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일발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으로 미국의 對北공습
이 예상됨에 따라 全軍 비상대기상태가 발 령되고 있던 1968년 1월24일 오전, 朴正熙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辭表 를 들고 찾아온 金聖恩(김성은) 국방부장관 과 李澔(이호) 내무부장관을 맞았다. 이날 아침 金聖恩 국방부장관은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 비상출동 태세를 갖추도록 긴 급지시한 뒤였다. 그는 朴대통령에게 북괴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한 責任性(책임성 ) 사표를 제출했다. 朴대통령은 두 장관을 번갈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임자들, 이게 뭐요?』金聖恩 장관이 답변했다.
『각하, 이번 사건은 휴전선을 막지 못해 청와대 담 밑에까지 적을 끌어들인 실책입 니다. 여기 내무부 장관은 괜히 저로 인해 사표를 내게 되었지만, 국방부장관인 저로 서는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중대 사건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임자, 그 놈들이 들어 온 건 미군들이 맡 고 있던 경계구역을 통해서지 우리 육군 지 역에서가 아니잖소』
朴대통령은 막무가내였다. 옆에 서있던 李澔 장관만 머쓱해져 있었다. 대통령은 두 장관에게 사표를 반려하며 金장관에게 이렇 게 말하더란 것이다.
『金장관 없이 무슨 전쟁을 해? 쉬기는 뭘 쉬어? 나는 쉬고 싶지 않나? 거 다른 소리 말고 두 장관은 이거(사표) 들고 돌아가서 殘匪(잔비) 소탕에 열중하시오. 잘 해놓고 사표는 무슨…. 또 무장공비들이 침투한 건 미군들 책임이지 왜 金장관의 책임이오 ? 金장관이 미국 장관이오? 그 자들(미군) , 철조망을 치라고 할 때 쳤어야지』朴대통령의 만류에 밀려 집무실에서 나오던 金장관은 다시 대통령에게 들어가 『그렇 다면 각하, 이 고비만 넘긴 뒤 다른 장관으 로 교체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 朴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金장 관의 팔을 두드리면서 위로해주었다. 이날 오후 金聖恩 국방부장관은 전날에 이 어 韓美軍 수뇌 회담을 갖고 對北공격에 대 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美軍 수 뇌부는 이틀간 진행된 사항을 金장관에게 설명했다. 푸에블로호가 납북된 이후인 1월 23일 오전 원산항으로 향한 美 7함대 旗艦 (기함) 엔터프라이즈 航母가 24일 오후 원 산항 영해 부근에 도착했으며 美 제5공군에 도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고, 비슷한 시각, 미국 정부는 소련측에 푸에블로號 선박 및 승무원 83명의 석방중재를 요청했으나 소 련은 이 요청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美北間 , 美蘇間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다. 金新朝 일당이 청와대를 급습한 1월21일 밤 부터 朴正熙 대통령은 과로하고 있었다. 사 건 당일은 밤 늦게까지 서재에 남아 상황 보고를 받았으며, 22일 밤에는 치안국, 23 일 밤에는 관계관들을 청와대로 불러 심야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 主治醫 池弘昌 박사는 대통령에게 격무를 피할 것을 거 듭 권했지만 朴대통령은 『나는 아직 끄떡 없다』고만 했다.
1월24일 오후 5시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 에서 정부 여당 연석회의를 주재했다. 丁一權 국무총리, 崔圭夏 외무부 장관, 李澔 내 무부 장관, 金聖恩 국방부 장관, 金炯旭 중 앙정보부장, 裵德鎭 국가안전회의 상임위원 겸 사무국장, 任忠植 합참의장, 金振晩 공 화당 원내총무, 金在淳 공화당 대변인, 朴浚圭 국회 외무위원장, 오치성 국회 내무위 원장, 閔機植 국회 국방위원장 등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무장공비 사건과 美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號 납북사건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했다.
金聖恩 장관은 이날 회의가 『일종의 전쟁 준비를 위한 기초작업과 같았다』고 회고 했다.
이날 밤 10시, 朴대통령은 종로 경찰서 3층 에 마련된 故 崔圭植 경무관의 빈소를 찾아 가 분향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朴대통 령은 상복차림의 어린 아이들을 보더니 유 족들에게 『崔경무관 아이가 넷이라고 했지 요? 아이들 교육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너무 상심마십시오』라고 말했다. 미망인 劉貞和씨의 자녀 1남3녀는 그 후 朴正熙 陸英修의 이름을 따서 만든 正修장학회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지원받았다. 한국 사회의 불안과 정치적 혼란 조성을 목 적으로 시도한 북한의 1·21 사태는 1967년 6·8 총선 선거부정사건으로 與野간 극한 대립을 지속해 온 한국의 정치권을 오히려 단결시켜 주고 있었다. 1월25일 金振晩 공 화당 원내총무는 공화당 의원총회를 마친 뒤 金泳三 신민당 원내총무와 만나 국가안 보대책을 협의하기 위한 與野 중진회담을 제의했다.
이후 국회 기자실에 들른 金振晩 원내총무 는 『그동안 취했던 對野 강경태도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신민당 金守漢(김수 한) 의원은 『與野 중진회담은 오히려 신민 당에서 먼저 제의했어야 했다』고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이같은 보고를 받은 朴正熙 대통령은 『이럴 때일수록 국회가 與野 협 조로 政府 일을 도와 줘야 한다』며 기뻐했다. 서울 북방에서 殘匪소탕이 계속되던 1월25 일 오후 3시30분, 포터 駐韓 美대사는 朴正熙 대통령을 방문하고 약 40분 동안 요담했 다. 이날 포터 대사는 25일 새벽(한국시간 ) 美 안보회의 결과와 외교적 교섭으로 푸 에블로號 송환이 실패했을 경우, 미국의 대 응책을 설명하고 한국정부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北韓의 중앙방송은 『현 비상사태 에 대하여 敵의 여하한 도발적 음모도 단호 히 분쇄할 수 있도록 全 인민군대에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 다. 남북한의 무력이 안전핀을 뽑기 시작했 다. 다음날인 1월26일 존슨 美 대통령은 朴正熙 대통령에게 美 공군 예비병 1만4000명 의 소집을 결정했다고 통고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