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兪鎭午:『朴대통령이 나를 만나줍니까?』
 兪鎭午:『朴대통령이 나를 만나줍니까?』
 
 1968년 3월1일 오전, 朴正熙 대통령은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된 제49회 3· 1절 기념식에 참석, 경축사를 통해 『3·1절의 자립 자위 정신과 거족적 궐 기는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자립경제 건설과 국방의 주체성 확립이라 는 과제 해결에 있어서 참으로 절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식이 끝난 뒤 朴대통령은 차에 오르기 전에 丁一權 국무총리 등 3府要人과 함께 연단 아래에 마련된 독립 유공자 귀빈석으로 내려와 유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며 근황을 묻기도 했다. 이날 식장에는 정부의 초청을 받은 야당인사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전날 밤 에 있었던 변칙 통과에 대한 야당의 반응이기도 했다.
 
 3월2일 오전,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丁一權 국무총리, 崔榮喜 국방부 장관, 任忠植 합참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裵德鎭(배덕진) 국가안보회의 사무국장으로부터 그동안 관계부처 간에 합의를 거친 향토예비군의 무장, 편성, 예산문제 등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비슷한 시각, 신민당 兪鎭午 대표는 신민당 원내총무실에서 공식 기자회견 을 가졌다. 兪대표는 『12·29 날치기 통과는 국회를 결정적으로 행정부에 예속시켜 국회 不在현상을 조장키 위해 계획적으로 감행된 蠻行(만행)』이 라고 주장하고 『신민당은 최후의 1인, 최후의 1각까지 조국의 민주주의를 사수할 결심을 천명한다』면서 3월 중순부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 으로 원외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7代 국회 개원 후 계속된 파행정국을 보다 못한 신민당의 金相賢(7, 8, 14 , 15代 의원 民推協 공동의장 대행 역임) 의원은 3월6일 아침에 서울 종로 구 필동의 兪鎭午 신민당 총재 집을 방문해 경색된 정국을 풀기 위한 제안 을 했다. 金相賢 前 의원의 증언을 再구성해 보았다.
 
 
 『총재님. 정국이 너무 파행으로만 치닫고 있는데, 朴대통령과 兪총재 간의 영수 회담을 통해서 파행 정국을 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한복차림의 兪총재는 金의원의 제안을다 듣기도 전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 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朴대통령이 나를 만나줍니까? 절대 안 될 겁니다. 또, 만나 봐야 밖으로 부터 사쿠라 소리나 들을 거고』
 
 
 『사쿠라 소리 열 번을 듣는 한이 있어도 국정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래도 못하겠네』
 
 이 무렵 野黨의 풍토는 선명투쟁이 유행이었다. 어떤 사안이건 여당과 강경 대치를 하지 않고 합의를 도출하려 했다가는 당장 「사쿠라」로 몰리곤 했 다. 벚꽃의 일본말인 사쿠라는 韓日회담 반대 시위 당시 온건 야당에게 강 경 야당이 비난조로 사용하면서 한국 야당內에서는 「정부의 의도에 영합하 는 야당세력」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柳珍山 신민당 부총재의 경우, 6·8 선거부정 사건 이후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정부측과 타협할 뜻을 비추자 당내 강경파인 鄭海永 의원에 의해 「사쿠라」로 몰려 정치적 치명 상을 입을 뻔했다. 金相賢 의원은 결심한 듯 제안을 했다.
 
 
 『그럼, 저라도 朴正熙 대통령께 면담 요청 한번 해볼랍니다』
 
 『나도 안 받아줄 건데 金의원이라고 해 줄 것 같소?』
 
 『저도 헌법기관의 한 사람입니다. 朴대통령께 면담을 요청해 놓고 한 달 정도 기다리겠습니다. 한 달 이후에도 아무 이야기가 없으면 국회에서 정식 으로 문제를 삼을랍니다』
 
 
 『그럼, 그렇게 해보시구료』兪鎭午 총재는 시큰둥하게 말했다고 한다. 金相賢 의원은 그 자리에서 兪총 재 비서관인 朴贊世(65·대통령 공보비서관, 통일연수원장 역임)를 불러 청 와대 비서실장실로 전화를 넣어보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李厚洛 비서실장 대신 某 비서관이 전화를 받았다.
 
 
 『나, 신민당의 金相賢 의원이오. 李厚洛 비서실장을 통해 朴대통령께 꼭 좀 전해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용은 어떤 것인지요』
 
 『제가 朴正熙 대통령께 정식으로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주시오』
 
 『알겠습니다』
 
 金相賢 의원은 일주일쯤 지나면 청와대에서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고 는 兪총재의 집을 나왔다.
 
 다음날인 3월7일, 오전 8시쯤 집을 나선 金의원은 문이 닫힌 국회의사당을 지나 서울 시청 부근의 코리아 호텔 커피숍에서 사람들과 만나 환담을 나 누다가 오전 11시쯤 평소처럼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국회의원들은 집에 가설된 전화를 사무용으로 쓰던 때였다. 전화를 받은 金의원의 부인은 『청와대에서 李厚洛 비서실장이 아침부터 두 번씩이나 전화를 걸어오며 찾아달라고 재촉했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金의원은 부인이 급히 불러주는 청와대 비서실의 직통 번호를 받아 적고 다 이얼을 다시 돌렸다. 李厚洛 비서실장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金의원님. 어디 다니시면 어디 다니신다고 행선지를 남겨놓고 가 시지, 아침부터 金의원님 찾느라고 욕봤습니다. 오늘 오후 2시까지 청와대 로 들어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요』
 
 당시 金相賢 의원은 李厚洛 비서실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면담 의도와 내 용을 사전에 알기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청와대에 도착하니 현 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李厚洛 비서실장이 『지금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 다』라며 곧바로 朴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했다. 金相賢 前 의원의 증언.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대통령께서는 돋보기로 여러 장의 흑백 사진들을 찬 찬히 살펴보고 계십디다. 한 3분 동안 저와 李厚洛 비서실장은 머쓱하게 앉 아 있었지요. 집무실 벽을 둘러보니 벽면 전체가 대한민국 지도로 도배되다 시피 되어 있더군요. 각종 도표도 중간중간에 붙여져 있고 마치 전쟁 중의 작전 상황실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도는 그 해에 막 시작됐던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것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색연필로, 연필로, 사인펜으로 예상 도로를 그려넣거나 수정한 부분들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이런 걸 구경하느라 한참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각하께서 돋보기를 책상 위에 놓더니 「아, 金의원. 미안합 니다」라며 악수를 청하러 걸어 나오시는 겁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라고 악수를 하더니 당신이 보고 계시던 사진들을 가리키며 이 렇게 설명을 하는 거예요.
 
 「金新朝(김신조)가 참 정직한 사람입니다. 이 사진들은 金新朝가 얘기해서 찍은 항공사진들인데 북한이 산 밑에 굴을 파 요새화한 지하 활주로 입구 를 찍은 것들입니다. 이리 와서 한번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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