관했다. 5·16 당시 소령으로 복무중 혁명정부로부터 충청북도 경찰 서 정보과장으로 발령받아 경찰에 투신하게 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아 釜山市警 정보과장을 거쳐 1966년 8월 용산경찰서 서장으로 승진했다. 1년 뒤인 1967년 10월27일 종로 경찰서장으로 발령받아 근무중 참변을 당했다. 崔圭植 총경의 순직을 가슴 아파한 또 한 사람은 2층 부속실에서 귀를 쫑긋 하게 세우고 앉아 있던 陸英修 여사였다. 이날 밤, 경호실에서 등화관제를 요구해 제2부속실의 洪晶子(陸英修의 조카) 비서관은 불도 켜지 않은 2층 복도를 오가며 陸여사의 심부름을 했다. 총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陸英修는 극도의 침착성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5·16 혁명하던 날 이모님 인상과 참 비슷했어요. 총성이 나자 어느 새 옷(한복)을 갈아 입고 서재 겸 집무실이있던 방으로 가셔서 촛불을 켰지요 . 경호관들이 오가면서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崔圭植 총경이 순직했다는 말 을 들었던 겁니다』
 
 崔圭植 총경이 용산 경찰서장에서 종로 경찰서장으로 1년 만에 부임하게 된 것은 陸英修 여사의 칭찬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실했던 崔총경은 부산시경 정보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동아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부산 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용산서장으로 발령받아 상경했다. 陸英修 여사가 崔총경을 눈여겨 본 것은 해외 순방이나 큰 행사 때 깔끔한 복장에 절도 있는 행동으로 일선 경찰들을 지휘하는 모습에서였다고 한다 . 그 후 관내에 청와대가 포함된 종로 경찰서장으로 발령받게 하는 데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망인 劉貞和(유정화·67)씨에 따르면 남편 崔총경은 서울 용산으로 올라 와서도 공부를 계속했고 종로경찰서 서장으로 발령받은 뒤로는 너무 바빠 부산대학교 교수들이 상경해서 논문 지도를 했다고 한다. 1968년 1월12일 崔圭植 총경은 부산대학교로부터 논문이 최종 통과되어 석사학위를 받게 되 었다는 축하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9일 뒤 자하문 언덕에서 무장공비가 쏜 총탄에 숨을 거두었다.
 
 미망인 劉여사는 그해 2월26일 부산대학교 총장의 초청으로 남편을 대신해 졸업식장에 참석, 학위를 받았다. 陸여사의 조카 洪晶子 비서관의 회고.
 
 『그날 밤 이모님은 눈물을 참 많이 흘렸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지 만, 崔총경의 죽음이 마치 자기로 인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자책하는 듯이 슬퍼했지요. 새벽 2시쯤 되자 「전화를 해야겠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라 며 수화기에 손을 얹고 몇 번이나 주저하다가 종로 경찰서에 전화를 하셨어 요.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는 말씀을 꼭 전해달라고 하시면서 울먹이셨지요』
 
 밤 12시가 가까워지자 청와대로 속속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와대 쪽에서 는 李厚洛(이후락) 비서실장, 金詩珍(김시진) 정보비서관 등이 정부쪽에서 는 丁一權(정일권) 국무총리, 洪鍾哲(홍종철) 공보부 장관, 申稙秀(신직수 ) 검찰총장, 金玄玉(김현옥) 서울시장, 李洛善(이낙선) 국세청장 등이 달려 왔다. 각료들은 朴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던 중 『총성이 난 이상 시민의 불 안을 덜어주기 위해 진상 발표를 신속히 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난 朴대통령은 라디오를 켰으나 사 건은 여전히 보도되지 않고 있었다. 朴대통령은 申範植 청와대 대변인을 불 러 『왜 방송이 늦어지고 있나』면서 『중계방송 하다시피 소상하게 보도해 서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고 간첩 수색에 국민의 협조를 얻도록 하라』고 지 시했다. 보도 관제는 22일 오전 7시를 기해 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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