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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 頂上회담
 1968년 4월12일, 오후 申範植 청와대 대변인은 『朴대통령이 17일 오전 7시 존슨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호놀룰루로 떠난다』고 발표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석상에서 朴正熙 대통령은 『공무원들의 해 외여행을 자제하고 선물 보따리를 가능한 한 들고 오지 말 것』을 강조하면 서 『대통령의 외국 방문 환송행사를 이번에는 하지 말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朴대통령은 출국 하루를 남겨둔 4월16일 오전, 정부와 여당 수뇌를 청와대 로 불러 호놀룰루 회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최종적으로 협의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4월5일 軍 수뇌부와의 회의 결론을 재삼 확인했다. 申範植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6·25 당시 판문점 정전회담의 쓴 맛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공산침략자와의 협상이 뭐가 달갑겠나』면서 『우리 정 부는 얼마 동안 미국과 월맹의 협상 추이를 관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입장은 아시아 우방국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4월15일 자 워싱턴 포스트紙는 「현안인 美·越盟 평화회담과 관련, 아시아 연합국 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존슨 美 대통령은 한국 대표를 옵서버로 평화 회담에 파견토록 朴대통령에게 요청할 것」이란 보도를 했다. 스타紙는 1면 머릿기사에서 「호놀룰루 회담의 주요 목적은 미국이 월남참전 아시아 국 가들을 背信(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아시아 우방들의 의심을 불식하려는 데 있다」고 보도했다.
 4월17일 이른 아침, 김포공항에는 500여명의 환송객들만 나왔다. 朴대통령 의 지시에 따라 공항에서의 의식이 생략되고 김포가도에도 환송 대열이나 환송 현수막이 보이지 않았다. 오전 7시20분, 朴대통령은 영부인 陸英修 여 사와 책가방을 든 아들 志晩군(당시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 4학년)과 함께 헬리콥터 편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朴대통령은 환송하러 나온 내외 인사들 과 악수를 나눈 뒤 공군 도열병들의 경례를 받으며 층계를 올랐다. 특별기가 이륙한 뒤 機上에서 朴대통령은 기자들과 환담을 나누며 『지난 1·21 청와대 기습사건 때 존슨 대통령이 즉각 경호관들을 보내 청와대 주 변을 샅샅이 돌아보게 했다』면서 존슨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소개했다. 하와이 현지 시각 16일 오후 8시50분(한국 시간 4월17일 오후 3시30분) 朴正熙 대통령과 일행을 태운 특별기가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朴대통령 이 존슨 美 대통령의 출영을 받으며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서자 하와이 아가 씨들이 레이(꽃다발)를 朴대통령의 목에 걸어주었다. 환영 나온 300여 명의 교포들은 태극기와 「God bless you! dear Mr. President!(神이여 대통령 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라는 영문 플래카드를 흔들며 朴대통령을 환영했다. 교포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던 朴正熙 대통령은 존슨 대통령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헬리콥터에 탑승, 숙소인 카할라 힐튼 호텔로 이동해 여장 을 풀었다.
 
 1차 단독 頂上회담은 17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18일 오전 5시경)부터 12시 반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오하우 섬 東端(동단)에 위치한 카이저 하우스(하 와이 대부호인 造船王 故 헨리 카이저氏의 대저택-注)에서 열렸다. 朴대통령은 흰색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을 타고 회담장소에 도착하여 5분 전 부터 현관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존슨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뒤 뜰에서 약 10분간 담소를 나누었다.
 
 兩國 원수는 응접실에서도 10여 분간 담소한 뒤 수행원들을 별실에 남겨두 고 각각 통역 담당 의전비서관만을 데리고 저택 서재로 들어갔다. 2시간 반 뒤 회담을 마치고 나온 兩國 정상은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이 자리에 서 존슨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휘장이 새겨진 금시계를 선물했다. 朴대통령 은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않아 겸연쩍어했다.
 
 존슨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조만간 텍사스에서 말안장을 만들 터인데 만드 는 김에 두 개를 만들어 승마를 잘하는 朴대통령에게 한 개를 보내주겠다』 고 약속했다.
 
 양국 頂上은 32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들었다. 식사 후 약 한 시간 동안 휴식시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두 頂上은 막바로 제2 차 頂上회담에 들어가 오후 6시까지 마주앉았다.
 
 2차에 걸친 회담을 마친 양국 頂上은 이날 오후 7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 관련 항목에서는 『한국에 대한 북괴의 더 이상의 무력 침공은 한국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북괴 再侵時 韓美 상호방 위조약에 따른 행동을 「즉각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15 韓美 공동성명 당시의 「즉각 협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미국의 對월남 정책이 존슨 美 대통령의 3·31 성명으로 분명히 변화하고 있었지만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은 1966년 10월 마닐라 선언과 1967년 워싱 턴 선언을 再확인하는 수준이었다.
 
 頂上회담이 끝난 다음날인 1968년 4월18일 朴대통령은 별다른 일정 없이 몇 몇 수행원들과 숙소인 와이키키 해변상의 카할라 힐튼 호텔 수영장에서 휴 식을 즐겼다. 오후에는 와이알라에 컨트리 클럽에서 골프를 친 뒤 해변을 산책하고 저녁에는 한국 총영사관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 교포들을 격려했다. 4월19일 오전 7시 朴대통령은 호놀룰루 펀치볼 국립묘지를 참배, 헌화했다 . 이어 수행원들과 함께 귀국길에 올라 한국시간으로 4월20일 오후 3시 김 포공항으로 입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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