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시위
1968년 1월29일 오후 4시30분부터 약 한 시 간 동안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세번 째 시국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대통령 은 국내외 정세에 대한 정부방침에 대해 의 견을 듣고만 있었다. 그날 저녁 朴대통령은 金聖恩 국방부장관과 任忠植 합참의장, 金桂元 육군참모총장, 金榮寬 해군참모총장, 張志良 공군참모총장 및 姜起千 해병대 사 령관을 청와대에 남게 한 뒤 대책회의 겸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朴대통령과 軍 수 뇌부 모두가 미국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 끼고 있었다. 술을 한잔씩 돌린 朴대통령은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 방위동맹을 아무리 맺고 있어도 어떤 나라든 자기네 국익을 우선시 하는 것이지. 방위조약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모든 국가 간의 조약이란 어디까지나 自國의 이익이 합치될 때 지켜지는 것이지 , 무조건적인 시혜는 없는 거야. 국가간의 이익이 상치하면 조약 같은 것은 물거품 같은 것이지.
이번 같은 예를 봐도 자기네 군함이 공해상 에서 무력으로 납치된 것은 자기네 영토가 침범당한 것과 다를 바 없잖아. 옛날 같으 면 당장 전쟁이 일어날 판인데, 그래서 보 복이 당연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역시 한 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으로서는 큰 부담인 것이 사실인 모양이야. 그러니까 승무원이라도 구하려고 저러는데…우리도 미국만 믿지 말고 비상대책을 논의해 봐야 겠어』
각군 참모총장들은 강력하게 北伐(북벌)을 건의했다고 한다.
『각하, 미국이 못한다고 하니, 우리만이라 도 以北을 두들겨 놓겠습니다. 청와대까지 겁도 없이 들어 온 놈들을 가만 놔두면 또 그런 일이 벌어질 겁니다』
『우리가 단독으로?』
『예, 할 수 있습니다』
『金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따져 봐야겠습니다. 육군 전투력은 현재 2개 사단이 월남에 파병되어 있어 유사시 엔 우리가 미국에 철군 통보를 해야 할 겁 니다. 문제는 공군력입니다』 공군참모총장 張志良 중장이 일어나더니 벽 에 걸린 지도에 다가서서 설명했다.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주력기종은 F-5A입니다. 아시다시피 요격기로서 공격 전술에 필요한 폭격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 니다. 설사 이 전투기로 폭격을 한다 해도 문제는 제공권이 평양-원산 이상을 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一名 「자유의 투사」로 불리는 F-5A는 마 하 1.64의 輕量級 전투기였지만 짧은 항속 거리와 열악한 무장능력으로 인해 敵陣을 폭격하는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면 만약 우리가 북한을 때리려면 어 떤 기종이 필요하지?』
『지금으로서는 월남에서 美 공군이 사용하 는 F-4D 팬텀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張志良 참모총장이 말한 팬텀 기종은 마하 2.27의 전천후 장거리 전폭기로서 당시 미 국은 일본을 포함한 어떤 동맹국에도 이 機種을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곁에 있던 金聖恩 장관이 거들었다.
『각하, 이 기종만 있으면 우리가 북한에 핵 공격도 할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투 하된 폭탄이 4t입니다. 팬텀의 무장 능력은 핵 공격을 가상하고 만든 기종입니다. 특 히 레이더 및 각종 전자장비가 전투력을 극 대화시켜 줍니다』
『북한에 우리가 核폭탄을?!』朴대통령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탁 하고 두 드리고는 金聖恩 장관에게 『그거 구해 올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각하, 미국이 우리를 배신한 마당에 우리 가 미국을 꽉 조여 보면 될지도 모릅니다. 각하께서 동의하신다면 말입니다』
『그래, 그거 한번 해 보자. 북괴놈들, 우 리도 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어』 미국의 북한 공습 중지결정은 무장공비 침 투사건으로 울분에 찬 한국의 대통령과 軍 수뇌부들을 더욱 격앙시켰고 종국에는 자 주국방의 의지를 불태운 셈이 됐다. 金聖恩 前 장관의 회고.
『그 무렵 군부와 대통령과의 관계가 아마 도 한국 역사상 가장 가까웠던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대통령이 국 방부장관과 각군 참모총장을 불러 식사를 함께 했고, 때로는 제 공관에 찾아와 식사 를 하기도 했습니다. 軍 수뇌부들은 대통령 과 자주 만나면서 정치적 大小事에 대해 이 해의 폭도 넓었습니다. 모두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동일했고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 나가면서 경제발전을 해야 한 다는 데에 한치의 이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金聖恩 장관은 본스틸 유엔군 사령 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을 만나 정식으로 항 의했다.
『우리는 그동안 당신네 미국을 믿었소. 그 런데 이게 뭐요. 그들에게 군함까지 빼앗긴 당신들은 우리에게 공습대비까지 하라고 해 놓고 뒤에서는 협상을 하는 게 韓美동맹이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당해 왔소. 우리는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습니다. 이제는 대통 령까지 살해하려 청와대 뒷산에서 총을 쏘 곤 합니다. 미국이 공격을 안하겠다면 우리 가 할 겁니다. 우리는 비상대기령을 해제하 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1월29일 밤,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마친 각군 수뇌부들은 예하부대에 비상 대 기령을 지속시킨 채 전투태세 점검을 계속 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연대급까지 파 견되어 있던 美 군사고문단들의 감시망을 통해 유엔군 사령관에게도 보고되고 있었다. 본스틸 유엔군 사령관은 몹시 난처해 하면 서 『나도 우리 정부의 판단에 무척 실망했 소. 하지만, 국내에서는 4년 동안 월남전을 질질 끌고 있다고 反戰여론이 일고 있는 데다가…』하며 金장관을 무마하려 무척 애 를 썼다. 金장관은 화를 풀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은 유엔군 사령부를 한국에 두고 있 지만 우리가 공격할 때엔 유엔군은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유엔군은 우리의 攻守 양면에서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존재였습 니다. 하지만 그때는 강하게 나가 본 겁니다』朴正熙 대통령-金聖恩 국방장관의 對美 시 위는 즉시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매일 아 침 金장관의 책상 위에는 越南戰 戰果 보고 와 함께 美 군사고문단들의 행동이 보고되 었다. 美 군사고문단들은 전투태세에 돌입 한 한국군 연대장급 이상 지휘관들에게 전 쟁시 피복, 유류는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 작전 계획은 어떻게 세울 것이냐 등을 묻곤 했다. 金聖恩 前 장관의 회고.
『미국은 朴正熙 대통령의 성격을 보나 제 성격을 보나 진짜 전쟁을 벌일 것으로 믿 었던 모양입니다. 美 군사고문단들은 유례 없이 민감해 있었고 본스틸 장군은 수시로 나에게 비상조치를 해제하자고 말해 올 정 도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