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비爆死
자하문 부근에서 交戰(교전)이 있기 직전인 1월21일 오후 10시 10분경, 蔡元植 치안국장실 무전기로 긴급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세검동 고갯길에서 이상한 옷차림의 군인 30여명이 술에 취해 청운동 쪽 으로 내려가고 있음」
蔡국장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교전이 끝난 뒤였고 도로에는 수류탄으 로 반파된 버스가 팽개쳐져 있었다. 길바닥엔 崔圭植 종로경찰서장의 시체 와 아직 숨이 붙은 鄭鍾壽 형사가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朴泰安 형사가 생 포한 金春植을 지키고 있었다. 蔡국장은 朴형사와 생포 공비를 차에 태워 근처 효자동 파출소로 데려 갔다가 다시 蔡국장 차로 치안국으로 이동했다 . 시간은 21일 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뒤로 젖힌 양 손에 수갑이 채워진 金春植은 머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는 소매 없는 등산용 조끼를 입고 양 옆구리에도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조 끼 앞가슴엔 작은 주머니 같은 것을 만들어 위, 아래 두 줄로 네 발씩 모두 여덟 개의 수류탄을 넣고 흔들리지 않게 실로 누벼놓았다.
蔡元植 국장은 金의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내고 양 옆구리의 주머니에서 휴 대용 식량과 주머니 칼을 찾아냈다. 蔡국장은 칼날에 쓰인 글을 보더니 곁 에 서있던 朴형사에게 보여주었다. 「Made in Japan」이라고 쓰여 있었다. 직원들은 蔡국장의 무장해제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朴형사도 蔡국장을 돕기 위해 金이 입은 조끼 양 옆의 매듭을 풀고 있었다 . 바로 그때 蔡국장이 소리쳤다.
『엎드려!』
몇 초후 「꽝!」하는 폭음과 함께 金春植의 복부는 산산조각 나고 치안국 복도는 피범벅으로 변했다. 朴泰安씨의 회고.
『그때 蔡국장은 조끼 윗줄의 수류탄 네 발을 모두 제거하고 아래쪽의 수류 탄 세 번째 것을 제거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수류탄은 낚시줄 같이 가는 선으로 네 번째 수류탄 안전핀을 물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겁니다. 蔡국장이 세 번째 수류탄을 제거하는 순간 네 번째 수류탄 안전핀이 뽑혀 올라온 것이죠』
蔡국장은 안전핀이 뽑힌 채 조끼에 달려 있는 수류탄을 보면서 공비를 복도 한쪽으로 힘껏 밀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때문에 무장해제를 지켜보던 직원 들과 朴형사는 파편상도 입지 않았다. 대신 복도와 수사과장실 유리창이 박 살나면서 벽면 전체가 피범벅이 되었다. 生捕(생포)된 간첩이 爆死(폭사)로 사라져 버렸다.
蔡국장은 차를 타고 나와 종로경찰서를 들러 직원들을 격려하고 치안국 감 찰계장 金德中 총경을 임시 종로 경찰서장으로 임명했다. 자정 무렵 蔡元植 치안국장은 청와대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이 시간에 丁一權 국무총리, 李澔(이호) 내무부장관 등과 군 장성들이 속속 청와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늘에선 수경사 30대대에서 쏘아올린 조명탄이 누런 연기를 흘리며 빛을 발하는 가운데 화약 냄새가 청와대 주위를 애워싸고 있었다. 蔡국장은 청와 대를 지나 세검정 쪽으로 차를 몰게 했다.
경찰과 공비들의 격전이 있은 직후 신문, 통신, 방송사 기자들도 취재에 뛰 어 들었다. 그러나 한 시간여가 지나는 동안 사방으로 튀어 달아난 공비들 로부터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 되자 자정 무렵 각 언 론사는 현장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기자들을 철수시켰다. 곳곳에 군인과 경찰들이 검문을 하는 중에 중앙일보 孫石柱(손석주·61세· 現 M&R대표) 사회부 기자와 張洪根(장홍근) 사진부 기자는 만하장(現 올림 피아 호텔) 부근에 신문사 깃발을 단 지프차를 세워 두고 검문소 통과를 시 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프에 무전기가 없어 본사로부터 철수 지시를 받지 못한 채 현장에 남아 있던 중이었다. 군인들은 검문소를 통과하려는 孫, 洪 두 기자에게 『죽고 싶으냐』며 위협해 시비가 일었다.
蔡元植 치안국장은 순찰中 무전을 통해 파주 부근에서 교전이 있다는 연락 을 받고 출발을 서두르는 순간에 군인들과 시비가 붙은 두 기자를 발견했다 . 蔡元植 국장은 현장을 기록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들을 불렀다.
『어이! 기자. 이리 와!』
『아, 蔡국장님이십니까. 중앙일보 사회부 孫石柱 기잡니다』
『당신, 나하고 파주에 갈 수 있겠어? 교전중이라는데도?』
『당연히 가야죠』
타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두 기자는 차에 오를 준비부터 했다. 이들을 태운 蔡국장의 차가 구파발을 지나 경기도 벽제 부근에 도착했을 때 蔡국 장의 차량 무전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한 놈 잡았습니다. 홍제동 파출소로 연행중입니다』 즉시 서울로 차를 돌렸다. 당시 홍제동 파출소는 30사단(사단장 許準 준장 )의 임시 작전 지휘본부가 설치된 곳이었다. 시간은 22일 새벽 3시를 넘어 서고 있었다.
蔡국장과 두 기자가 파출소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어 30사단 군인들이 민가 부근에서 생포한 공비 한 명을 파출소로 끌고 들어왔다. 여러 사람이 공비 의 허리춤과 웃옷을 잡고 있었기에 국방색 군복 상의는 몇 군데 단추가 떨 어져 나가고 검은 목면 바지는 앞 단추가 열린 채 무릎까지 흘러 내린 상태 였다. 사진부 張기자가 플래시를 터뜨리며 몇 장을 찍은 뒤 밖으로 튀어 나 갔다. 軍에 의한 보도관제가 심한 때여서 언제 필름을 빼앗길지 몰랐기 때 문이었다. 몇 평 안되는 파출소는 일순간 사람들로 붐볐다. 소속을 알 수 없는 군인, 경찰, 中情요원들로 복작거렸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 서 孫기자가 공비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말을 걸었다.
―너, 이름이 뭐야. 나이는.
『김신조다. 스물일곱 살이다』 ―주소와 계급은.
『군관(장교)이고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 청암동 3반에 가족이 살고 있다』 ―남파 목적이 뭐야.
『청와대를 까러 왔다. 21일 밤 8시에 공격을 개시해 5분 만에 끝낸 후 청 와대 車를 뺏어 타고 문산 방면으로 도망하기로 했다. 이것이 잘 안되면 비 봉 쪽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지휘자의 잘못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몇 명이 왔어?
『31명이 국군 복장을 하고 왔는데, 1명은 대위, 2명은 중위, 3명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 나머지는 사병 복장을 하고 넘어왔다』
―넘어 온 게 언제야?
『16일 평양에서 출발했다』 ―무기는?
『수류탄, 장총, 권총이다. 1인당 수류탄 열 개와 탄알 300개 씩을 가져 왔 다. 우리는 결사대 훈련을 받았으며 모두 군관(장교)이다』
―현재 기분은?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젠 겁도 안 난다』孫기자는 金新朝의 윗주머니에서 「지식인들이여 언론 출판의 활동을 위해 싸우라」는 내용의 삐라를 발견했다. 잠시 후 金新朝는 앰뷸런스에 실려 방첩대로 끌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