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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圭植 종로경찰서장, 권총을 꺼내다
 崔圭植 종로경찰서장, 권총을 꺼내다
 
 1968년 1월21일 밤 10시5분경, 청와대가 지척인 자하문 내리막길에서 두 형 사는 무장공비의 대열 맨 뒤에 걸어가던 부대장격인 金春植과 이야기를 나 누며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金春植은 朴형사에게 『당신 경상도 말씬데, 고향이 어디요?』하고 물었다. 朴형사가 『대구인데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우리 친척집도 대구인데…』 라며 말을 흐렸다.
 
 朴형사는 이들과 농담까지 주고 받으며 시간을 끌어 보려했으나 기다리던 증원 부대는 오지 않았다. 입안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괴한 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오는 원효여객 60번 버스를 세웠다. 朴泰安씨의 회고.
 
 『무장공비가 분명한데 그 자리에서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못 잡으면 우리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비들은 이미 7∼8명이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극성스럽게 저지하기 시작하자 隊長인 듯한 자가 부하들에게 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두 명이 이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고, 미치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때까지 공비들의 목표가 청와대라고 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버스에서의 시비가 끝나자 대열은 다시 움직였다. 경복고등학교 후문을 지 나 청와대로 꺾어지는 커브 쯤에서 맨 뒤에 가던 金春植에게 朴형사가 끈질 기게 말을 붙이는 바람에 金春植은 어느 새 대열과 7∼8m 떨어지게 되었다 . 朴형사는 속으로 「이놈 한 놈만이라도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밤 10시10분.
 
 朴형사는 길이 꺾어지는 쪽으로 공비들이 빠지면 연락을 받고 달려 올 증원 부대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장공비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이르자 鄭형사와 함께 승강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바 로 그때 헤드라이트 불빛이 길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프차는 괴한들의 대열 앞에 멈춰섰다. 전진하던 대열도 멈칫 했다. 헤드라이트가 이들의 몰골을 기괴하게 비추고 있는 동안 차에서 당당한 체구의 사나이가 내렸다. 崔圭植 종로경찰서 서장이었다.
 
 
 『나는 종로경찰서장이오. 소속을 밝혀야지요. 외투 안에는 뭐가 들었소?』
 
 『아무 것도 아니오. 우리는 CIC 사령부가 있는 효자동으로 가는 길이오』
 
 『여기는 내 담당구역입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는 아무도 못 지나가요』 2조 조장 金新朝는 대열 중간에 서 있다가 지프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 추는 가운데 崔圭植 서장이 권총을 뽑아들고 저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남침 후 처음으로 당황했다고 한다. 공비들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을 때 崔圭植 서장 뒤로 시내 버스 한 대가 올라오다 길을 가로막은 지프차 뒤로 멈춰섰다. 공비들은 버스를 국군의 지원 병력인 줄로 착각했다. 잠시 후 또 한 대의 버스가 커브를 돌아 나오다 앞 차량이 멈춰 서 있자 급 정거를 했다. 공비들은 연이어 두 대의 차량이 도착한 것을 목격하고는 외 투 속의 총과 수류탄을 더듬었다. 그 순간 崔圭植 서장과 시비가 붙었던 공 비가 외투 속에서 총을 꺼내 崔서장의 가슴을 향해 연발 사격을 가했다.
 
 『드르륵, 드르륵』
 
 
 『국방군 출동이닷!』 1·21 사태의 첫 희생자가 된 당시 36세의 崔圭植 서장은 가슴에 세 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밤 10시15분경이었다.
 
 총성이 나기 무섭게 공비들이 일제히 버스를 향해 사격을 가하면서 세 발의 수류탄이 작렬했다. 버스에 타고있던 청운중학교 3학년 金亨基(김형기·1 7)군과 회사원 洪裕敬(홍유경·29)씨가 수류탄 파편을 맞아 그 자리에서 숨 지고 버스 차장 金貞子(김정자·18세)양은 오른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버 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 내렸다. 어둠 속에서 공비들은 자신들을 공 격하는 국군인 줄 알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대열 뒤에서 부대장 金春植과 말을 걸었던 두 형사가 金春植을 쓰 러 뜨렸다. 朴형사는 오른손으로 金春植의 목을 죄면서 왼손으로는 아무거 나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머리를 내려쳤다. 졸지에 돌멩이로 머리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을 잃은 金春植을 朴형사는 수갑으로 채워 生捕하는 데 성공했다.
 
 멀리서 동료가 경찰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공비들은 도망가면서 두 형사를 향해 총을 쏘았다. 鄭鍾壽 형사가 쓰러졌고 朴泰安 형사는 왼쪽 귀 위로 총알이 스쳐 지나갔다(鄭형사는 며칠 후 병원에서 숨졌다). 경복고 후문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총성이 퍼지자 청와대 외곽을 경비하던 수경사 30대대(대대장 全斗煥 중령 ) 병력들이 즉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金新朝 목사의 회고.
 
 
 『한 명이 쓰러지는 걸 보고는 「틀렸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휘부 가 무너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휴전선에서 청와대까지 내려왔다는 자부심이 고 뭐고 다 없어졌고 동료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는 겁니다. 청와대고 작전이 고 없었어요. 불과 5분 정도 교전한 것 같은데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던 겁 니다. 일부는 오던 길을 거슬러 세검정 쪽으로 튀었고 일부는 청와대 뒷산 인 北岳山을 탔고, 저는 경복고등학교 뒷담을 넘었지요. 인왕산을 타고 北 으로 가려고 말입니다』
 
 인민군 소위 金新朝는 동료들이 많이 택하지 않은 루트를 골랐다. 자하문을 넘어 세검정쪽으로 도망가려던 공비들은 뒤따라 내려오던 시내버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러나 승객들이 미리 대피한 상태여 서 피해는 없었다. 이들은 세검정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두 대의 버스에도 수류탄과 기총소사를 해대며 도망쳤다. 밤 10시30분경이었다. 야간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부 부근까지 침투한 것은 성공했지만, 무 고한 양민을 학살해 가며 유격전을 벌인 것만큼 어리석은 非정규전 사례도 없을 것이다.
 
 밤 10시 40분경 세검정 길과 북악산 일대는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30대대 병 력들이 투입되어 총격전으로 이어졌다. 30대대 병력이 현장에 투입될 무렵 , 경복궁 옆에 주둔하던 30대대 연병장에서는 대대장 全斗煥 중령과 작전주 임 張世東 소령의 지휘하에 81mm박격포 10여 문에서 조명탄이 날아 올랐다 . 조명탄은 밤새도록 세검정과 북악산 일대를 대낮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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