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예비군 창설
1968년 2월6일 밤, 청와대에서 金聖恩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예비군 조직 편성은 한 달여 동안 곡절을 거쳤다. 金聖恩 前 장관의 회고.
『예비군 조직을 기획해 보라고 합참에 주었더니 며칠 뒤에 「예비군 사령 부-軍 사령부-군단-사단…」식으로 軍 조직처럼 만들어 갖고 왔어요. 공비 를 잡기 위해서는 지휘계통과 통신이 간단해야지 복잡하면 안 된다고 생각 했습니다. 가끔 水害가 나서 경제기획원에 가보면 각 부처에서는 피해 보고 와 복구비용을 산출한 액수가 거의 동시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軍 에서는 1주일이 넘게 걸렸어요. 군인들은 꼼꼼했지만 중대-대대-연대-사단 -군단식으로 全軍의 통계를 잡으려다 보니 꼬박 1주일이 넘게 걸리곤 했습 니다. 그래서 수해복구 追更(추경)예산은 다른 데서 다 따가고 국방부는 거 의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즉각 대응을 위한 軍의 조직체계가 현대화 되지 않았던 겁니다.
공비 출몰시엔 즉각 대응해야 하는 관계로 상부에 보고한 뒤 지시받고 출동 하는 식을 지양하고 예비군은 面, 邑 단위에 중대급 규모를 넘지 않으니 1 개 面마다 중대를 편성하게 하고 경찰 지서장이 마을 예비군을 지휘해서 先 조치 後보고하는 방식을 취하게 했습니다. 공비 출몰 신고는 합동참모본부 에 보고되므로 여기서 전국 예비군망을 통해 비상을 걸면 공비들은 예비군 이란 그물에 갇히게 됩니다. 거기에 현역 군인들을 기동타격대로 투입하면 섬멸된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지요.
즉, 예비군들은 자기 구역內에 침투한 공비들을 꼼짝 못하게 가두는 역할을 하고 섬멸은 현역이 하는 개념이었다. 며칠 뒤 이 案을 대통령께 보고하자 朴대통령은 매우 기뻐하면서 「金장관 案대로 밀고 갑시다」라고 말했지요』金聖恩 국방장관은 예비군의 武裝 문제도 해결했다. 그는 본스틸 유엔군 사 령관을 통해 미군이 M-16을 주력화기로 선택함으로써 폐기 장비가 된 카빈 소총와 M-1 소총 100만 정 및 실탄 5000만 발을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 게 했다.
향토예비군이 창설되는 과정에는 洪鍾哲(홍종철) 공보부 장관과 작곡가 李熙穆(이희목·70·現 미국 거주)씨의 노력도 있었다. 洪장관은 당시 유행하 던 군가 「맹호는 간다」와 「우리는 청룡이다」를 작곡한 李熙穆 당시 중 앙방송국 음악계장에게 예비군가를 작곡 의뢰했다. 李熙穆씨의 회고.
『누군가가 이 노래를 듣더니 서두에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를 넣자는 제 안이 나왔어요. 창경원 동물원에서 방송요원이 호랑이 울음소리를 녹음하느 라 애를 먹었지만 성공했지요. 「맹호는 간다」는 노래는 당시 최고 인기곡 이 되었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이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안 洪鍾哲 장관은 朴대통 령이 KBS 라디오 정오 뉴스를 꼭 청취한다는 것을 알고 매일 뉴스가 끝난 뒤엔 반드시 이 노래를 보낸 뒤 정규방송을 진행토록 했습니다. 洪장관은 결재서류가 있으면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끝난 직후에 대통령께 결재를 받 으러 갔다고 제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洪鍾哲 장관으로부터 「우리 맹호부대 계장」이란 別名을 얻었던 李熙穆은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1947년 월남하여 서울 사대부고를 나왔다. 그는 이 봉조, 박춘석 등 당대 유명 작곡가들과 어깨를 겨룰 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 지만, 대중가요보다 국민가요에 능해 방송국 직원으로 일하며 부업으로 작 곡을 했다. 無名이었던 李熙穆은 민정 이양 직후 국민 계몽성 가요 「일하 는 해」를 작곡하면서 정부와 관계를 맺었다.
李熙穆은 1968년 3월 초, 공보부 직원으로부터 『예비군가를 만들어 주되 작사자는 선생께서 알아서 선정하십시오』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李씨 는 당시 아리랑 잡지 기자 출신의 작사가 전우씨(작고)에게 가사를 부탁한 뒤 일주일 만에 곡을 완성했다. 녹음 때는 봉봉 사중창단이 노래를 불렀다. 洪鍾哲 장관은 공보부 직원들을 모아놓고 李씨가 작곡한 노래를 듣고 나서 『어때? 어때?』하며 반응을 듣고는 그대로 朴대통령에게 전달했다. 朴대 통령은 흡족해 하며 가사를 직접 옮겨 적었다고 한다.
1968년 4월1일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거행된 향토예비군 창설식에 참석한 朴正熙 대통령은 연설 마지막 대목에서 이 노래의 가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朴대통령은 『지난날 멸공 전선에서 조국 수호를 위해서 같이 싸우며 생사 고락을 같이하던 전우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20여 분간의 연설을 했다. <예비군의 이상적인 모습은 논밭이나 직장에서 자기 일에 충실하고 훈련에 힘쓰다가 일단 공비가 나타나면 즉각 출동하여, 그 마을 그 직장에서 공비 와 싸우는 戰士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주민들도 산에서 들에서 길에서 바다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수 상한 자가 나타나면 즉각 신고하여 「눈」이 되고 「귀」가 되는 것입니다 . 경찰이나 軍은 즉각 출동하여 적을 소탕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간첩이나 공비의 침투를 알리는 경종이나 「사이렌」이 울려 퍼지면 모든 주민들이 순식간에 공동 전선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입체적인 작전을 전개할 때, 敵은 「독 안에 든 쥐」처럼 꼼짝도 못하고 섬멸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러한 전술은 적에게 우리가 거꾸로 「게릴라」를 하는 전 법입니다. (중략) 자유는 목숨을 건 싸움에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방어만이 자유를 수호할 수 있습니다. 국가 안위에 관한 대비책을 당리 당쟁의 대상으로 삼는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정녕 「자기 파멸의 자 유」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국가 방위는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각오가 섰을 때에만 비로 소 튼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괴가 또다시 이 땅을 침략했을 때 나의 집, 나의 고향, 나의 직장에서 한 치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 지 싸워서 지켜야 합니다. 내 마을 내 직장은 내가 최후까지 死守해야 할 방위선인 것입니다. (중략) 나는 예비군이 국난 극복의 신기원을 개척하고 ,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면서 동지 여러분이 즐겨 부를 예비군가의 한 귀절을 인용하여 여러분의 전도와 조국의 앞날을 축복하고 자 합니다.
「역전의 전우들이 다시 뭉쳤다. 총 들고 건설하며 보람에 산다. 예비군 가는 길엔 승리뿐이다」 감사합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