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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의 평화협상 제의와 北爆 중단 선언
 1968년 4월4일 오후 늦게 朴正熙 대통령은 존슨 美 대통령으로부터 4월8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頂上회담을 갖자는 제의를 받았다. 미국이 갑자기 朴 대통령을 초청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4월1일 오전 11시(미국 시간 3월31일 밤 9시), 존슨 美 대통령은 전국 방송 을 통해 30분간의 연설을 하면서 『나는 次期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 않고 , 指名(지명)도 수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존슨 美 대통령은 『나는 국론 분열과 그 추잡한 결과를 막도록 갈망한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 였다. 이어서 존슨 美 대통령은 월맹지역에 대한 北爆(북폭)을 중단하겠다 는 선언과 함께 평화협상을 제의했다.
 
 이날 全세계 언론은 존슨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불 출마 선언은 월남전에서 발을 빼기 위한 존슨 美 대통령의 苦肉之計(고육지계)였다. 존슨의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3월31일 오전 11시, 포터 駐韓(주한) 미국 대사가 청와대를 방문해 朴正熙 대통령에게 존슨 美 대통령의 출마포기 선 언과 월맹 北爆 중지에 관한 내용을 미리 전달했었다. 이날 朴대통령은 『 미국의 이같은 일방적인 결정은 월남전 해결에 결코 기여하지 못할 것』이 라며 포터 대사에게 항의했었다.
 
 4월1일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거행된 예비군 창설 기념행사에 朴正熙 대통령 과 함께 참석한 정부 고위 인사들은 현지에서 존슨 美 대통령의 연설 소식 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오늘은 만우절이지?』라며 믿으 려 하지 않았다.
 
 朴대통령은 존슨의 연설 소식에 일언반구 없이 행사에 따라온 국회의원들에 게 『이런 데는 뭐하러 왔소. 빨리 국회로 돌아가시오』라며 꾸지람을 했다 . 의원들은 호텔 예약을 취소하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갔다.
 
 4월2일 洪鍾哲(홍종철) 장관은 『존슨 선언이 월남에 있어서 명예로운 평화 를 이룩하려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명예로운 평화」를 위해 월남공화국의 정부와 국민이 주체가 되고, 월남 참전국이 동등히 참여하는 협상을 지지하며 공산주의자들에게 악용될 斷爆 (단폭)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4월3일 오전 朴正熙 대통령은 특별기 편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다. 그는 순 시하면서 具滋春(구자춘) 제주도지사로부터 濟州道政(제주도정)을 설명듣고 제주도 개발을 위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날 오 후 특별기 편으로 귀경한 朴대통령은 청와대에 도착 즉시 丁一權(정일권) 국무총리로부터, 존슨 대통령의 3·31 성명과 관련된 포터 대사와의 회담 내용을 보고받았다.
 
 이날 밤 월남 참전 7개국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市에 도착한 崔圭夏(최규하) 외무부 장관은 도착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월남 전쟁 해결을 위한 어떤 형태의 聯政(연정)에도 반대한다』면서 『한국은 월 남 국민들이 그들의 정부와 생존의 길을 그들 자신이 선택하도록 돕는다는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군을 월남에 파병했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對월남 정책 변화에 반대의사를 강력하게 표시하고 있 을 즈음이던 4월4일 오후, 존슨 美 대통령은 朴대통령과의 頂上회담을 포터 주한 미국 대사를 통해 전달했다. 이날 밤 11시, 申範植(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은 『朴대통령이 존슨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호놀룰루로 비행, 4월8 일 하루 동안 한국 문제를 비롯한 동남아 문제에 관해 광범위하게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朴正熙-존슨 頂上회담은 1968년 4월4일 밤 미국의 흑인 민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사건으로 무기연기 됐다.
 
 킹 목사의 사망소식과 함께 암살 용의자가 정부측에 고용된 백인이란 유언 비어가 퍼지자 이날부터 4일 동안 미국 內 116개 도시에서 29명의 사망자를 내게 되는 과격한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워싱턴, 시카고, 볼티모어 등 주요 도시에서는 방화와 약탈이 심했다. 이 지역에 1만4000여 명의 연방군 병력과 공수특전단이 투입되었다. 폭동은 발 생 5일 만에 수그러들어 미국은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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