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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기자회견
 
 1968년 2월12일 오전 반스 특사를 맞아 첫 청와대 회담을 가졌던 朴대통령 은 이날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 기자와 단독 회견을 가졌다.
 <朴正熙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자기에게 응징을 「보류할 것」을 요청했고 , 자기는 「관망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기다림에 약간 지쳤음을 시사했다. 그는 그의 목숨을 노린 북괴 무장공비의 만행과 푸에 블로호의 납북은 분명한 「침략행위」라고 지적했다.
 
 朴대통령은 북괴가 도발행위를 자행할 때마다 우리는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으니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군대를 가지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 냐고 반문하고, 행동하지 않는 유엔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은 아무런 의 의가 없다고 말했다.
 
 朴대통령은 북괴가 오만해지는 이유는 그들의 도발행위에 얼굴을 돌리는 미 국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통역을 거쳐 말을 나눈 朴대통령은 휴전 후 15년 동안 북괴는 휴전협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수한 협정위반 행위를 자행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파괴 공작을 자행하고, 간첩을 남한에 침투시켰다고 지적했다.
 
 朴대통령은 이어 휴전협정이 있는 한, 쌍방이 이를 준수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 협정을 충실하게 지켰으나, 북괴는 수없이 위반했고 이에 대한 아무런 응징도 가해지지 않았고, 이것이 바로 북괴가 감히 청와대를 습격할 것을 음모하고, 푸에블로호를 납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朴대통령은 또 만 일 金日成이 그러한 만행을 저질렀을 때 응징당할 것이란 걸 알았다면 그러 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朴대통령은 북괴의 최근 만행에 대해 응징하는 것은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朴대통령은 북괴가 판문점에서 적절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우 리는 치밀한 응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고, 확고한 결의와 단호한 행동은 위기를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앞으로 위험한 불장난을 막는 데 효 험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구가 작은 朴대통령의 말씨는 부드러웠으나 그의 말에 힘을 주기 위해 지 휘봉으로 허공을 힘있게 찌르기도 했다. 朴대통령은 적절한 용어를 생각해 내는 동안 갈색 가죽의자에 몸을 기대고 묵직한 마호가니 탁자 앞에서 발 을 흔들고 있었다.
 
 朴대통령은 북괴 무장간첩 침투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한 응징만이 북 괴에 대한 적절한 행동조처가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전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朴대통령은 미국이 이 조처가 순전히 응징 조처이고 한정된 조처임을 공표하면 북괴는 감히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시 사했다. 그는 이러한 응징조처는 자위조처라고 강조하고, 만일 우리가 이번 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북괴는 앞으로 마음대로 잔인하고 非인 도적인 도발행위를 자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끝으로 朴대통령은 현재 자기는 응징조처를 취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朴대통령은 한국의 방위가 유엔군 사령관의 책 임下에 있고 한국군이 유엔군 사령관의 작전지휘下에 있음을 지적하고, 자 신은 그의 권한을 존중할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朴대통령은 자기 는 유엔군 사령관의 이번 사건에 대한 처사를 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잭 앤더슨 기자는 朴正熙 대통령과의 회견記를 이틀 뒤 워싱턴 포스트紙를 통해 보도했다.
 
 2월15일 오후, 訪韓 중이던 사이러스 반스 특사는 韓美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離韓(이한)했다. 공동성명에서 미국측은 한국 정부가 요구한 韓美 방위 조약 개정 부분 중 「즉각 개입」 부분을 「즉시 결정」이란 문구로 절충해 「양국은 상호방위조약하에서 취해야 할 행동을 즉시 결정할 것이라는 합 의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이번에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은 「대한민국 국방부 및 美 합중국 국방성의 각료급 연례회의 개최에 대한 합 의」였다. 당시 합의된 韓美 국방장관 회의는 1968년 5월27일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한국군의 현대화에 기여하며 지금까지 매년 계속되고 있다. 1·21 사태에 연이은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으로 시작된 韓美간 갈등은 한국 측에 韓美 상호 방위조약의 보완과 軍援 1억 달러 추가지원 및 M-16공장 건 설, F-4 팬텀기 도입, 휴전선 철책선 보완, 주요 예상 침투로의 자동 전자 방책 설치 등 선물들을 안겨주었다.
 
 1968년 1월 하순부터 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약 20여 일 동안 미국이 보여 준 행동은 강대국조차 自國內 여론을 통제하지 못하면 동맹국과의 약속은 물론 정권의 안정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反戰 무드에 편승한 진보세력과 정통 보수세력이 대치하며 심각한 국론 분 열 현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약 두 달 뒤인 3월31일 『미국의 단결을 위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한다』고 선언했다. 존슨 행정부는 실망한 동맹국들을 달래며 월맹과의 협상을 통해 미국의 이익만을 겨우 지키는 선으로 후퇴해야 했다 . 미국인들은 정통 보수 노선을 표방하는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던 1980년 대까지 국력 회복을 기다려야만 했다.
 
 반스 특사가 離韓한 2월15일 저녁, 朴正熙 대통령과 회합을 가진 軍 수뇌부 들은 씁쓸한 승리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존슨 대통령이 아 무래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강대국도 학생 데모에는 별수가 없나 ?』라며 혀를 차더란 것이다. 이날 밤 朴대통령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 눈 金聖恩 당시 국방장관의 증언.
 
 
 『월남전을 취재하던 미국 언론들은 월맹군에 대한 취재가 쉽지 않자 경쟁 적으로 미군의 피해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朴대통령과 저 는 「이런 불순한 바람이 미국內 여론을 형성하면 아무리 강대국인 미국의 정부도 힘을 잃는다」는 것을 그날의 교훈으로 정리했습니다. 朴대통령은 존슨 대통령을 동정하면서 「이쪽은 生死를 걸고 싸우고 있는데, 저 철없 는 것들이 뭘 안다고…」라며 미국內 젊은이들의 反戰운동을 아주 혐오했지요』金聖恩 前 장관은 당시 朴대통령이 존슨 행정부의 퇴조를 바라보며 이 문제 를 오랫동안 검토했다고 회고했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계를 확인했다고 본 朴正熙 대통령의 이후 통치과정들은 향토예비군 창설, 국민교육헌장 제 정, 3選개헌과 유신헌법 제정, 한국식 민주주의 강조, 학생운동에 대한 강 한 거부감, 야당과 재야 지식인들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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